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말로만 미세먼지 공동연구?…중국에 주도권 뺏겼다

세종=송승섭 2024. 3. 7.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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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환경학자들, 지난달 말 베이징 회동
'연구 어떻게 진행할까' 협의 내용 봤더니
계획수립, 성과정리, 측정센서 다 中 담당
현지에 실험실도 없는 한국 연구진

한중 미세먼지 공동연구의 핵심 단계가 대부분 중국 주도하에 진행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 시행계획을 중국이 마련하고, 기존 연구 성과 정리와 향후 계획 수립도 중국이 맡았다. 미세먼지 측정에 사용되는 센서도 중국 기기를 사용한다. 한중이 공동으로 미세먼지 해결에 나섰다고 홍보했지만, 한국은 현지 실험 공간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이 연구 주도권을 거머쥐면서 연구 결과의 공정성과 투명한 공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계획수립·성과정리·측정센서 모두 ‘중국 담당’

7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원경하 한중 환경협력센터장을 포함해 국립환경과학원, 한국환경연구원, 한국환경산업기술원 등 한국 측 환경 전문가 10명은 지난달 26일 중국 베이징을 찾아 ‘청천(晴天) 계획’ 실무협의를 진행했다. 중국에서는 저우쥔 생태환경부 과장을 비롯해 일대일로 녹색발전 국제연구원, 중국환경과학연구원, 과학기술부 평가센터, 난카이대 연구센터 소속 학자 14명이 참석했다.

‘맑은 하늘’이란 뜻의 청천계획은 한국과 중국의 미세먼지 협력사업을 하나로 통일하는 프로젝트다. 대기오염 및 기후변화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2019년 2월 양국이 합의했다. 계획은 크게 대기정책·기술교류, 기술산업화, 공동연구 등 3개 부문으로 꾸려져 있다. 이 가운데 공동연구의 경우 국내 미세먼지의 원인인 중국 대기오염을 양국이 함께 살펴본다는 점에서 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공동연구의 핵심 단계는 대부분 중국이 주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국 간 실무협의 내용을 보면 황사 공동연구는 중국이 마련한 연구 세부시행 계획을 바탕으로 한다. 연구의 주제와 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초기 작업을 중국이 수행한다는 뜻이다. 대기질 오염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센서와 측정도 중국이 담당한다. 한국은 연구 결과를 전달받을 예정이다. 기존 연구성과 정리와 향후 계획 등도 중국이 정리해 공유할 계획이다.

2019년 11월 4일 조명래 당시 환경부 장관(왼쪽)과 리간제 당시 중국 생태환경부장(장관)이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1차 한-중 고위급 환경정책협의회’를 열어 ‘청천(晴天) 계획’ 이행 방안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환경부

중국 중심의 연구지만 한국은 공동저자로 참여할 방침이다. 현재 한국과 중국의 연구진은 공동 1저자로 등록이 가능한 학회지를 조사하고 있다. 마땅한 학회지가 선정되면 투고까지 진행하기로 협의했다. 향후 공동논문을 이용해야 할 때는 자국의 자료는 각자 투고, 양국의 자료는 미리 조율하기로 했다. 이 같은 내용을 토대로 양국은 다음달 25일 중국 칭다오에서 공동연구 워크숍을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내에서 대부분의 실험이 이뤄질 예정이지만 한국 측은 현지에 제대로 된 연구공간도 확보받지 못한 상태다. 중국 과학원에 파견된 한국 연구원이 있지만, 한중 협력센터 직원으로 실험을 수행할 공간이 없다. 한국 측 관계자들은 청천계획 확대에 따라 중국 과학원으로 파견이 가능해지면 ‘종합실험실 내 연구공간을 제공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韓 미세먼지에 영향 없다는 中…'공정성' 우려

관련 실무자들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당시 출장에 참석했던 핵심 관계자는 “중국이 공동연구를 하자고 제안했기 때문에 중국에서 계획을 만들어주기로 한 것”이라면서 “우리도 검토하고 필요한 부분은 같이 토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측정센서도 드론 등 중국이 개발해 보유하고 있는 것이 많고, 한국은 활용하기 불편한 부분이 있어서 중국이 주도해 진행하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각국 정책의 저감효과를 분석하는 ‘모델링’ 등 한국이 주도하는 분야도 있다고 덧붙였다.

자오리젠 당시 중국 외교부 대변인. 사진은 2020년 2월 24일 베이징 외교부 청사에서 정례 브리핑을 하는 모습. [이미지출처=연합뉴스]

관건은 한국 미세먼지 발생에 중국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정확히 분석·평가되느냐다. 중국은 한국 대기질에 끼치는 영향이 적다는 입장을 꾸준히 내비쳐왔다. 2021년 한국과 중국에 10년 만에 최악의 황사가 닥쳤을 때도 자오리젠 당시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환경과 대기 문제는 국경이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 언론이 사용한 ‘중국발 황사’ 표현에 대해서는 근원지가 몽골이라는 이유로 “불필요한 언론플레이를 삼가야 한다”고까지 했다. 2022년 겨울 미세먼지 때는 중국 공산당 기관지 계열의 언론 등에서 “중국발 스모그라는 표현은 한국이 자국의 미세먼지 문제를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간과하게 만드는 표현”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다 보니 과학적으로 이뤄진 연구를 중국이 반박하거나 아예 공개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다. 2016년 국립환경과학원과 미 항공우주국(NASA)의 공동 연구가 대표적이다. 한미 연구진은 국내 초미세먼지의 절반가량이 외국에서 들어왔고, 이 중 다수가 중국 유입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럼에도 중국은 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2018년에도 한·중·일이 공동연구를 추진했지만 시한을 앞두고 중국 측이 여러 내용을 빼야 한다며 반대해 공개하지 못했다. 2019년에야 한·중·일 공동연구 요약보고서가 발표됐는데, 중국의 대기오염 물질이 한국에 끼치는 영향은 평균 32% 수준인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해 3월 22일 중국 베이징 중심업무지구가 황사로 뿌옇게 물들어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번 연구 보고서도 대중에 공개될지는 미지수다. 중국이 보고서 공개를 위한 내부 보고를 아직 못 끝냈기 때문이다. 만약 끝까지 중국이 공개를 거부하면 한국으로서는 뚜렷한 대응책이 없다. 한국 연구자들도 중국의 보고가 길어지면 추후에 다시 협의하자고만 얘기한 상태다.

정부에서도 중국 중심의 연구진행과 공개 여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환경부 관계자는 “중국 본토에서 이뤄지는 연구다 보니 중국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고 인정했다. 그는 이어 “중국도 생각하고 있는 바가 있고 연구와 실제가 다를 수도 있다”면서 “중국이 결과에 대해서 인정을 못 하겠다고 말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전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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