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 신원 밝히며 이산가족 찾아주는 심정…시간 없어 조급하다”
“사람이 모두 다르듯 뼈도 제각각이고 오히려 겉으론 알 수 없는 사연이 숨어 있죠. 어떤 유해는 오른팔 손목에 어렸을 때 골절이 생겼다 회복된 흔적과 5번 요추에도 미세한 외상 흔적이 있었는데, 이게 실마리가 됐어요. 1950년 12월 장진호 전투에서 실종됐던 19세 미군은 그렇게 68년 만에 유해 상태로 귀향할 수 있었습니다.”
하와이 히컴공군기지에 있는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 기관(DPAA)’의 진주현(44·미국명 제니 진) 박사. 2010년 한국인 출신으로 처음 DPAA 연구원에 채용돼 15년째 숱한 전사자들의 뼈를 감식하고 신원을 밝혀낸 그가 에세이를 냈다. 『발굴하는 직업』 (마음산책)에는 법의인류학자로서 치열한 업무 뒷얘기 뿐 아니라 미국에서 직장 생활하는 한국인(현재는 미 시민권 취득) 엄마의 좌충우돌 애환을 담았다. 6일 화상으로 그를 만났다.
대학에서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하고, 스탠퍼드대와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각각 인류학 석·박사를 받은 그가 DPAA에 취직한 것은 ‘어쩌다보니’였다고 한다. 하와이대 교수로 부임한 남편을 따라갔다가 “미 국방부에서 뼈 전문가이면서 한국어도 잘하는 사람을 찾는다는기에” 지원했더니 덜컥 채용됐다. 당시 DPAA는 출처 구분 없이 해온 전사자 유해 감식을 개별 전쟁으로 나눠하기로 하고 첫 번째 프로젝트로 한국전쟁을 택했다. 한국전에서 숨진 미군은 3만6000명이며 이 외에 8100명의 실종자가 있었다.
“연구실에 그득한 뼈 상자를 처음 보고 무엇부터 해야 할지 난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물려받은 상자는 두 종류로 다 북한에서 왔다. 하나는 1990~1994년 북한이 넘겨준 208개, 또 다른 건 1996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미 정부가 들어가서 발굴해온 200여개였다. 상자마다 여러 뼈가 뒤섞여 있었는데 일단 ‘혼재 유해 매뉴얼’을 만들었다. 서로 다른 뼈를 골라내는 요령을 체계화하면서 신원 확인 숫자가 급증했다.”
그 가운데 “뼈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아시아계 유해가 더러 있었다.” 당시 미군에 배속된 카투사, 즉 국군의 유해로 추정됐다. 2011년 한국 국방부 산하에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 출범하면서 한국군 유해 송환 논의가 본격화됐고, 이듬해 처음으로 한국 공군 수송기가 하와이로 날아와 국군 유해를 싣고 돌아갔다. 15년 간 이렇게 돌려보낸 국군 유해가 300여구에 이른다.
특히 2018년 남북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그해 7월 북한 원산에 미군 유해를 인수하러 간 것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당시 국내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된 역사적 장면 이면에서 진 박사는 태중에 둘째를 품고 정신없이 실무에 매달렸다. “그 애더러, 넌 태아 때 북한에 다녀왔다고, 돌아올 땐 전투기 호위 받았다고 말한다.(웃음)” 한국 오산 기지를 거쳐 하와이에 유해가 내렸을 때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당시 직함)이 직접 맞았다. 당시 넘겨받은 55개 상자에는 총 250구의 유해가 들어있었고 이 가운데 89명의 미군과 77명의 국군 유해가 신원 확인돼 유족 품으로 돌아갔다. 미군 실종자 숫자는 지난 15년간 7500여명으로 줄었다.
“실은 저도 6·25에 대해 거의 몰랐다가, 일 때문에 공부했다. 조부모님이 흥남철수 때 피난 내려오신 터라 생전에 여든살 할아버지께 여쭈니 고향 떠난 날짜를 ‘1950년 12월 6일’로 정확히 기억하시더라. ‘마지막으로 우리 부모님 본 날인데 어찌 잊겠냐’면서. 돌아가신 국군도, 미군도 영영 이별이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이산가족 찾는” 그런 애끊는 마음은 진 박사가 지치지 않고 일하게 해준 원동력이다. “만날 엇비슷한 뼈를 분류·분석하는 게 실은 매우 지겹다. 그러다 유족 파일에서 DNA가 일치해 뼈가 사람이 되는 순간이 온다. 각별했던 사연과 함께 돌아가야 할 곳이 생긴다. 그때만큼 뿌듯하고, 희열을 느낄 때가 없다. 어쩌다 시작했지만 내 일이 나의 소명이 됐다.”
현재 그의 휘하엔 모두 14개 팀이 있다. 각각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의 주요 전투(진주만 등)로 나뉘어 있다. 작업 착수 후 4년 이상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이들을 ‘콜드 케이스’라고 부르는데, 일종의 장기미제살인처럼 그의 마음을 짓누르는 숙제거리다.
“최근엔 2차 대전 팀에서 무명용사 유해 하나를 분석하고 있는데, 그걸 의뢰한 분이 미망인으로 지금 102세다. 6·25 전사자의 유족도 점점 손자·증손자로 넘어가고 있다. 마음은 조급하지만 절대 그르쳐선 안 되는 일이라 실수 않는 게 우선이다. 이젠 관리자니까 실무보단 행정 업무에 주력하면서 팀원들이 일하는 환경을 제대로 조성해 더 많은 성과를 내는 게 목표다.”
강혜란 문화선임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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