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호의 법과 삶] 지나친 의사 위주 의료체계 바꿔 나가야

2024. 3. 7.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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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법학박사

정부가 19년 동안 동결됐던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 늘려 내년부터 5000여 명을 뽑기로 했다. 이에 의대 증원 반대 시위에 참석한 전공의가 “나 없으면 환자 없다”고 항의하고,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이런 나라가 싫어 용접을 배우는 의사가 있다”면서 전공의 집단사직을 지지하고 있다. 그사이 치료받아야 할 환자들은 벼랑 끝에 내몰리고 있다.

의사는 환자가 있어 존재하고, 환자 곁에 있을 때 직업인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생명은 치료 골든타임을 놓치면 회복이 불가능하다. 재판처럼 세 번 할 수 없다. 국가는 높은 수준의 교육, 장기간 수련을 거친 의사에게 365일 24시간 환자의 생명을 실시간 보호하도록 진료 의무를 부여하였다. 대신 의료인에게만 진료독점권을 주어 직업적 안정과 수익을 보장해주고 있다. 의사의 생명유지 의무, 환자안전 배려 의무는 절대적 의무이다. 진료독점권을 갖는 의사들이 조직적으로 진료를 거부하는 행위는 어떤 변명으로도 허용될 수 없다.

「 변명 못할 의사들의 진료거부
지나친 의료행위 독점이 문제
위험 없는 분야는 문호 넓혀야

[일러스트=김회룡]

일부 의사들이 집단휴업, 사퇴 등의 방식으로 투쟁하는 악습관은 의료행위의 독점권을 지나치게 의사 중심으로 준 데서 비롯된 부작용이다. 의료행위를 구체적으로 정의한 법은 없다. 단지 의료법 제12조에 ‘의료인이 행하는 의료·조산·간호 등 의료기술의 시행’이라고만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동안 대부분의 의료행위는 의사가 하고 있다. 임상에서 이른바 ‘PA(진료보조) 간호사’들이 수술 보조, 골수채취 등을 진료 보조업무로 하고 있지만, 이러한 행위 역시 의사만 수행할 수 있는 것이라 하여 무면허 의료행위로 고발되고 있다. 또한 침습성이 크지 않은 안마, 문신 등도 보건위생상 위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의료행위에 포함해 의사만 할 수 있게 규제하고 있다. 이런 구조 아래서 전공의들이 환자를 보지 않겠다고 하면 병원 진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강성투쟁이 가능하다.

이제 의료행위에 대해 의사 중심이 아닌 환자 중심으로 해석을 완화할 때가 됐다. 정부도 ‘간호사 진료 지원 시범사업’을 통해 대법원 판례를 통해 명시적으로 금지한 자궁질도말세포 병리검사 검체 채취, 프로포폴 마취, 사망 진단 이외에는 간호사의 의료업무 범위를 넓힌다고 발표했다. 뒤늦은 감이 있다. 세계적으로 보건위생상 위험이 적은 안마, 문신, 임상심리치료, 접골, 침구 등 유사 직종을 허용하는 것이 추세다.

대법원은 의료인 상호 간의 업무영역 제한을 완화해주는 경향을 보인다. 몇 가지 예를 보자.

첫째, 의사가 행한 근육 내 침자극 치료행위에 대해 “한방 침술의 하나인 경근자법이라고 단정할 수 없고, 의료행위와 한방의료행위의 개념은 시대적·사회적 상황 변화에 따라 변할 수 있다”며 허용했다. 대법원은 “첨단과학기술의 발전과 학문 간 융합으로 의료기술과 한방의료기술이 진일보하는 시대에 의사와 한의사 간 업무 범위의 해석을 너무 엄격하게 하면 기술 발전을 막고 국민건강권의 침해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둘째, 치과의사가 행한 얼굴 주름 제거 목적의 보톡스 주사도 허용했다. “안면부 치료는 치과 의료행위 대상이고, 의학과 치의학은 학문적 원리가 다르지 아니하고, 치과대학에서 보톡스 시술 교육을 하고 있어 보톡스 시술이 의사만의 업무 영역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셋째, 한의사가 행한 초음파검사 진단에 대해서도 “한의사의 초음파 진단기기 사용을 금지하는 법 규정이 없고, 한방의료행위를 하면서 진단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보건위생 상 위해가 생길 위험이 없다”며 허용했다. 넷째, 간호사가 의사 지도로 행한 심장 초음파 촬영행위, 물사마귀 큐렛 제거술, 고주파 온열치료, 요역동학검사 카테터 삽입술, 골절환자 부목 처치술 등은 진료보조행위로 허용했다. 다섯째, 일반인이 행한 수지침에 대해 “일반인에게 관용되고, 위험 발생이 적어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있다”고 하여 허용했다.

일본은 이미 타투 아티스트의 문신 시술에 대해 “문신이 의사로부터 받아야 할 보건위생상 위험이 적고, 역사적으로 문신사들이 해왔고, 의과대학에서 문신시술교육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허용한 바 있다.

지금까지 의료는 과학 기술 발전과 학제 간 융합으로 급속도로 진보했다. 이런 시대적 추세에 맞춰 위해가 없는 분야는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전문 영역은 의료인 간 칸막이 없는 협업을 통해 환자의 생명이 더 보호될 수 있도록 통합적으로 운용되어야 한다. 국민은 의사를 위한 나라가 아니라 환자를 위한 나라에서 살고 싶어 한다. 집단사직을 거부하고 응급실과 수술실을 지키는 의사가 존경받는 이유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현호 법률사무소 해울 대표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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