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멈추면 세상도 멈춘다
[조건희]
여성노동자가 빼앗긴 시간 통제권
아르바이트 노동자 A는 "이번 달까지만 일하고 나오지 마세요"라고 통보받았다. 해고 사유조차 제대로 듣지 못했던 A는 하루에 4시간, 주 3회 일하는 초단시간 노동자였다. 스케줄 변동이 잦았던 A의 일터는, 준비 시간이나 대기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산정하지 않았다. 주휴수당이나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대학교는 주 14시간까지만 일하게 했고, 거기서 일하는 B는 저임금을 메꾸기 위해 2~3개의 학교에서 일해야 했다.
아이를 돌보지 않는 남성 노동자에게 뒤처지기 싫었던 C는, 육아하지 않는 시간의 거의 전부를 일터에서 노동했다. C의 노동시간은 주 52시간이 훌쩍 넘었으나, 회사는 법에 걸리지 않기 위해 갖은 방법을 썼다. 노동자이자 주부인 D의 일터인 마트는 일요일에 영업하고 월요일에 쉰다. 그러나 D는 월요일에 출근하는 남편과 아이들의 밥을 해 먹이기 위해 일터가 쉬는 날에도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야 했다.
2020년 1908시간, 2021년 1910시간, 2022년 1901시간. 한국 노동자들의 일터에서의 연간 노동시간이다. 같은 해 OECD 평균인 1687시간과 1744시간, 1752시간과 비교하면 한국의 노동자들은 연 150시간가량 더 일하고 있다. 이는 '임금노동'으로 여겨지지 않는, 무급 노동시간은 포함되지 않은 수치다. 2023년 기준 무급 노동시간은 남성 하루 49분, 여성 215분이다.1) 대부분 가사 및 돌봄노동이다.
▲ 여성노동자의 멈춤으로, 역행하는 시대 돌파해 나가자! |
ⓒ 2024년 38여성파업 조직위원회 |
여성노동자의 '일'을 들여다본 실태조사
지금의 자본주의는 여성노동자들이 저임금에 놓여있고 가사 돌봄노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여자는 위험한 일을 하지 않으니까", "시간제에 여자가 많으니까", "돌봄은 부차적이고 여성적인 일이니까" 등 왜곡된 이유를 붙이며 착취를 내면화시키려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씁쓸하게도, 가사·돌봄 노동의 여성으로의 전가, 가장이 아니라는 이유로 정당화되는 비정규직화 등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 되었다.
2024년 3월 8일 국제여성의 날 여성노동자들이 파업한다. 직장과 가정에서 여성노동자의 파업을 조직해, 역행하는 시기를 돌파하고자 하는 단체와 개인이 모여 "2024년 3.8 여성파업 조직위원회"(아래 조직위)를 결성했다. 조직위는 지금, 다양한 현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얼마나 임금을 받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어떤 노동에 투여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이러한 목적으로 2023년 12월부터 약 2달간 설문과 면접으로 구성된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설문조사에는 총 693명이 응답했다. 교사, 대리운전기사, 사무직 노동자, 시간강사, 요양보호사, 전업주부, 청소노동자, 초단시간 아르바이트, 필라테스 강사, 활동가 등 21명과의 면접조사도 병행했다.
임금 실태, 여성노동자 저임금의 원인과 해결책, 가사 및 돌봄노동의 시간과 어려움, 해결책을 중심으로 물었던 설문은 예상만큼 씁쓸했다. 주 40시간을 초과해 일한다는 응답은 30%가 넘었지만, 월 250만 원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다는 응답이 70%를 넘었다. 최저임금 이하로 급여를 받는 비율이 45%였다. 과로 사회와 가사 돌봄노동의 이중부담을 견뎌내고 있는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을 반영하듯, 절반이 넘는 응답자들이 가사 및 돌봄에 있어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 어려움으로 작동한다고 답했다.
면접자들의 연령이나 고용형태는 각기 달랐지만, 아플 때 푹 쉴 수 있는 노동자는 별로 없었다. 특히 불안정 노동자, 시간제 노동자들의 경우 '대타'가 필수조건으로 작동했다. 대타를 부탁함에 따르는 미안함은 본인의 몫이 되었고, 혹 구하지 못하면 쉬지 못했다. 국가가 운영하는 사업장이나 큰 규모의 사업장 노동자들의 경우 제도적으로나마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 연차를 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쉬는 동안 노동강도가 올라갈 동료의 눈치가 보여서, 당장 프로젝트 마감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쉬는 게 사치처럼 보여서 등 여러 이유로 잘 못 쉬는 건 매한가지였다.
한편 돌봄 대상이 있었던 면접자들은 가사 돌봄과 일을 병행하는 데에 있어서도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편으로는 시간과 여유 부족으로 더 잘해주지 못함에 따른 미안함을, 다른 한편으로 일과 가사 돌봄 이외의 시간을 상상할 여지조차 주어지지 않는 상황을 혼자 헤쳐나가야 했던 힘듦을 공유해주었다.
여성노동자 파업 투쟁으로, 사회의 시간표를 재조직해가는 실마리를!
▲ 여성 노동의 가치를 저평가하는 성별 임금 차별 철폐
▲ 여성노동자를 옭아매는 이중의 굴레를 깨기 위한 돌봄 공공성 강화
▲ 모든 노동 기회가 평등하게! 일하는 모두의 노동권 보장
▲ 여성노동자의 실질적인 자기 결정권과 건강권 보장을 위한, 임신 중지 건강보험 적용 및 유산 유도제 도입
▲ 여성노동자와 모든 불안정 노동자의 빈곤 해소를 위한 최저임금 인상
이날 여성파업 대회는 서울 보신각에서, 오후 12시 20분부터 진행된다. 보신각에서 모이면 좋지만, 굳이 보신각이 아니더라도, 여성의 날 가사노동을 하지 않겠다며 아파트 발코니에 앞치마를 걸었던 스위스의 사례처럼 투쟁의 현장을 더 확장해 나가자. 그렇게 3월 8일 이후로도 지속될 24시간이란 유한한 시간을, 노동과 돌봄, 교류, 정치, 문화 활동의 시간으로 함께 재조직해 갈 수있는 힘으로 만들어가자.
1) https://stats.oecd.org/index.aspx?queryid=54757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조건희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로, 한노보연 젠더와노동건강권센터 운영집행위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024년 3월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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