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묵의 과학 산책] 무던한 가위의 위력
칼과 가위는 비슷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작동원리는 다르다. 칼은 이해하기 쉽다. 얇은 칼날은 손힘만으로도 단위 접촉면적당 가하는 압력이 높아서 종이건 수염이건 잘라낸다. 하지만 날카로울수록 그만큼 약하단 뜻이라 쉽게 무뎌진다. 가위 날 각각은 훨씬 무뎌서 오이 하나 썰기도 힘들지만 두 개를 붙여 놓으면 자르는 기능이 증폭된다. 종이나 비닐 포장지에 가위를 적당히 벌려 갖다 대고 그냥 밀기만 해도 깨끗이 자를 수 있다. 지익~ 잘리는 소리와 함께 미묘한 쾌감마저 준다.
가위는 날카로움보다는 날 옆 평평한 두 면이 얼마나 밀착할 수 있는가가 성능의 관건이다. 열린 두 가위 날은 V자 공간을 형성하고 두 날의 교차점으로 다가갈수록 열린 공간의 크기는 점점 작아진다. 가위로 종이를 자를 때 V자의 꼭짓점에 다가간 종이 모서리는 워낙 얇아 아주 작은 오라기부터 점차적으로 자를 수 있다. 두꺼운 종이는 V자 꼭짓점에 접근할 수 없어 한 번에 많은 종이 섬유를 잘라야 해서 더 힘들다. 칼은 1차원의 날로 2차원 평면을 가르고, 가위는 2차원 면 두 개로 1차원의 모서리를 가른다. 별로 날카롭지 않은 물체 두 개가 모여 성능과 내구성 좋은 가위를 이룬다.
무딘 것 두 개로 예리함을 성취하는 아이디어는 분자 생물학에도 나온다. 세포들이 주고받는 온갖 신호들을 담당하는 수용체 단백질을 각각 만드는 것은 칼날을 날카롭게 세우고 유지하는 것처럼 어렵다. 가위처럼 반쪽 단백질들을 두 개씩 여러 조합으로 짝지어 수용체로 만들면 다양한 신호들을 더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새로운 발견이나 첨단기술이 나오면 이의 원리와 사회에 끼치는 영향 등을 음미한다. 수천 년 전 가위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일상 도구가 되어버린 가위의 작동원리를 수억 년간 진화했고 첨예의 연구과제인 수용체를 통해 뒤늦게나마 음미한다.
황원묵 미국 텍사스A&M대 생명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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