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숫자 추계 연구자들 "소모적 정원 논쟁에 의료개혁 본질은 묻혀"
정부가 2000명 의대 증원의 근거로 참고한 보고서를 발표한 연구자들이 현재 상황에 한목소리로 우려를 표했다. 증원 숫자를 두고 정부와 의료계가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면서 수가체계 등 정작 중요한 의료시스템 개편에 대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또 정부의 2000명 증원안을 연구에서 제시한 바가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의사 수 추계 연구자 긴급 토론회’에는 홍윤철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위원), 권정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등이 참석해 이런 논의를 나눴다. 이들 세 학자는 정부가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는 근거로 참고했다고 밝힌 연구의 저자들이다.
연구자들은 현재 의료 시스템이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 2035년이면 의사가 약 1만명 부족할 거라는 전망에는 공감했다. 하지만 그런 추계가 곧 연간 2000명 증원에 대한 근거로 활용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들은 각자 연구에서 2035년 의사 부족 규모를 1만816명(홍윤철), 9654명(신영석), 1만650명(권정현)으로 추산한 바 있다.
홍윤철 교수는 “사실 제 보고서의 결론은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한 결과 합리적으로 정원을 늘린다면 500명에서 1000명이 적절하다는 것”이라며 “2000명이 적절한 인원이라고 쓴 바가 없다. 그런 측면에서 정부가 제 보고서를 적절하게 인용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권정현 위원도 “연구가 호도되는 방식으로 인용되고 있어서 명확히 설명드린다”며 “연구에서 다양한 시나리오를 이용했는데, 그중에서 현 시점에서 부족한 인력을 충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시나리오는 (현 졍원의) 5~7%(150~210명)를 매해 증원하는 안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꺼번에 크게 증원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교육·수련 현장의 문제점을 고려해 점진적 증원을 제안한 것”이라며 “2000명은 현 정원의 60% 이상 증원이기 때문에 여러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정부는 그런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지원을 할 수 있는지 고민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영석 교수는 “정부가 속도 조절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며 “어차피 2035년까지 1만명 증원이 목표라면 1000명씩 10년을 가면 훨씬 속도조절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5년간 늘리면 2029년까지인데, 내년에 입학한 학생들도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은 상태라 (증원으로 인해) 시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판단하기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세 연구자는 의사 수급 추계는 의료환경이 어떻게 변하는지 등 각종 변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숫자에 매달리기보다 의료개혁에 대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위원은 “현재 의대 정원을 증원하는 것이 굉장히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그러면서 우리 의료 체계를 어떤 방식으로 가져갈 것인지, 필수의료를 어떻게 개혁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못하는 현 상황을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적절한 의료 공급이 되도록 하는 의료개혁이 일어난다면 현재와 같은 공급 체계를 가져갈 필요가 없다. 때문에 반드시 의료개혁이 동반돼야 하는데, 이에 대한 논의는 상당히 실종된 상태”라며 “의료개혁을 같이 논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이) 몇 명이냐 하는 것은 실질적인 의미가 없고 근거도 부족한 논의”라고 말했다.
홍 교수는 특히 지역 간 의사 공급에 큰 차이가 있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지역별 추계를 보면 다섯 개 대도시에서는 사실 의사가 이미 많지만, 나머지 지역은 이미 부족하고 앞으로 훨씬 더 부족해진다”며 “지역 간 격차를 총 공급 문제로 해결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제 근본적인 질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증원과 함께 의사들이 지역·필수의료를 떠나는 원인을 고쳐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현재 행위별 수가제도에서 가치 기반 지불보상체계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라는 게 이들의 제언이다. 홍 교수는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의사들이 떠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보상이 안 되기 때문이다. 생명을 살리는 수술 수가와 MRI 한번 찍어서 받는 수가가 너무 차이가 난다”며 “이게 행위별 수가제의 문제다. 생명의 가치를 기반으로 수가 체계를 전환해야만 필수의료가 살아난다”고 말했다.
신 교수도 “행위별 수가제는 통상 투입하는 시간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행위의) 빈도가 많지 않으면 수입이 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상대적으로 빈도는 낮지만, 한밤중에도 시급하게 진료가 이뤄져야 하는 바이탈(필수) 분야들이 이런 체계 하에 보상이 안 되면서 종사자들은 당연히 떠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서 이를 세부적으로 정리하지 않았다”면서도 “다만 보상하겠다는 방향을 담았고, 금액도 ‘10조 플러스알파’라고 제시했으니 좀 더 지켜보면 어떨까 싶다”고 덧붙였다.
토론회에서는 현재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홍 교수는 “이런 국정 난맥상이 있을 때 국회의원들이 역할을 해야 하는데, 아무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이 자기 책무를 안 하고 있는 것”이라며 “여야 복지위가 당장이라도 모여서 이 문제를 논의하고 중재에 나서야 한다. 그럴 역량이 안 된다면 사회적 협의체라도 구성하라”고 말했다.
남수현 기자 nam.sooh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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