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한·미에 일본·호주 참여하는 '경제적 확장억제' 마련해야"

장세정 2024. 3. 7. 00:3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성한 초대 국가안보실장이 보는 외교·안보 정상화 1년


장세정 논설위원
꼭 1년 전 윤석열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을 '협력 파트너'로 규정하고 징용 해법을 제시하면서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 내내 악화일로였던 한·일 관계의 정상화에 물꼬가 터졌다. 국내에서 친일파란 비난을 받으면서도 윤 대통령은 대한해협을 건넜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와 손잡았다. 그리고 지난 1년간 외교·안보 지형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2023년 8월 18일(현지시간)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정상회의를 앞두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일 관계가 순항하면서 지난해 4월 바이든 행정부의 뜨거운 환대를 받으며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이 성사됐다. 백악관에서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를 열창했고, 한·미 동맹 70주년의 뜻깊은 해에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박수 세례를 받았다. 한·일과 한·미의 '케미'가 무르익은 덕분에 8월에는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3국의 첫 별도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원칙·정신·약속의 세 문건을 탄생시킨 그 날 만남을 계기로 한·미·일의 협력은 과거 어느 때보다 끈끈해졌고, 단단해졌다.

「 윤 대통령, 한·일 관계 개선 의지
북·중·러 전략적 틈새 활용 필요
북 '두 국가 선언'은 대미 메시지
도발 대비 감시정찰역량 키워야

김성한(64)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윤 정부에서 초대 국가안보실장으로 한·미·일 외교 정상화의 밑그림을 그린 전문가다. 윤 대통령과 서울 대광초등 동창으로 오랜 친구이자, 대선 캠프와 인수위에서 외교·안보 분과 좌장을 맡았다. 그는 윤 대통령이 취임한 날(2022년 5월 10일) 용산 대통령실에 들어가 지난해 3월 29일까지 윤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대통령실과 가까운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숨 가쁘게 전개된 지난 1년의 '외교·안보 대장정'을 돌아보고, 당면한 현안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윤석열 정부의 첫 국가안보실장을 역임한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힘에 의한 평화'와 함께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대북 감시정찰 역량 강화를 강조했다. 우상조 기자

한·일 관계 개선 놓고 내부 격론 벌여
-일본에 손을 내미는 데 대해 격론이 없었나.
"한·일 관계 개선의 필요성에 대해선 용산 대통령실과 관계 부처 모두 공감했다. 다만, 징용 문제의 구체적 해법 및 발표 시점에 관해 이견이 좀 있었다. 국가안보실과 외교부 중심의 고위 당국자들이 내 사무실에서 장시간 토론했고, 때로는 격론을 벌였다. 윤 대통령의 한·일관계 개선 의지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 있었다. 한·일 관계 개선은 우리가 피해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일본과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발상의 전환을 했기에 가능했다."
-기시다 총리 내각의 지지율이 급락했는데, 일본 국내 정치와 무관하게 한·일 관계는 순풍을 탈까.
"올해 3·1절 기념사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일본이 한국의 핵심 파트너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가치를 공유하며,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고,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하는 관계임을 강조했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특히 한·일 양국이 ‘새 세상’을 향해 함께 나아가고 있고, 내년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계기로 한 단계 도약시키자는 발언은 양국이 협력할 분야가 아주 많은 미래지향적 관계라는 의미다.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첫 단추를 잘 끼웠으니 앞으로 양국에 어떤 새로운 지도자가 나오더라도 그 단추를 다시 풀고 과거에 입던 헌 옷으로 갈아입으려 할 경우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할 거다."

2023년 3월 16일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하며 악수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일본을 협력 파트너라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연합뉴스]


미국 유권자 상대로 공공외교 필요
-한·미 동맹이 굳건해졌지만, 미국 대선이 복병으로 지목되는데.

"과거엔 불편한 한·일 관계 때문에 한·미·일 안보협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일 관계가 개선되면서 한·미·일 안보 협력이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으니 한·미 동맹의 리스크 관리를 위한 환경은 양호하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민주·공화 행정부 모두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이 한·미·일 삼각 안보 협력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바이든과 트럼프의 재대결에서 바이든이 당선되면 한국에 좋고, 트럼프가 당선되면 나쁘다고 단정하는 건 단순논리다. 미국의 정책이 변하도록 하는 것은 중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닌 미국 유권자다. 미국 유권자들이 한·미 동맹을 꼭 필요하다고 느끼도록 공공외교에 박차를 가할 시점이다."
-꾸준히 제기되는 '트럼프 리스크'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미국 대선 리스크'란 표현이 더 적절하다. 두 가지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 하나는 북한의 위협에 대한 억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다른 하나는 중국 변수 관리를 위해 한·미 동맹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다. 날로 고도화하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억제하는데 현재의 한·미 확장억제 시스템이 충분한지 점검해야 한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경제적 강압(coercion)이 재발했을 때 과거 '사드 사태' 때처럼 미국이 수수방관하면서 한국이 미국의 대중 정책에 협조하기를 바란다면 한국이 받아들일 수 없다. 미국이 북핵에 대해 확장억제를 제도화하고 강화하는 것처럼 제3국의 경제적 강압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일종의 ‘경제적 확장억제’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한·미의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 경제적 확장억제는 한·미에다 일본·호주·뉴질랜드 등 역내 우방국과 함께 논의하는 것도 방법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3년 4월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열린 한미 정상 국빈만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노래 '아메리칸 파이'를 부르자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중·러의 북한 두둔, 한·미·일 협력 자극
윤 대통령이 한·미·일 외교를 정상화하는 동안 북·중·러가 결집하는 양상을 보였다. 특히 북한은 지난해 9월 북·러 정상회담을 전후해 우크라이나전쟁에 필요한 무기를 러시아에 대거 공급했고, 전쟁의 양상에 상당한 변화를 일으켰다.
-한·미·일 협력으로 중·러와 불편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가 한·미·일 안보 협력을 강조하게 된 것은 중·러 때문이 아니라 북한 때문이다. 2022년에 북한은 대화를 거부하고 핵미사일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탈냉전 이후 가장 많은 전략 도발을 했다. 당연히 우리로서는 동맹인 미국, 그리고 우방인 일본과의 연대가 필요했고 3자 협력을 실천에 옮겼다. 그로 인해 중·러가 한국과 멀어졌다고 하는 것은 인과관계를 왜곡한 것이다.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 훨씬 이전부터 중·러는 북한의 도발을 규탄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거부했고, 의장성명 채택조차 외면했다. 북한의 도발과 중·러의 북한 두둔이 한·미·일 협력 강화를 자극한 것이다."
-북·중·러 삼각 밀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미·일 안보 협력이 우리 안보의 중심축이지만 중·러를 한꺼번에 멀리할 필요는 없다. 북·중·러 삼각관계가 ‘위험한 삼각형’으로 등장했지만, 이들을 한꺼번에 상대하기보다는 '전략적 틈새'를 잘 활용해 대처할 필요가 있다. 중·러는 동병상련 관계이지만 최근 북·러 밀착을 중국이 그리 달가워할 리가 없다. 한·미·일 입장에서 러시아가 잘못할 경우는 중국을 가까이하고, 중국이 잘못하면 러시아를 끌어들이는 유연함이 필요하다. 그래야 한·미·일 안보 협력이 더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부터).

북한의 '두 국가 선언'은 전쟁불사론
대한민국 안보에서 최대 골칫거리는 북한이다. 그런데 북한은 최근 남북 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대남 전략에 변화를 보였다. 조만간 헌법을 개정해 영토 조항을 빌미로 북방한계선(NLL) 주변에서 도발을 감행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 선언을 어떻게 보나.
"민족과 통일을 부정하며 내세운 ‘두 국가 전쟁 불사론’이다. 김일성-김정일로 이어져 온 민족·평화·통일을 부정했다는 점에서 ‘역사 지우기’이고, 대남 통일전선전술의 의미를 스스로 부정한 셈이다. 그 지향점은 미국을 향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남북한을 별개 국가로 대하고, 북한의 주권을 존중해주면 미국과 비핵화를 빼고는 모두 협력할 준비가 됐다는 대미 전략적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 예컨대 소량의 핵탄두만 인정해 주면 미국을 때릴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은 포기하고 미국의 동맹국이 될 각오가 됐다는 것이다. 미국의 70년 혈맹인 한국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전략이 미국에 먹힐 것이라 김정은이 생각한다면 순진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의 올해 3·1절 기념사는 두 국가를 주장한 북한에 대해 자유와 통일을 강조함으로써 북한과의 차별성을 극적으로 부각했다. 특히 3·1운동은 남북한 주민 모두가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통일로 비로소 완결된다고 윤 대통령이 강조한 부분의 의미가 크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국가안보실장을 역임한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진행한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커졌다며 철저한 대비를 주문했다. 우상조 기자

-4월 총선과 11월 미국 대선을 겨냥한 북한의 도발이 우려된다.
"강력한 한·미 동맹에 의해 김씨 세습 왕조의 붕괴로 이어질 것이 분명한 전면전 도발은 선택 가능한 옵션이 아닐 것이다. 서해 5도 등지에서 국지도발 및 이로 인한 국지전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국가안보실장 재임 중에 100여 가지 도발 시나리오를 만들어 놨는데, 상상력을 동원해 시나리오를 업데이트하면서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총선이 끝나도 도발 가능성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국방 혁신과 함께 감시정찰 역량을 대대적으로 배양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안이함이 하마스의 도발을 불렀다. 우리 안보의 기승전결은 ‘기-승-전-감(監)’, 즉 감시정찰 능력 강화다. 비록 북한이 거부하지만, 대화의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