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혹은 소피 다르크... 세계가 주목한 '한복'이 남긴 질문 [목수정의 바스티유 광장]
[목수정 기자]
▲ 2024년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만화 작가 소피 다르크(Sophie Darcq) |
ⓒ Lisa Boghos |
2024년 앙굴렘 국제문화축제 심사위원 특별상 수상작 <한복Hanbok>의 작가 소피 다르크 (Sophie Darcq)는 그런 존재다. 그의 이야기가 비추는 장면마다 희미하거나 짙은 우리 사회의 그림자들, 가끔은 따스한 빛들이 함께 드러난다.
앙굴렘 국제만화축제 |
1974년 프랑스 중남부에 자리한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 앙굴렘에서 시작되어 올해 52회째를 맞이하는 국제만화축제다. 처음엔 불어권 국가들을 중심으로 시작되었으나 회를 거듭하며 전 세계 1500명의 만화 작가들이 모이는, 명실공히 세계 최대, 최고 명성의 만화 축제로 자리잡았다. 나흘간 20만명의 관람객이 이 만화 도시를 메우며, 만화 세상을 만든다. |
<한복>은 프랑스로 온 지 24년 뒤, 언니 비르지니와 함께 한국으로 향하는 소피의 한 달 간의 여정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절제된 문장들은 저자의 여정을 담담히 기록하고, 검은 펜으로 그려낸 장면들은 언어가 드러내지 않은 감정들을 투명하게 담아낸다.
24년만에 한국에 돌아온 두 자매는 한 달 동안 일가친척들을 차례로 만난다. 네 자매 중 한국의 혈육을 찾는 데 의지를 가졌던 셋째 비르지니는 앞선 여행에서 한국의 가족들을 찾아냈고, 이번에는 동생 소피와 함께 그 경험을 나누고자 했다. 그렇다. 이들은 이역만리 타국에서 낯선 이들과 부모 자식의 연을 맺고 살아왔지만, 한국에 적지 않은 수의 가족들이 있었다. 그땐 기꺼이 이들을 먼 곳으로 보냈지만, 이번엔 기꺼이 이들을 반겨 맞이했던.
▲ 2024년 앙굴렘 국제만화축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소피 다르크의 그래픽 노블 <한복> |
ⓒ Sophie Darcq |
- 제목이 <한복>이다. 한복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던 걸까?
"처음 프랑스에 왔을 때, 우리에겐 딱히 짐이랄 게 없었다. 고아원과 입양기관에서 마련해 준 것이 한복이었다. 표지 그림은 그때의 사진을 보고 그린 것이기도 하다. 한국에 다시 갔을 때, 한국의 가족들이 어른이 된 우리에게 선물로 마련해 준 것도 한복이었다. 한국을 떠났을 때,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한복이 마치 연결 고리처럼 우리에게 주어졌다."
- 오... <한복>이 자매들의 삶의 굴곡점마다 상징적인 이정표처럼 따라다닌 건가?
"그런 셈이다."
- <한복>에서 가장 놀라운 사람들은 4명의 한국 아이들을 한꺼번에 입양하신 프랑스 부모님이다.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입양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체력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또 정서적으로나 일반적으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엄마 아빠, 그때 좀 미쳤던 거 아냐' 나도 좀 크고 나선 부모님들을 놀리곤 했다. 두 분은 자녀가 많은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사랑 많은 부부였다. 그런데 엄마가 자식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면서, 먼저 스테파니를 입양했고, 1~2명 더 입양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프랑스 아이들 가운데선 입양할 아이가 거의 없었단다. 그러던 중, 한국 여자아이 넷이 입양해줄 부모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넷을 다 입양하기로… 우리 네 자녀가 입양으로 헤어지게 되는 건 원치 않으셨던 거다."
- 게다가 책에서 보면, 두 분은 무척 좋은 부모셨던 것 같다.
"그랬다. 우린 참 운이 좋았다. 부족함 없이 자랐다."
- 부모님들은 그런 생각으로 네 명을 한꺼번에 입양했다고 하지만, 이미 그 가정에 입양 되어있던 스테파니 입장에선 외동딸로 살다가 언어도 외모도 많이 다른 네 자매를 하루아침에 얻게 된 것이 충격이었을 것 같다. 스테파니와의 갈등은 없었나 ?
"전혀. 오히려 스테파니가 있어서 우리 부모님들을 많이 도와줬다. 처음엔 우리가 불어를 못하니까, 소통이 어려웠는데, 당시 6살이던 스테파니가 아이들만의 언어로 우리들을 가이드 해줬다. 공항에서 내리자 마자, 스테파니가 화장실을 찾는 우리들 마음을 이해하고 화장실로 안내해 줬던 걸 시작으로."
외동아이인 자기에게 부모의 관심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것보다, 여러 또래 자녀들이 생겨서 같이 놀 수 있게 된 걸 좋아했던 것 같다. 둘째와 셋째 언니는 7살, 6살이었는데, 초등학교 시절 스테파니와 줄곧 같은 반이었다. 반에 늘 3명의 다르크 패거리가 있었던 거다 ㅎㅎ. 다른 사람들을 챙기고 도와주는 것을 좋아하는 스테파니가 지금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건 우연이 아닐 거다."
- 딸들이 한국의 친부모와 가족을 찾아 나서는 행보를 보며, 프랑스 부모님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셨나?
"두 분은 우리가 친가족을 찾고자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런 우리의 권리라고 지지해 주시는 입장이셨다. 응원해 주셨고, 기뻐해 주셨다."
- 한국의 가족들을 만났다고 두 분에게 전화했을 때, 아빠가 "나는 괜찮은데 너희 엄마는 약간 심란해 하네..." 하시고 엄마는 또 정반대로 "나는 괜찮은데, 너네 아빠가 좀 힘들어 해…"하시는 장면이 있다.
"(웃음) 맞다. 두 분이 서로 자기는 괜찮다면서… 한편으로 걱정하는 마음도 있으셨을 거다. 우리가 두 분 곁을 완전히 떠나 한국에 정착한다고 할까 봐. 하지만 그런 감정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그런 입양인들이 종종 있기도 하다. 한국으로 돌아가 눌러 사는. 하지만, 나에게 부모는 오직 그 두 분 뿐이고, 한국에 간 것도 잠깐 다니러 간 것일 뿐, 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난 온전히 프랑스인이라고 느끼며 살아왔다."
- 자전적 이야기를 서술하는 저자인데, 관찰자 시점이라는 느낌이 종종 들었다.
"사실 한국의 가족들을 찾겠다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없다. 한국 여행을 하는 동안 언니를 동반하는 입장이었다. 책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도 관찰자의 입장을 줄곧 유지했다. 입양 당시 4살이었던 나에겐 한국에 관한 아무 기억도 없었고, 언니들의 보호와 부모님 사랑 속에서 아쉬움 없이 자랐기에 한국 쪽 가족에 대한 특별한 회한을 갖고 있지 않았다. 적어도 나의 '의식' 속에선."
▲ 소피 다르크의 <한복>에 등장하는 한 장면 |
ⓒ Sophie Darcq |
18년 걸린 작품... "마지막 부분 좀처럼 그릴 수 없었다"
-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다른 별에 온 것 같이 느꼈다고 했다.
"그랬다. 당시로선 이렇게 먼 나라에 온 게 처음이었으니까. 사람들 생김새, 표정, 걸음걸이, 시선... 모두가 내가 알던 세계의 사람들과 너무 달랐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들을 외계인처럼 바라보고 있던 내가 그들과 같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적응 기간도 필요 없이 단박에 좋았던 건 음식이었다. 스트리트 푸드도 너무 풍부하고, 맛있고, 밤늦게 나가도 사 먹을 수 있고... 물론, 그러느라 늦게까지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안타까운 일이지만."
- 프랑스 언론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두 개의 상을 타기도 했다. 특히, 앙굴렘에서의 수상은 만화계에선 최고의 인정이 아닌가?
"그렇다. 전혀 예상 못했다. 이미 상 하나를 타기도 했고, 앙굴렘에서 그 많은 후보들 가운데 수상하게 될 줄은…"
- 어떤 점에서 이 작품이 심사위원들에게 어필했다고 보나 ?
"많은 분들이 '마음을 건드린다'고 얘기해 주셨다. 서사의 농밀함을 장점으로 지적해 주신 분들도 많았다. 한 번 읽고 나서 다시 읽어 보면, 그 속에 또 다른 이야기들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 스타일의 작화가 함께 쓰인 것도 작품을 여러 겹으로 읽히게 해주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 코믹하고 유머러스한 톤의 장면들이 있는가 하면, 몇몇 정밀하게 그려진 인물 초상들 속에는 글이 표현하지 않은 감정,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고 느꼈다. 대사가 의식을 표현해 준다면, 정밀한 그림들은 작가의 무의식이 드러나는 대목처럼 보였다.
"그렇게 봤다면, 그게 맞을 것이다. 나는 독자가 작품의 50%를 완성한다고 본다. 몇몇 그림에서 얼굴에 눈코입이 없이 백지인 경우가 있다. 그걸 한 기자는 거울 같다고 느꼈다고 했다. 나는 딱히 어떤 계산을 하지 않고, 본능적으로 그렇게 표현했는데, 어떤 독자들은 그 지워진 얼굴에서 자신을 투영하게 된다고 한다. 듣고 보니 정확한 해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무려 18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한국 여행을 하고 나서 2005년, 앙굴렘의 만화가 레지던스에 입소하면서부터 이 작업을 시작했다. 나의 이야기지만, 이건 작가로서 욕심나는 스토리라고 생각했다. 2007년 부천에서 오신 한상정(당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씨가 부천에 있는 만화영상진흥원의 작가 레지던스에 입소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2008년 한국에서 6개월 동안 다시 머물며 작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 두 기간 동안 진도가 많이 나갔고, 이후론 더디게 드문드문 작업을 이어갔다. 특히 마지막 부분을 좀처럼 그릴 수 없었다."
- 친엄마를 만나게 되는 대목?
"그렇다. 그 대목을 그리기 힘들어서 시간을 많이 흘려 보냈다. 하지만 생각을 숙성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고 본다. 그때 한달음에 그렸다면, 지금 같은 작품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이런 대사들이 종종 나온다. 그때 그 여행에서 이런 기다림의 시간이 계속 있었던 것인가? 아니면, 인생 전체에서, 막연한 기다림이 있었던 것에 대한 중의적 표현인가?
"그 여행에서 다른 가족들(고모, 삼촌, 사촌 등등)을 차례로 다 만날 수 있었지만, 정작 엄마는 계속 우리에게 답을 주지 않고 있었다. 거의 마지막 날에 연락이 왔고, 간신히 만날 수 있었다. 그녀에겐 새로 꾸린 가정이 있고, 직장도 있었다. 시간을 내는 것도, 마음을 먹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을 이해한다. 그 여행에선 유난히 기다림이 많았고, 오지 않는 엄마의 전화를 기다리는 데 조금 지쳐 있기도 했다. 의식적으론 딱히 뭔가를 기다리며 살진 않았지만, 나의 무의식은 그랬을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든다."
- 마지막 대목에서 많은 사건의 열쇠들이 터져 나온다. 폭력이 있었고, 엄마가 떠났고… 잔인한 대사들도 종종 등장하는데, 그중 가장 놀라운 말은, 집안에서 고아원에 아이들을 보내라고 결정하자, 큰딸만은 보내지 않겠다면서 했던 아버지의 이 말이다. "체면은 세우고 살아야 하니". 큰딸을 사랑해서도 아니고.
"'큰딸을 더 사랑해서'라고 했어도 끔찍한 말이었을 것 같다. 체면 때문이라니. 아버지의 그 말을 당시 9살이었던 언니는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우리 넷이 함께 있게 된 건, 결국 나중에 큰 언니 나탈리가 아빠와 함께 살지 않고 우리와 함께 고아원에 남을 것을 택했기 때문이다."
- 그 대목을 읽으면서, 체면, 혹은 타인의 시선. 이것이 한국사회에서 빚어지는 많은 비극의 원인이 아닌가 생각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큰 무게를 가지고 있는... 어떤 사람들은 생판 모르는 아이들인데도 그 아이들이 자매들과 헤어지지 않게 하려고 넷을 모두 입양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자식들을 고아원에 보내는 와중에도, 체면을 위해 자식들을 갈라놓는다. 한국이 더 이상 빈곤하지는 않았던, 1980~1990년대에도 많은 아이들이 해외 입양을 갔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던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 입양 아동 현황 |
뿌리협회에 따르면, 2010년 한국 입양 아동 2475명 중, 59%인 1462명이 국내 입양, 41%인 1013명이 해외에 입양되었다. 이 수치는 2019년에 이르러, 전체 입양 아동 수가 704명으로 줄어들며 55%인 387명이 국내에, 45%인 317명이 해외로 입양되었다. 1980년부터 1990년 사이, 총 6만 5911명이 해외로 입양되어, 연평균 6591명이 해외입양되었던 것에 비하면 현격히 줄어든 수치다. 그 사이 출생아 수가 현격히 줄어들며 입양의 규모도 함께 축소되었으나, 여전히 전체 입양 아동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아동들이 해외로 입양되고 있다. |
"그렇다. 몇 년 안 됐다. 거기서 한국어 수업을 무료로 들을 수 있어서, 가입해 수업을 매주 듣고 있다. 한국어를 배우고 있지만, 아직 능숙하진 않다. 계속 익히고 있는 중이다. 잘하고 싶다."
▲ 캐데뷜(Quai des BULLES)만화 페스티벌 2023년 신인상 수상자 소피 다르크가 그린 2024년 캐데뷜 만화 페스티벌 연하장 |
ⓒ sophie Darcq |
- 책이 나왔을 때 가족들 반응은 어땠나?
"모두들 내가 이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고, 오랫동안 기다렸던 터라, 다들 몹시 기뻐했다. 눈물도 흘리고. 우리들의 이야기니까. 응원해 주시던 아버지는 2017년 돌아가셔서 결국 책으로 나온 건 못 보셨지만, 그 전에 그려둔 것들을 보셨다."
- 책이 한국에서도 출간되기를 희망하는가 ?
"물론이다. 한국에서도 읽혔으면 좋겠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도 조금 있다. 한국의 가족들이 불편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정말 문맥을 잘 이해하는 분이 번역을 하면 좋겠다.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원망이나 후회의 마음은 없다는 사실이 잘 전해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케이팝 때문에 한국을 좋아하는 어린 팬들도 읽으면 좋겠다. 한국을 케이팝, 케이 드라마로만 이해하는 젊은 세대들이 많이 있다. 그런 한국도 있지만, 이런 한국도 있다는 걸 두루 보고 폭넓게 한국을 이해하면 좋겠다. 우리 네 자매의 경험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각자가 겪은 한국이 있다. 나는 내 몫의 이야기를 전했다. 여러 관점의 이야기들이 더해져서, 전체를 풍부하게 해줄 것이다."
- 책이 총 2권으로 되어 있다고 들었다. 앞으로 나올 2권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프랑스에 도착하여, 프랑스 가족과 살아간 이야기. 돌아가신 아버지가 음악을 좋아하셨고, 나도 클래식 기타를 쳤는데, 아버지와 나눈 음악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갈 거다. 내년쯤 나올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우리가 만난 찻집에서 파는 유일한 한국 차였던 제주 녹차를 마시며 진행된 인터뷰는 2권에 대한 나의 기대를 전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두 사회 간의 경제적 격차가 좁혀졌다 해도, 어느 날 한국의 한 부부가 4명의 프랑스 여자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이야기는 실현될 가능성이 없어 보이기에, 어떤 사회적, 문화적, 개인적 배경이 이런 일을 가능케 했으며, 낯선 땅에 떨어진 네 자매는 어떻게 성장해 갔는지 궁금한 것이 사실이다.
소피 다르크는 오랜 기간 짊어지고 지내던 스토리가 마침내 책으로 나왔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모두의 흩어지고, 각색되었던 기억과 증언, 사진들이 모여 하나의 아카이브가 막내의 손에서 비로소 완성된 것이다. 그렇게 네 자매의 과거가 선명하게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자 그것은 소피 다르크의 현재와 미래를 밝혀주고 있다.
그리고 <한복>은 우리에게 많은 질문들을 남긴다. '핏줄을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우리는 왜 아직도 아이를 수출하는 나라인가'라는 오랜 질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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