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의 '문전박대'... 노인에겐 적응 쉽지 않은 SNS

전재복 2024. 3. 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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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 공간에 적응하려는 75세의 고군분투기, 그래도 "기죽지 말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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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복 기자]

 소셜미디어, SNS(자료사진).
ⓒ 픽사베이
 
엊그제의 일이다. 자정도 지난 시간, 무엇에 씐 듯 잠에서 깨어 이불을 벗어났다. 음소거한 TV 채널을 돌리다가 딱히 볼 것이 없어서 핸드폰을 켰다. 습관적으로 휴대폰으로 페이스북을 열어보려는데, 왜인지 갑자기 '진행 중'을 뜻하는 동그라미만 한참이나 뱅뱅 돌더니 세션이 종료되었으니 다시 로그인을 하란다.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드나들던 곳인데 이게 무슨 일이지? 잠깐의 일시적인 오류려니 생각해서 뜸을 들였다가 다시 열어도 마찬가지, 자꾸만 새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로그인을 하란다. 페이스북이 몇 년간 드나들며 친분을 쌓은 오랜 친구인 나의 출입을 거부하고 문전박대를 하는 느낌이다.

나는 1950년생으로 올해 75세가 되었다. 그래도 오프라인의 내 나이 비슷한 친구들은 칠십 넘어서도 SNS에서 활발하게 글로 사진으로 소통하는 나를 부러워한다(내 친구들은 대부분 카카오톡 밖에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넘지 못하는 벽에 가끔씩 부딪치고 만다. 

잃어버린 나, 잃어버린 내 옛 계정

결국 새로 계정을 만들어 내 이름의 계정은 두 개가 되었다. 그렇게 어찌어찌 출입증을 들이밀었더니 페이스북이 겨우 출입을 허가했다. 그런데 막상 들어오고 보니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활보하던 익숙한 그 거리, 낯익은 내가 아니었다. 몇 시간 전까지의 나는 사라지고 페북을 처음 시작하던 몇 년 전으로 뚝 떨어져 버린 것이다. 

내 집이라는 문패를 단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그동안 일궈놓은 많은 세간살이가 한 점도 없다. 서로 오가며 정을 나누던 그 많던 친구도 스무 명 남짓밖에 없고... 나와 친구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을까? 한밤중에 일어나 '잃어버린 나', 잃어버린 계정을 찾으려고 헛손질만 수없이 하다가 '멘붕'에 빠져버렸다.

그럼에도 가까스로 '친구'로 뜨는 또 하나의 '나'를 발견하고, 들어가서 둘러보고 읽어볼 수는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곳의 나는 내 친구일 뿐 내가 아니다. 글을 이어서 쓸 수도 없고 관리할 수도 없다. 

카카오스토리에서도 계정이 두 개가 되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두 개의 공간에서 각기 다른 사람으로 존재하며 안타까워하는데, 이제는 페북에서도 두 사람으로 존재하게 되었다. 내가 아닌 친구로 존재하는 또 다른 나와 어색하게 만나야 한다. 

매일아침 페북에서 자동으로 받아보고 댓글을 쓰곤 하던 '인산편지'도, 온라인 공간의 정다운 친구들도 아직은 만나볼 수가 없다. 다시금 가입하는 등 방들마다의 출입증을 새로 만들어야 할 모양이다. 

도대체 나를 누구라고 설명해야 할까? 나이 먹은 사람이 SNS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소통하며 생존하는 일이 결코 쉽지가 않다. 동그라미가 뱅글뱅글 돌며 출입을 거부할 때, 그리고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다루다가 무슨 알림이나 문자가 뜨면 갑자기 식은땀이 난다. 젊은이들 같으면 무슨 방법이 있지 않았을까?

페이스북에서는 그동안 열심히 모아놓은 세간살이 하나 없이, 썰렁하고 옹색한 방에 우선 사진 두 장 바꿔달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채 멍하니 서있었다(나중에 알고보니, 귀책사유의 반 정도는 페북에 있었다. 당시 2시간 정도 접속장애 오류가 발생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냥 손 놓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 만든 출입증으로 부지런히 길을 내며 새 집으로 친구를 부르고 여길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어야지. 다시 처음인 양 세간도 늘려야지.

비록 노인이 적응하기 쉽지 않은 가상의 공간일지라도, 즐겁고 스마트하게 어울려 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나 자신에게, 그리고 늙었다고 움츠리는 당신들에게 긍정의 주문을 넣어본다. 어렵긴 해도 우리 기죽지 말더라고! 

덧붙이는 글 | 페이스북과 브런치에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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