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국학진흥원, ‘고려거란전쟁’ 이야기 웹진 담 3월호 발행
한국국학진흥원이 ‘조선의 눈으로 고려를 보다’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3월호를 발행했다.
KBS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은 기존 사극 시청층뿐 아니라, 젊은 세대의 높은 호응과 지지를 얻으며 고려 시대에 대한 호기심과 판타지를 촉발하고 있다.
이번 호는 조선의 지식인들이 고려에 가졌던 인식에 대해 살펴봤다.
동북 9성을 이룬 윤관을 기리다
‘윤관의 9성에 대한 조선 시대 지식인의 인식’에서 이정신 교수(한남대학교)는 고려 숙종과 예종 대에 활약한 문신 윤관(尹瓘, 1040∼1111)에 관한 조선 시대 지식인들의 평가를 담았다.
고려는 현종(顯宗) 대에 거란의 침략을 받은 이후부터 서북방면 진출은 포기하고 동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는 데 주력했다. 예종 2년에 윤관은 별무반을 편성해 완안부 여진을 소탕하고 9성을 설치해 여진인을 내보내고 남도 주민을 이주시켜 완전히 고려의 영토로 만들었다. 이로써 고려는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통치 질서의 수립뿐 아니라 영토 확장을 통한 농경지 획득이라는 경제적인 효과를 가져왔으나 화평론을 내세운 고려 조정은 정벌 2년 만에 동북 9성을 반환한다. 하지만 고려가 9성에서 철수한 지 6년 만에 여진은 금나라를 세우고 고려에 군신 관계를 요구하자, 고려는 9성 반환이 실책이었음을 인식한다.
농경과 유목의 차이가 불러온 전쟁
‘고려와 거란 전쟁-정주와 유목의 충돌’에서 허인욱 교수(한남대학교)는 고려와 거란, 두 나라가 전쟁한 이유를 문화사적으로 풀어낸다.
농사하며 정착 생활을 하는 고려와 달리, 거란은 계속 이동하며 가축을 키우는 유목 문화를 영위했다. 이러한 차이는 상대 문화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는 간극을 초래했고 그 결과 전쟁이라는 무력 충돌이 나타났다.
유목민의 생존에 문제가 발생하는 때는 가축들에게 풀을 먹일 수 없는 겨울이었다. 그래서 유목민은 생존을 위해 초원 바깥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거나, 교환을 했으나 그것도 안 되면 약탈하는 수밖에 없었다. 전쟁과 관련한 ‘요사’의 기록에 거란은, 출병은 음력으로 9월을 넘기지 않고 군사를 돌이키는 것은 12월을 넘기지 않도록 했다고 한다. 이는 생활시스템 속에서 자연스레 이루어진 일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또 거란이 고려를 치기 위해서는 요동과 한반도를 잇는 의주를 통해야만 했는데, 땅이 얼어 단단해져야 압록강을 지날 수 있었던 것도 겨울을 선택한 이유의 하나였다.
1019년 귀주대첩에서는 비바람을 이용한 고려군의 공격에 거란군이 달아나자 이를 쫓아가 공격을 했다는 ‘요사’의 기록으로 보면 고려 또한 기마병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는 거란군을 막아내기 위해 고려가 거란의 장점인 기마술을 수용, 습득했음을 알려준다.
고려 시대 거란과 전투에 공을 세웠던 이들은 조선 시대에도 추숭됐다. 고려때부터 있었으나 여러 병란으로 사라진 평안도 선천군의 삼충사(三忠祠)를 인조 23년(1645)에 다시 세워 1011년 정월에 거란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양규(楊規)와 김숙흥(金叔興), 유백부(庾伯符)를 모셨다. 강감찬 장군은 태조 대부터 여러 서원에서 배향하고 묘를 재정비하기도 했다.
웹진 담談 2024년 3월호는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안동=권기웅 기자 zebo15@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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