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마켓 나우] 천재도 버블 붕괴엔 속수무책
자본주의 경제는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적 투자를 감행한 기업가의 열정으로 성장했다. 17세기 암스테르담 상인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향신료 무역에 투자했다. 유럽에서 출발한 선단은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 인도네시아에 이르는 멀고 험한 항로를 통과해야 했다. 이들이 싣고 온 후추의 가격은 금보다 비쌌고 향미료·약제 등으로 쓰이는 육두구(肉荳蔲)는 그보다 몇 배 더 가치가 나갔다. 암스테르담에 아시아 열풍이 불었다.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설립되어 동인도회사 주식을 팔았다. 이를 통해 자본을 유치하고 위험을 분산했다.
민간이 주도하는 자본투자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암스테르담 상인은 국가가 선단을 조직하고 왕실이 수익을 독점했던 포르투갈을 몰아내고 향신료 무역의 주도권을 쥐었다. 유럽의 부가 네덜란드로 쏟아져 들어왔다. 재산이 늘어나자 새로운 투자처가 주목을 받았다. 아름다운 튤립이 네덜란드 중산층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튤립은 기르기 어려웠다. 씨앗에서 구근을 얻는 데 몇 년이 걸렸다. 물결 모양의 선이 꽃잎에 새겨진 변종 튤립은 특히 귀했다. 부유층은 튤립을 소장하기 위해 돈을 펑펑 썼다. 내년에 출하될 튤립을 미리 살 수 있는 옵션 상품이 출시돼 활발하게 거래됐다. 희귀종 한 뿌리의 가격은 저택 한 채 값과 맞먹었다. 아무리 부유하다 해도 암스테르담의 유동성에는 한계가 있었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가격을 떠받칠 신규 매수자가 유입되지 않자 튤립 가격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돈을 빌려 튤립 구근에 투자한 숱한 중산층이 빚더미에 앉았다.
18세기 해상 강국 영국도 국제 무역에 눈독을 들였다. ‘남해회사’를 설립해 아메리카 신대륙과의 노예무역에 독점권을 부여했다. 주식을 발행해 6%에 달하는 높은 배당금도 지급했다. 정부가 각종 특혜를 주고 국왕이 밀어주자 주가가 급등했다.
갖가지 풍문이 돌고 너도나도 불나방처럼 매수에 뛰어들자 단기간 주가가 몇 배나 뛰었다. 그러나 회사는 수익을 내지 못했다. 남미를 지배하던 스페인이 회사를 적극적으로 견제했다. 부실을 눈치챈 투자자가 주식을 매도했다. 주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80% 하락했다. 천재 과학자 뉴턴도 2만 파운드(현재 가치로 500만 달러)를 손해 봤다.
이후에도 신대륙과 신기술이란 새로움에 매료된 주식시장에는 주기적으로 버블이 생기고 붕괴했다. 2000년 닷컴 버블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관련 주식이 연일 급등하고 있다. 버블은 언젠가 반드시 붕괴한다. 거품 붕괴의 피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높은 주가를 합리화할 수 있는 수익과 현금흐름이 따르는지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페드시그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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