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감독의 일탈, 이후 10년의 공백기
[양형석 기자]
2002 한·일월드컵 4강신화의 감동과 여운이 그대로 남아있던 2002년 7월 MBC에서 새 수목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가 방영을 시작했다. <햇빛 속으로>와 <맛있는 청혼>을 연출했던 박성수 PD와 <해바라기>의 각본을 썼던 인정옥 작가가 의기투합해 만든 <네 멋대로 해라>는 양동근과 이나영, 공효진 등 20대의 젊은 배우들을 전면에 내세운 드라마였다. 물론 신구 배우와 윤여정 배우 등 조연 캐릭터들의 열연도 대단히 돋보였다.
<네 멋대로 해라>는 3~40%의 시청률을 기록한 소위 '국민 드라마'는 아니었다. 하지만 <네 멋대로 해라>는 당시 2~30대 시청자들 사이에서 탄탄한 마니아층이 형성됐고 활발한 팬활동으로 이어졌다. 이들은 스스로를 '네멋폐인'으로 부르며 <네 멋대로 해라> 상영회를 주최했고 대본집과 감독판 DVD 출시를 주도했다. '네멋폐인'으로 시작된 특정 드라마의 열혈팬은 '다모폐인'과 '미사폐인'으로 이어지며 2000년대 초·중반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 <비트>로 유명했던 김성수 감독의 코미디영화 <영어완전정복>은 전국 91만 관객으로 흥행에 성공하진 못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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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영화 만드는 감독들의 코미디 외도
한국영화 최초의 천만 영화를 만들었던 강우석 감독은 2000년대 초반까지 <투캅스1,2>와 <마누라 죽이기>,<공공의 적> 등 코미디 영화를 주로 만들었다. 하지만 <실미도>를 계기로 <한반도>,<이끼>,<고산자, 대동여지도> 등 진지한 영화들을 연출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진지한 영화를 주로 만드는 감독들이 가끔씩 코미디 장르에 도전할 때도 있는데 관객들은 낯설어 하면서도 의외의 개그코드에 좋은 반응을 보내기도 한다.
<비 오는 날의 수채화>와 <클래식> 등 애틋한 멜로 영화로 관객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곽재용 감독은 2001년 차태현, 전지현 주연의 <엽기적인 그녀>를 선보였다. PC 통신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동명의 인터넷 소설을 영화화한 <엽기적인 그녀>는 소설의 재미를 실사로 풀어낼 수 있을지 우려하는 관객들이 많았다. 하지만 <엽기적인 그녀>는 전지현이라는 스타배우를 발굴하며 서울에서만 173만 관객을 동원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라디오 스타>와 <동주>,<박열> 같은 명작들을 연출했던 이준익 감독은 지난 2003년 데뷔작 <키드캅> 이후 10년의 공백을 깨고 코미디 영화 <황산벌>을 통해 복귀했다. 신라군과 백제군이 각 지역의 사투리를 사용한다는 재미 있는 설정의 코미디영화 <황산벌>은 277만 관객을 동원하며 이준익 감독을 부활시켰다. <황산벌>의 성공으로 탄력을 받은 이준익 감독은 2005년 연말 한국영화 세 번째 천만 영화 <왕의 남자>를 선보였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친절한 금자씨>로 이어지는 '복수 3부작'을 끝낸 박찬욱 감독은 2006년 연말 다소 뜬금없이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로맨틱코미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를 만들었다. 정신병원 배경의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전국 73만 관객에 그치며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2007년 베를린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일프레드 바우어상'(현 은곰상-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올해 크리스마스에 공개 예정인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2>를 만들고 있는 황동혁 감독은 데뷔작 <마이 파더>부터 <도가니>, <남한산성> 등 주로 진지하고 무거운 장르의 영화들을 만들어왔다. 하지만 황동혁 감독의 필모그라피에도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판타지 코미디영화가 있으니 바로 2014년에 개봉했던 <수상한 그녀>다. <수상한 그녀>는 심은경과 나문희 배우 등 연기구명이 없는 출연진들의 호연으로 전국 865만 관객을 동원했다.
▲ 이나영은 <네 멋대로 해라> 이후 차기작으로 <영어완전정복>의 평범한(?) 공무원 역할에 도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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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에 개봉한 <서울의 봄>을 통해 천만 감독이 된 김성수 감독은 1995년 이병헌 주연의 <런어웨이>로 데뷔한 후 1997년 <비트>와 1999년 <태양은 없다>를 연이어 히트시키며 일약 스타 감독으로 도약했다. 2001년 사극액션 <무사>를 통해 뛰어난 영상미와 남성적인 연출로 이름을 날리던 김성수 감독이었기에 2003년 코미디 영화 <영어완전정복>으로의 파격 변신은 관객들이 적응하기 쉽지 않았다.
<영어완전정복>은 동사무소 9급 공무원 영주(이나영 분)가 부족한 영어실력 때문에 외국인의 민원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고 이 때문에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이상형인 문수(장혁 분)를 만나게 된다는 내용의 코미디 영화다. <영어완전정복>은 수수한 차림을 하고 촌스런 안경을 썼다는 이유로 장혁을 비롯한 영화 속 모든 출연자들이 연예계의 대표 소두미녀 이나영을 '평범하다'고 이야기하는 매우 독특한(?) 설정의 영화다.
데뷔 후 처음으로 코미디 영화 연출에 도전한 김성수 감독은 <영어완전정복>에서 애니메이션과 실사를 결합한 연출로 웃음을 전달했다. 특히 학원에 모인 학생들이 레벨테스트를 받을 때는 격투게임 속에 인물이 들어가 게임 속 캐릭터와 영어로 싸우는 연출을 선보였다. 문수가 클럽에서 원어민 교사 캐시(안젤라 켈리 분)와 춤을 출 때도 캐시로부터 문수를 구해내는 영주의 상상을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했다.
영주는 소주병 돌리기를 통해 동사무소 대표로 어쩔 수 없이 영어학원에 오게 됐지만 문수에게는 영어를 배워야 할 확실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된 동생 문영(이소은 분)과 원활한 대화를 하기 위함이었다. 영주가 문영을 문수의 애인이라고 오해하면서 문수가족의 상봉이 무산될 뻔 했지만 영주의 노력으로 가족상봉은 극적으로 성사됐다. 그리고 런닝 타임 내내 코미디로 진행됐던 영화는 잠시 애틋한 가족드라마로 장르가 바뀐다.
<영어완전정복>은 코미디에 도전한 김성수 감독의 유쾌한 연출과 주연을 맡은 이나영, 장혁의 코믹한 연기가 만난 흥미로운 영화였다. 하지만 2주 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개봉하면서 전국 91만 관객으로 만족스런 흥행성적을 올리지 못했다. 이후 김성수 감독은 2013년 <감기> 개봉 전까지 무려 10년의 공백기를 가져야 했다. 이나영은 2004년 인정옥 작가의 신작 <아일랜드>에서 신비한 한국계 아일랜드 여성 이중아를 연기했다.
▲ 김성수 감독의 작품에 출연했던 유해진(왼쪽)과 이범수는 <영어완전정복>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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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7일 개봉 후 한 달 가까이 독립·예술영화 부문 흥행 1위를 달리고 있는 김용균 감독의 <소풍>에 출연한 나문희 배우는 <영어완전정복>에서 문수의 어머니 조여사 역을 맡았다. 아버지를 닮아 바람둥이 기질을 가진 아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면서도 만나는 여자 중 공무원(영주)이 있다는 문수의 이야기에는 큰 관심을 보인다. 물론 나문희 배우의 진가가 드러난 장면은 딸 문영과 나눈 눈물의 재회 장면이었다.
'쌍천만 영화' <신과 함께>의 원작자 주호민 작가로부터 김자홍 캐릭터(차태현 분)와 가장 닮은 배우라고 평가 받았던 정석용은 <영어완전정복>에서 타이슨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학원 수강생을 연기했다. 초반에는 여러 수강생 중 한 명으로 별다른 존재감이 없었던 타이슨은 영화 중반 강사인 캐시에게 '고향의 맛'을 느껴보라며 피자를 선물했다. 그리고 각 인물의 뒷 이야기가 나오는 엔딩 크레디트에서 캐시와 결혼했다.
많은 코미디 영화들이 그렇듯 <영어완전정복> 역시 카메오 라인업이 꽤 화려한 편이다. 김성수 감독의 <무사>에 출연했던 유해진과 <태양은 없다>에서 좋은 연기를 선보였던 이범수는 맨발로 지하철을 탄 영주에게 문수의 탑승을 알려주는 만담콤비로 등장했다. 그리고 영주 옆에서 스포츠신문을 보던 남자는 원로 코미디언 한무였고 정두홍 무술감독은 영주의 상상장면에서 강의실을 습격하는 테러리스트 역할로 특별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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