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델타동'보다 '세모벌동', '어울림동' 어때요?

이창수 2024. 3. 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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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외래어 법정동 논란을 보며... 순우리말 살리려는 노력이 중요한 이유

[이창수 기자]

 낙동강하구인 부산 강서구에 만들어지고 있는 에코델타시티 조감도
ⓒ 부산시
 
최근 부산시가 새로 만든 마을 이름을 '에코텔타시티'라 짓고 그 마을이 있는 동(洞) 이름은 '에코델타동'으로 하겠다고 해서 말이 많습니다(관련 기사: 부산 '에코델타'동? 전국 첫 외래어 법정동 이름 논란 https://omn.kr/26vsp ).

이런 결정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한글문화단체모두모임과 부산시민사회단체가 함께 이를 반대하는 뜻을 담은 밝힘글(성명서)를 내고 있고, 오는 8일 여러 모임과 함께 부산시청 앞에 모여 그 의견을 밝힌다고 합니다. 하지만 애초 결정이 주민투표 등으로 이뤄졌다고 해서, 결론이 어떻게 지어질지는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저는 사단법인 토박이말바라기 대표('맡음빛')입니다. 겨레 삶과 얼이 고스란히 깃들어 있는 토박이말, 즉 고유어와 순우리말을 지키고 가꾸는 일을 하는 사단법인 토박이말바라기(아래부터 '토박이말바라기') 회원들 모두는 이번 소식을 듣고 참으로 슬퍼하고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토박이말바라기'는 토박이말을 한글로 적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말글살이이며 토박이말과 한글을 함께 지키고 가꾸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마당에 일이 좋은 쪽으로 잘 끝이 나기를 바라고 이 일이 우리의 '국어의식'을 높이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부산 신도시에 '에코델타시티'라는 마을 이름을 붙였다는 것도, 그 마을이 있는 법정동 이름을 '에코델타동'으로 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그곳의 이름을 그렇게 하는 것이 여러 모로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앞장 서서 일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부산시는 이것 말고도 '마린시티', '센텀시티', '그린스마트시티'와 같은 이름을 진작에 써 오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게 큰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국내에선 자연 생태계를 어지럽히는 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동식물을 '생태교란종'이라 부르고 '생태교란종'을 함부로 풀어 놓는 것을 법으로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다들 그렇게 하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 일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먼저 깨달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이 앞장서 법을 만들고 그것을 널리 가르치고 배우도록 해서 그런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옳고 바람직하다는 생각(의식)이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환경 교육을 바탕으로 그러한 환경의식을 길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말을 여기는 '국어의식'은 어떨까요? 한국어 생태계 속에 다른 나라말 즉 외래어를 마구 함부로 갖다가 쓰는 것은, 저는 자연 생태계 속에 생태계 교란종을 풀어 놓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쓰는 말글살이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평소 외래어를 쓰는 것과 자연 생태계에 생태교란종을 풀어 주는 것과는 다르게 여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부산시에서 마을 이름, 길 이름, 다리 이름들을 '센텀시티', '문텐로드', '휴먼브릿지'와 같은 다른 나라말로 짓는 것을, 만약 한글과 순우리말을 어지럽히는 것으로 생각했다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국내 토박이 동물과 식물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힘을 쓰는 것이나 우리 고유의 말인 토박이말을 지키고 가꾸는 일에 힘을 쓰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잘 가르치고 배우는 길을 열어야 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토박이 동물과 식물보다 들어온(외래) 동물과 식물이 더 좋아 보이고 멋져 보일 수 있지만, 그들이 우리 토박이 동물과 식물을 못 살게 하기 때문에 보살펴야 한다는 것처럼 외부의 들어온 말(외래어)이 멋있고 더 있어 보이지만 그들이 우리 토박이말이 설 자리를 빼앗기 때문에 더 보살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먼저이겠습니다.

'국어기본법'도 있고 '부산시 조례'도 있으니 지켜야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맞다고 생각하지만, 나아가 어떤 동이름을 쓰는 것이 좋은지 알려주는 일까지 한다면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서 토박이말을 바탕으로 한 동이름을 몇 가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본디 '에코델타'에 어떤 뜻을 담고 싶었는지 정확히 다 알 수는 없습니다만 신문과 방송에 나온 것들을 살펴보니 '환경'을 뜻하는 '에코(eco)'와 낙동강 삼각주를 뜻하는 '델타(delta)'를 더해 만든 이름이라는 풀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뜻을 담을 수 있는 토박이말을 바탕으로 한 이름을 지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생각에서 나온 첫 이름은 '세모벌동'입니다. '델타(delta)'는 한자말로 '삼각주(三角洲)'이고 토박이말로는 '세모벌'입니다. '세모+벌'의 짜임으로 '세모꼴의 넓은 땅'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세모벌에 자리잡은 동의 이름으로 알맞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한 이름은 '어울림동'입니다. 신문과 방송을 보니 '에코델타시티'라는 곳이 '친환경스마트신도시'를 만들고자 했다는 풀이가 있었습니다. '친환경'이라는 뜻을 담고자 '에코(eco)'를 넣었다면 '친환경'의 뜻을 가진 말을 쓰면 더 좋을 것 같았습니다. '친환경'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자연환경을 오염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환경과 잘 어울리는 일'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이런 뜻을 담은 말은 뜻풀이에도 나온 '어울림'이고 '어울림동'이라는 이름입니다. 이 이름에는 그런 뜻에 더해 이 동(洞)이 자리 잡은 '명지(鳴旨)'라는 이름에 담긴 '울림'의 뜻도 담을 수 있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한 이름은 '갈매기동'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부산시를 나타내는 새가 갈매기입니다. 갈매기는 부산시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낙동강 아래쪽에 자리잡은 이 동(洞)에 해마다 철마다 찾아오는 갖가지 갈매기와 이어져서 자연과 가까이에 있으며 자연환경에 잘 어울리는 '친환경'의 뜻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토박이말바라기'에서 만들어 본 이름들 중 일부를 동이름으로 쓰게 되면 참으로 기쁠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슬기를 모아 나은 이름을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이 일이 잘 마무리 되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국어의식'을 좋은 쪽으로 길러서 토박이말과 한글을 함께 지키고 가꾸는 일에 힘과 슬기를 모으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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