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부동산 56조 ‘살얼음’…탈출구 있나

배준희 매경이코노미 기자(bjh0413@mk.co.kr) 2024. 3. 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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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IB 남긴 물건 우르르 투자하더니

해외 상업용 부동산 위기 우려가 확산하면서 올해 금융사 손익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잠재 부실이 속속 가시화하자 해외 부동산 펀드 투자자는 밤잠을 설친다. 금융당국은 총선을 앞두고 불안 심리 확산을 경계하지만, 부실 투자로 이미 큰 손실을 본 투자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해외 부동산 EOD 2.5조

원금도 못 건진 사례 수두룩

국내 금융권 해외 부동산 부실이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금융사의 해외 부동산 대체 투자 잔액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56조4000억원(단일자산 투자 35조8000억원·복수자산 투자 20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업권별로는 보험(31조9000억원), 은행(10조1000억원)에 이어 증권(8조4000억원), 상호금융(3조7000억원), 여신전문금융(2조2000억원), 저축은행(1000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미국, 캐나다 등 북미가 34조5000억원(61.1%)으로 가장 많았고 유럽(10조8000억원·19.2%), 아시아(4조4000억원·7.9%) 순이다.

이미 해외 투자 부동산 가운데 기한이익상실(EOD)이 발생한 곳도 28군데로 규모는 2조4600억원(현재 기준)에 달했다. 지난해 6월(1조3300억원)보다 90% 가까이 늘어난 수준이다. 기한이익상실이란 돈을 빌린 채무자가 이자나 원금을 못 갚거나,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 담보 가치가 부족할 경우 채권자가 만기 전 대출 원리금 회수에 나서는 것을 의미한다.

5대 금융그룹이 해외 부동산 투자에서 막대한 손실을 보고 있다는 점도 입방아에 올랐다.

금융사의 부동산 투자는 크게 두 가지 행태를 보인다. 첫째, 재판매를 뜻하는 ‘셀다운’이다. 자체 북(Book·자금운용한도)에 잠시 편입한 후 대출채권을 유동화해 선순위, 중순위, 후순위 등 트렌치 상품으로 재매각·재판매하는 경우다. 주요 금융그룹 대비 자기자본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국내 증권사가 셀다운에 적극적이다. 둘째는 자기자본을 활용한 대체 투자다. 주요 금융지주는 자기자본이익률(ROE) 개선과 비이자수익 확대를 위해 최근 수년간 자기자본을 활용한 대체 투자를 크게 늘렸는데, 적지 않은 투자처에서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KB·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금융그룹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이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 원금은 20조3868억원(782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고객에게 판매한 해외 부동산 펀드 등과는 별개로 금융그룹이 자기자본(일반계정·PI)을 활용한 투자다. 대출채권, 신용공여, 채무보증 등 대출 형태로 집행한 투자가 9조9421억원, 수익증권·펀드 등으로 투자한 원금이 10조4446억원이다.

어떤 투자지표로 보든 5대 금융그룹 성적표는 낙제점으로 평가된다. 통상 투자 성적을 평가하는 지표로 IRR(내부수익률)이 주로 쓰이는데, 5대 금융그룹의 경우 IRR 산출이 가능한 투자 514건 중 약 10%(51건)가 마이너스였다. IRR은 NPV(Net Present Value·순현재가치)를 0으로 만드는 할인율(기대수익률)로, 초기 투자금과 이후 예상되는 세후 현금흐름을 같게 만드는 할인율이다. 대체로 IRR이 높을수록 잘된 투자다. 이 수치가 마이너스라는 의미는 현시점에선 실패한 투자로 볼 수 있다.

투자 원금 대비 평가 수익률(미확정)도 저조했다. 수익증권·펀드 등으로 투자한 형태의 평가 수익률은 -10.53%를 기록했다. 현재 부동산 평가 가치는 9조3444억원으로 원금 10조4446억원보다 1조1002억원 줄어든 것이다. 금융그룹별로는 하나금융 -12.2%, KB금융 -11.1%, 농협금융 -10.7%, 신한금융 -7.9%, 우리금융 -5%를 각각 기록했다.

개별 투자 건을 들여다보면 수익은커녕 원금조차 못 건진 사례가 수두룩하다. 전액 손실처리가 적잖게 집계된 것은 국내 금융사 상당수가 중·후순위로 해외 부동산 투자에 나선 결과로 풀이된다. 해외 부동산 투자 시 선순위는 대부분 현지 IB 몫이며 협상력이 열위인 국내 금융사는 이들이 남긴 물건을 받는다. 중·후순위에서는 수익률 극대화를 노려 레버리지를 활용하므로 손실 규모가 많게는 감정가 낙폭 대비 2배 가까이 늘어난다. 이 탓에 중·후순위의 경우 감정가 30% 이상 하락 땐 금융비용 고려 시 실질적으로는 건질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 처한다.

하나증권은 미국 텍사스 댈러스 소재 글로벌 통신사 AT&T 본사 건물에 300억원을 투자했으나 전액 손실처리했다. 하나생명보험은 2018년 말 영국 시티오브런던 소재 부동산에 투자한 263억원 전액을 손실로 인식했다.

같은 해외 부동산에 줄줄이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 사례도 있다. KB손해보험, NH농협생명보험, 하나손해보험 등은 미국 뉴욕 타임스스퀘어에 위치한 ‘20 타임스스퀘어’ 빌딩에 각각 228억원, 571억원, 114억원 등 모두 913억원을 투자했다. 이들은 부동산 전문 운용사 이지스자산운용 사모펀드를 통해 중순위 대출채권에 투자했으나 호텔 준공이 지연되고 코로나 팬데믹이 덮치자 투자 원금을 사실상 전액 손실처리했다.

손실률이 80~90% 달하는 투자 건도 부지기수다. 신한투자증권은 2020년 8월 미국 전역 30개 호텔 포트폴리오에 218억원을 투자했으나 현재 평가액이 16억원대에 불과하다. 3년 2개월 만에 손실률은 92%로 집계됐다. KB증권은 미국 뉴저지 DSM 빌딩에 약 180억원을 투자했는데, 현재 평가 금액은 10억원대다. 누적 배당금 97억원을 고려해도 원금에 크게 못 미친다. 우리은행은 ‘이지스글로벌전문투자형사모투자신탁’을 통해 독일 부동산에 168억원을 투자했으나 단순 평가손실만 83%에 달했다. 누적배당금도 20억원에 못 미쳤다.

당국 “괜찮다”지만…

부동산 → 금융위기 감염 고조

해외 부동산 부실 논란이 확산하자 금융당국은 시장 불안 심리 확산을 경계했다. 양경숙 의원실발로 금융그룹 부실 자료가 공표되자 당국은 이례적으로 브리핑을 자처했다. 지난 2월 22일 브리핑을 맡은 김병칠 금융감독원 전략감독 부원장보는 “대체 투자 리스크는 국내 금융사가 충분히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추가적인 가격 하락이 있더라도 손실 규모는 제한적”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금융당국 설명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전체 금융사 해외 부동산 대체 투자 현황은 56조4000억원으로 이는 금융권 총자산인 6800조9000억원의 0.8% 수준에 불과하다. EOD가 발생했다고 투자 원금을 모두 날리는 것도 아니다. 금융사 간 대출 협약 조정을 거쳐 만기를 연장할 수 있고 자산 매각 땐 후순위부터 선순위 순으로 투자금 일부 또는 전액을 회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해외 대체 투자 자산의 상당수는 유동성이 떨어지는 물건이다. 이런 비유동성 자산은 먼저 파는 사람이 가장 적게 손실을 보기 때문에 위기 국면에서 누군가 팔기 시작하면 투매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연쇄 채무 구조조정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속칭 ‘헤어컷 감염’이 일어나면 선순위 투자자도 담보 가치 하락이 불가피하다. 헤어컷은 머리를 자른다는 의미로, 금융업계에서는 부실 금융 자산의 순자산 가치를 현실화하는 것을 뜻한다. ‘헤어컷 감염’으로 금융사가 보유 자산을 시가보다 낮게 급히 팔기 시작하면 이는 다시 자산 가치 하락을 유도하는 악순환을 불러 시장 전반의 유동성 손상으로 확산할 수 있다.

해외 부동산 펀드를 ‘ELS 사태’와 비교하는 게 온당치 않다는 취지의 금융당국 설명도 투자자 사이에서는 논란만 키웠다는 뒷말이 나왔다. 금감원에 따르면 개인이 투자한 공모펀드 가운데 올해 만기를 맞는 펀드는 8개로 설정액은 9000억원이다. 투자 규모만 19조3000억원에 달하는 홍콩H지수 ELS와 달리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는 2조3000억원 수준이며 올해 만기 규모도 ELS(15조4000억원)보다 적다.

그러나 해외 부동산 투자의 최대 리스크는 ‘전염성’이다. 부동산은 비유동성 자산이므로, 이를 매입한 금융사는 자산을 유동화시켜 일부 지분은 펀드나 국내 기관 등에 되판다. 이런 ‘셀다운’ 상품이 우리 금융 시스템 곳곳에 퍼져 있다.

리테일로 풀린 셀다운 자산은 리스크 전염성이 매우 높고 추적, 관리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셀다운에 성공했더라도 리스크를 떠안는 주체가 달라졌을 뿐 부실 우려가 완화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부동산 금융 셀다운은 그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매우 힘들다. 펀드, 특정금전신탁, 파생결합증권(DLS) 등 고도의 유동화, 구조화 과정을 거쳐 공모가 아닌 사모 형태로 우리 금융 시스템 곳곳에 퍼지기 때문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고금리 장기화로 주요국 해외 부동산 부실이 악화 일로를 걷다 자본력이 취약한 미국 중소은행의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경우다. 미국 모기지은행협회(MBA)와 예금보험공사 등에 따르면 미국 상업용 부동산(다가구주택 포함) 대출은 4조7000억달러(약 6274조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2024년 안에 만기가 도래해 갚아야 하는 규모가 약 9300억달러(약 1241조원)로 집계됐다. 고금리 장기화 땐 금융사가 대출을 갈아타는 리파이낸싱 과정에서 조달 금리가 급등할 수 있다. 자칫 자산의 현금흐름이 부채비용을 충당 못할 리스크에 노출될 수 있단 의미다.

해외에서는 이런 징후가 이미 가시화했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에 돈을 댄 미 지역은행 뉴욕커뮤니티뱅코프(NYCB)는 지난해 4분기 2억5200만달러 순손실을 냈다. 같은 기간 독일 도이체방크는 글로벌 부동산 투자 관련 손실충당금을 전년 대비 약 4배 늘렸다.

문제는 앞으로다. 부동산 시장조사 업체 그린스트리트에 따르면 미국과 유럽 상업용 부동산 가격지수는 지속적으로 하락세다. 그린스트리트는 “상업용 부동산 평가 가치가 여전히 너무 높다”며 “상업용 부동산 가치가 올해 최대 15%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증권가 손익관리 비상

순이익 급감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국내 증권사다. 상대적으로 자기자본 규모가 작아 손실흡수능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해외 부동산 펀드 손실 정도가 올해 증권사 손익을 가를 핵심 변수로 보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나신평)에 따르면 국내 25개 증권사의 해외 부동산 위험노출액(익스포저) 총액은 14조4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투자 형태별로는 부동산 펀드·리츠·지분 투자가 8조7000억원 규모로 가장 많았다. 지역별로는 미국과 유럽 익스포저가 각각 6조6000억원, 5조4000억원에 달했다.

올해 국내 증권사의 해외 부동산 추가 손실 가능성은 전년보다 더 높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나신평에 따르면 해외 부동산 펀드 8조3000억원 가운데 절반 이상인 4조6000억원 규모에 대해 이미 손실을 인식한 것으로 집계됐다. 나머지 약 3조6000억원에 대해서는 아직 손실을 한 번도 인식하지 않았다는 게 나신평 지적이다. 윤재성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아직 손실 인식을 하지 않은 해외 부동산 펀드 3조6000억원에 대해 올해 추가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사정이 이렇자 국내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손익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대규모 충당금을 쌓은 미래에셋증권의 지난해 순이익은 2980억원으로 전년 대비 58% 줄었다. 전배승 이베스트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미래에셋증권은 자본 대비 해외 투자 비중이 40%대로 업계 평균(20%)보다 2배 높아 해외 부동산 관련 우려도 상대적으로 크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메리츠증권 순이익은 5900억원으로 전년보다 29% 줄었다. 하나증권은 지난해 순손실 2673억원을 내 적자로 돌아섰다.

이경자·김재우·정민기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선제적으로 지난해까지 해외 상업용 부동산 관련 손실을 상당 부분 인식해오고 있는 가운데 금감원의 사업장 단위 점검 방침 아래 올해 관련 손실 인식이 증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투자자 분쟁 속출할라

자산 매각·배당 유보 줄이어

문제는 미래에셋 등 국내 금융사가 투자한 해외 부동산이 홍콩, 미국, 영국, 벨기에 등 세계 전역에서 손실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이다. 시장에서는 부동산 펀드 만기가 집중되는 향후 1~2년간 투자자 분쟁 등 큰 혼란이 빚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금융권에서는 개인 투자자들이 속한 공모펀드에서 투자자 분쟁이 속출할 것으로 내다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임대형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공모펀드는 총 21개로, 설정액은 2조2835억원이다. 이 가운데 80% 이상인 1조9000억원이 개인 투자자 자금이다. 대체 투자 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는 소수 전문 투자자가 참여하므로 만기 연장 등 후속 대응을 위한 의견 수렴이 상대적으로 수월한 반면, 공모펀드는 수익자 총회를 열고 의견을 한데 모으기 쉽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투자자 분쟁은 이미 현실화했다. 미래에셋증권이 뼈아프게 손절했던 ‘미래에셋맵스미국부동산투자신탁9-2호(맵스 9-2)’ 펀드는 불완전판매 논란에 휘말렸다. 이 펀드의 기초자산은 미국 댈러스 오피스 빌딩(스테이트팜)이다. 미래에셋은 당시 매입가 가운데 3000억원 정도를 개인을 대상으로 한 맵스9-2호로 조달했다. 설정 당시 9786억원을 투자(당시 환율로 약 8억4362만달러)해 5억8000만달러(약 7879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달러 기준 약 30%, 원화 기준 20% 손실을 봤다.

투자자산인 댈러스 시티라인 오피스는 미국 1위 손해보험사 스테이트팜이 100% 장기 임대차 계약을 맺어 공실률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미래에셋 측이 우량 물건을 서둘러 매각한 것은 고금리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으로 분석된다. 결국 미래에셋은 수수료 수십억원을 챙긴 반면, 개인 투자자만 손실을 봤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 투자자들은 미래에셋이 금리 급등을 이유로 투자자산을 서둘러 매각했음에도 정작 투자자들에게는 금리 전망에 대한 고지가 적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대목을 문제 삼는다.

이외 적잖은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에서 손실 우려가 비등하다. 올해 만기를 맞는 8개 펀드 가운데 ‘한국투자 벨기에 코어 오피스 2호’는 배당금(이익금)을 유보했다. ‘하나 대체투자 미국LA 1호’는 자산 매각 중으로 손실이 불가피하다. 당초 올 2월 만기였던 ‘한국투자 밀라노1호’는 지난해 말 가까스로 만기를 3년 연장해 한숨 돌렸다. 내년 이후 만기인 펀드 중에서도 ‘미래에셋 맵스 미국11호’와 ‘한국투자 룩셈부르크코어 오피스’ 등 2개는 배당이 유보됐거나 배당 유보 사유가 발생해 투자자를 애태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9호 (2024.03.06~2024.03.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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