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현 목사의 복음과 삶] 낯선 행복
지나간 삶이 불행했던 사람은 어느 날 찾아온 행복에 낯설어한다. 행복이 왠지 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어색하다. 불편하고 불안한 행복이다. 행복이 반갑긴 하지만 멈칫거린다. 이유는 이전의 삶에서 만들어진 상처로 인한 어두운 자아상 때문이다. 과거의 여운이 현재의 삶을 덮고 있어 마치 자신은 행복을 누릴 권리가 없는 사람인 것처럼 스스로 홀대한다.
성형수술로 얼굴을 고치고 난 이후 멋지게 바뀐 자신의 모습에도 불안함이 드리워진 사람들이 있다. 외모는 고쳤지만 자아상은 그대로다. 팝의 황제였던 마이클 잭슨이 그랬다. 거듭된 수술로 그의 얼굴은 계속 망가졌다. 돈과 인기에도 채워지지 않았던 내면의 갈증은 짙은 선글라스와 반쯤 얼굴을 가린 그의 모습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과거 사랑의 깊은 상처를 가진 사람은 새롭게 다가온 사랑을 의심한다. 상대가 사랑한다고 다가오지만 놀라 뒷걸음친다. 지난 삶이 어두울수록 빛이 비쳐도 어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은 긴 잔영 때문이다. 찾아온 행복을 두 팔 벌려 환영하지 않으면 어느새 도망가고 만다.
한국사회 안에서 만연한 병 중 하나는 그 정도면 충분한데 결핍 증세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꽤 실력을 갖추었는 데도 자신감 없이 주눅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먹고살 만한데 여전히 가난하다고 여기며 움츠려 있고, 너무 멋진데 괜히 화려한 화보집을 들여다보며 열등감을 불러들인다.
멀리서는 다른 사람의 자리가 좋아 보여도 내가 그 자리에 앉으면 행복할지는 미지수다. 내면의 결핍을 채우지 못하면 환경이 아무리 좋아져도 가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행복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 과거의 상처를 떠나 보내고 지금 내게 다가온 작은 행복을 홀대하지 말아야 한다. 누구에게나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일정한 몫의 행복이 주어져 있다. 아무리 힘든 삶을 살아도 주변을 맴돌고 있는 행복을 찾아내야 한다.
밤하늘이 어둡지만 자세히 보면 어둠을 밝혀 주고 있는 이름 모를 수많은 별이 총총하게 떠 있는 것처럼 갖가지 작은 행복이 주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그것을 인정해 주고 환대해 주어야 내 것이 될 수 있다. 현재의 나를 충분히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나를 둘러싼 행복의 조건을 찾는 식별력이 필요하다.
오늘 아침에 떠오른 태양은 어제와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어낸다. 어둡고 짙은 그늘에 시달릴 이유가 없다. 과거라는 감옥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 학대를 멈추어야 한다. 움츠린 가슴을 펴야 한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오늘 나에게 최상이라고 믿어야 한다. 지금의 나는 행복을 누릴 자유가 있다. 문제는 내 마음에 달렸다. 어두운 과거에 주눅 들지 않는 자신만만함을 회복해야 한다.
이제 봄이 왔다. 지금 찾아온 봄과 사랑을 시작해야 한다. 상처를 주고 떠난 작년의 봄을 증오하지 말고 오지 않은 내년 봄날을 애타게 기다릴 필요가 없다. 봄이 오기도 전에 겨울 외투를 던지고 봄이 오는 길목으로 달려가 상큼한 봄의 향기를 먼저 맡을 수 있는 행복은 나의 선택에 달렸다. 도망갈 자유, 맞아들일 자유도 내게 있다. 눈을 크게 뜨면 행복은 내가 먹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익은 열매로 내 곁에서 기다리고 있다. 봄은 꽃샘바람과 함께 겨우내 죽은 듯한 가지에 꽃망울을 터지게 할 만한 따스한 햇살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있다. 추운 겨울에도 얼어 죽지 않고 두꺼운 껍질을 내밀고 나온 연한 순같이 이미 내 안에 작은 행복을 감싸주지 않는다면 불행한 일이다.
행복은 어디에나 있다. 행복은 내가 생각하지 않은 곳에서 솟아오르고 쇠락하기를 반복한다. 빛과 어두움은 늘 있다. 빛은 행복이고 어둠은 불행이라는 등식은 잊어야 한다. 빛은 경쾌한 음악으로, 어두움은 숭고한 시로 승화될 수 있다. 찾아온 행복을 낯설어하지 않는 것, 어제를 잊고 지금 다가온 행복을 어색해하지 말고 한껏 끌어안을 줄 아는 게 행복의 시작이다.
이규현 부산 수영로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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