로힝야 학살은 종족 멸절 노린 ‘21세기 제노사이드’

김남중 2024. 3. 7.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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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로힝야 제노사이드
이유경 지음
정한책방, 380쪽, 1만9800원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쿠투팔롱에 위치한 로힝야 난민촌. 서대선 제공


유대인 홀로코스트나 팔레스타인 민족의 수난은 잘 알려져 있지만 미얀마 로힝야 민족의 박해는 아는 이가 드물다. 로힝야는 미얀마 서부 라까인 주를 본향으로 하는 소수민족이다. 불교국가 미얀마에서는 소수인 이슬람교도들이다.

세상이 로힝야라는 이름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건 2016∼2017년 미얀마 군부에 의한 ‘로힝야 대학살’ 때문이다. 국경없는의사회에 따르면, 당시 대학살로 2만2000∼2만5000명이 사망했다. 이 기간 80만명에 가까운 로힝야들이 국경을 인접한 방글라데시로 탈출했다. 유엔은 2017년 로힝야 탈출 사태를 “2차대전 이후 최대 난민 사태”로 진단했다.


국제분쟁지역을 전문적으로 취재해온 프리랜스 저널리스트 이유경이 쓴 ‘로힝야 제노사이드’는 2016∼2017년 대학살과 그 전초전이었던 2013년 ‘멕띨라 학살’, 그리고 로힝야 난민들에 대한 취재기이자 1970년대 이후 노골화된 로힝야 박해의 역사를 서술한 책이다.

저자는 먼저 단편적인 뉴스로만 알려진 로힝야 대학살을 들여다본다. 춧퓟 마을은 대표적인 학살 사례다. “(2017년) 8월 27일 오후 2시쯤 국경경찰 100여명과 라까인 자경단원 80명 가량이 마을에 들이닥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5시간 동안 광란의 학살이 자행됐다.

대학살에 참여했던 군인들 중 탈영한 이들의 증언도 최근 나오고 있다. “어린 로힝야 소년을 우물에 던지는 일도 있었다.” “네가 보는 건 그게 아이들이건 어른들이건 다 죽이라는 명령에 따랐다” “30명의 로힝야를 학살한 후 군부대와 통신전신 근처 대량 무덤에 묻었다.”

그 이전에도 로힝야에 대한 무수한 폭력 사태와 추방 작전이 있었다. 2013년 중북부 소도시 멕띨라에서 벌어졌던 ‘멕띨라 학살’에서는 공권력의 협조와 방관 속에 불교도에 의한 무슬림 학살이 최소 3일 동안 이어졌다. 2012년 시트웨의 무슬림 거주지에서도, 2014년 두쉬야단 마을에서도 학살이 있었다.

앞서 1978년에는 ‘제1차 로힝야 대축출 사건’으로 기록된 ‘나가민 작전’이 있었다. 강간, 살해, 고문, 학살이 동반된 불법 이주민 색출 작전이었다. 1970년대 들어서면서 로힝야들에게는 주민카드가 더 이상 발급되지 않았으며, 당시 네윈 군부정권은 벵갈리들이 불법적으로 미얀마 땅에 들어와 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선동했다. ‘벵갈리’는 로힝야들을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 이주민’으로 보는 혐오적 호칭이다.

미얀마 서부 라까인 주 주도인 시트웨 안에 유일하게 남은 로힝야 거주구역 '아웅 밍갈라'의 모습이다. 이유경 제공


이 시기부터 로힝야들의 대탈출은 시작됐다. 20만∼25만명 정도로 추산되는 대탈출이었다. 1991∼92년 2차 대축출에서도 비슷한 규모가 방글라데시로 내쫓겼다.

저자는 “로힝야를 겨냥한 무자비한 국가 폭력과 그 폭력에 부역하며 로힝야 혐오 캠페인에 전력 투구해온 미얀마 불교 극단주의 세력들, 그리고 미얀마 사회에 만연한 ‘안티-로힝야’ 정서까지 이 모든 게 화학적으로 반응하며 로힝야 대학살까지”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그러면서 1948년 미얀마 독립 이후 지속돼온 로힝야 박해를 종족 멸절을 겨냥한 ‘제노사이드’로 규정한다.

시민권 박탈, 거주지 고립과 해체, 추방, 학살 등이 결합된 로힝야 박해는 거대한 난민 문제를 초래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약 75만명의 팔레스타인들이 축출됐는데, 로힝야 난민은 100만명이 넘는다. 저자는 1970년대 말부터 미얀마에서 축출된 로힝야들이 살아가는 ‘지구상 최대 난민캠프’인 방글라데시 동남부를 찾아간다. 콕스바자르의 쿠투팔롱 난민캠프, 나프강을 낀 국경타운 테크나프, 치타공 산악지대 등이다.

방글라데시가 난민촌 식량 배급을 축소하면서 1978년 5월부터 12월까지 반 년 동안 약 1만여명의 로힝야 난민들이 굶어 죽었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90년대 이후 로힝야를 난민으로 공식적으로 등록하지 않는다. 난민 캠프에도 울타리가 쳐지고 이동의 자유가 극도로 제한되고 체포, 구금, 강제송환이 이뤄진다. 그래서 방글라데시를 다시 탈출하는 로힝야들이 늘고 있다.

로힝야들은 보트난민이 되어 미얀마, 방글라데시,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의 국경을 오간다. 그들은 배 위에서 죽고 강간 당하고, 국경의 산 속 정글캠프에 갇힌 뒤 돈을 줘야 풀려난다. 2012년 이래 봇물을 이룬 로힝야 난민들의 보트 탈출은 동남아 지역에 거대한 인간시장을 형성시켰다.

저자는 “그동안 종족과 종교로 갈등하는 여러 분쟁들을 취재해왔지만 로힝야 커뮤니티처럼 완벽하게 벗겨지고, 고립되고, 이토록 처절하게 짓밟힌 커뮤니티를 본 적이 없다”며 로힝야를 “지구상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으로 묘사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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