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콘텐츠 날아다니는데…예산 감액에 발목 잡힌 영화인들 [영진위 예산 칼질①]

류지윤 2024. 3. 7.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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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영화문화 활성화·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 예산 0원…"영화계 생존과 직결된 문제"

“5년 동안 에미상과 아카데미상 등 주요 시상식에서 상을 받는 이른바 '킬러 콘텐츠'를 향후 다섯 편 창출하겠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 유인촌 장관이 밝힌 목표다. 여기에 2027년까지 영상 콘텐츠 산업 규모를 40조원으로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한국 영화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고 영화 산업의 진흥을 위해 설립된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배정받은 예산이 줄어들어 이 목표를 어떻게 실현시킬 것인가라는 물음표를 띄우게 한다.

ⓒ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올해 영진위의 예산은 589억6600만원(사업비 463억7700만원)으로 감액됐다. 이는 문화체육부로 이관된 투자 출자 사업 예산 250억원을 제외하고 200억원가량 감액돼 전년 대비 38.5% 줄었다. 2022년 1100억원을 돌파하며 '예산 1000억원 시대'를 맞이했지만, 코로나19 여파로 2023년 850억원으로 삭감되더니, 올해는 이보다 260억원이 줄어든 예산으로 살림을 꾸려야 한다.

세부 항목을 살펴보면 지역 영화 문화 활성화 지원, 상업 영화 창작 기획 개발 지원, 첨단 영상 활성화 지원이 폐지됐다. 제작사와 독립·예술영화 창작자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하기 위해 영진위와 영화계가 수년간 노력해왔던 것과 배치되는 항목이다.

독립예술영화 지원 사업은 2022년 80억원에서 2023년 114억원으로 증액됐으나 올해는 장편 부문 52억원, 단편 부문 4억 100만원, 다큐멘터리 부문 9억원, 독립예술영화 제작지원 2억 4000만원으로 약 70억원만이 배정됐다. 독립예술영화 전용관 운영지원 사업은 15억 8400만원, 독립영화 전용관 8억 5500만원, 독립예술영화 개봉 지원 사업 14억 5200만원으로 40억 원이 되지 않는다. 70억원을 지원한 지난해보다 30억원이 축소된 것이다.

영화인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업은 2024년 전액 삭감 결정된,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예산이다.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사업은 영화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지역의 상황에 맞는 효율적인 영화인 육성 및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 왔고, 지역민의 영화문화 향유를 위한 상영회 운영, 가치봄(한글자막 화면해설 서비스) 영화 제작, 지역영화 배급 사업 추진 등 소외지역에서 시민과 영화인이 함께 성장하고, 지역 영화문화 생태계를 선순환의 구조로 뿌리내릴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으로 기능해 왔다.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 예산은 2018년 도입 이후 2021년 29억 3000만원, 2022년 16억 원 3000만원, 2023년 8억원으로 줄어왔고, 올해는 0원이다.

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 지원 사업도 지난해 4억원에서 올해는 배제됐다. 지역 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 사업 역시 지역 영화인의 영화제작을 위한 유일한 지지대로, 부족한 인프라를 극복할 지역 영화인들에게 동기부여가 됐다.

두 사업 예산은 2023년 영진위 전체 예산의 0.2%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역 영화계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이에 지난해 전국 11개 지역 99개 영화단체 공동성명을 내고 영진위 예산에 항의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단체들은 "단순히 예산을 절감하는 게 아니라, 지역에서 영화를 만드는 일 자체를 봉쇄하고 포기하겠다는 이 정권의 무책임한 결정이다"라고 반발했다.

성명서를 발표하며 예산삭감 철회를 요구했지만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광주영상인 연대 관계자는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 사업으로 사업과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다. 광주영화 포럼과 지역 내 단체와 연계한 상영회, 영화 비평지 등 6개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비평지만 문화재단 지원을 받아 남아있고, 나머지는 모두 중단됐다. 인원 역시도 감축됐다"라고 올해의 어려운 사정을 토로했다.

광주영상인연대서 운영하는 독립영화 전용관 역시 운영지원 사업을 받고 있었으나, 사업 규모가 축소됐다. 이 관계자는 "올해 사업비가 나오기는 했지만, 지난해와 비교해 절반이 줄어들어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2025년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 난관에 부딪혔다"라고 전했다. 이에 뜻이 맞는 이들끼리 독립영화관 연대를 만들어 대응하려고 움직이고 있다.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 사업을 통해 대구영화학교를 2019년부터 운영해 오던 대구영상미디어센터 관계자는 "영진위 예산으로 대구영화학교를 진행하고 있었기에 예산이 축소된 올해는 영상미디어센터 자체 예산으로 사업 규모를 축소해서 진행할 예정이다. 5000만원에서 2000만원 정도로 예산폭이 감소했으며 프로그램 수도 불가피하게 줄여야 했다"라고 전했다.

영진위 예산이 줄면서 국내에서 개최되는 각종 영화제도 타격이 크다. 올해 국내 및 국제영화제 지원’ 예산은 24억 원 수준으로 52억원 규모였던 지난해에 비해 54%가량 감소했다. 그동안 국내영화제 육성 지원 사업, 국제영화제 육성 지원 사업으로 나뉘어 운영됐던 사업이 하나로 통합되면서, 정부 지원을 받는 영화제는 기존 40여 개에서 10개로 선정 폭도 줄였다.

한 영화제 관계자는 "올해 영화제 사업 공고가 최근 올라왔다. 그동안 최근 3년간 영화제 및 연관 사업들이 선정 대상이었는데 올해는 공고 기준이 달라졌다. 3일 이상 매년 개최한 영화제와 직전연도까지 평균 장편 10편 이상 상영해야 지원 자격이 주어진다. 많은 영화제가 이 부분을 넘어설 수 있지만 소규모 저예산으로 운영해 온 영화제 같은 경우는 신청할 수 있는 근거조차 없을 수 있으니, 영진위 영화제 예산을 향한 희망도 없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부문은 전 국민이 대상이었지만 신인 작가로 한정했다. 선정 편수는 15편에서 20편 늘렸지만 4억 1350만원에서 1억 250만원으로 줄었다. 한국 영화 차기작 기획개발 지원 예산은 2023년 28억 460만 원에서 전액 증발했다. 한 영화 제작사 대표는 "시나리오 개발 지원이 축소되면 자체적으로 기획개발비를 마련해야 한다. 대기업은 큰 영향이 없겠지만 중, 소형 제작사의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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