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기 ‘필향만리’] 博文約禮(박문약례)
2024. 3. 7. 00:24
배움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당연히 ‘문(文:문자로 쓰인 모든 문화)’을 널리 알고자 한다. 그러나, 잡다하게 널리 알기만 할 뿐 요점을 꿰뚫어 생활에 적용할 수 없다면 바른 앎이 아니다. 그러므로 공자는 “군자가 문(文)에서 널리 배우고, 예로써 그것을 요약·실행할 수 있어야 도(道)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유명한 4자성어 ‘박문약례(博文約禮)’가 나왔다. 문화는 널리 배우는 것도 필요하지만, 몸으로 체득하여 내 몸 자체가 마치 자연의 운행처럼 ‘스스로 그러하도록’ 실천하는 ‘예(禮)’로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 청나라 때 시인 원매(袁枚)는 “서다이옹(書多而雍), 고내멸등(膏乃滅燈)”이라고 했다. “책을 많이 읽었으되 막혀있으면 기름이 오히려 등불을 끄는 격이다”라는 뜻이다. 불씨가 작으면 부은 기름에 치여 오히려 꺼져버리고, 지혜의 샘이 막히면 읽은 책이 오히려 편견이 되어 요점을 잡지 못하고 생각과 생활이 어수선해진다. 어수선하게 실천조항이 많은 예법은 진정한 예(禮)가 아니다. 만 가지 사례를 하나로 꿰어 근본원리로 요약한 예라야 편하게 실행할 수 있는 진정한 예이다. 박문(博文)하되 약례(約禮)할 수 있어야 진정한 지식인이고 군자이다.
김병기 서예가·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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