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록스 위 캐릭터, 해링턴의 ‘멜로’ 서울 왔다

이은주 2024. 3. 7.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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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해링턴 작품엔 캘리포니아 풍경과 문화가 스며 있다. 그는 “사람들이 굳이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티셔츠와 스케이트 보드, 휴대폰 케이스 등을 통해 내 작품을 접하게 하는 협업에 큰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뉴시스]

만화 주인공 같은 캐릭터가 미술관을 점령했다. 강아지 얼굴의 주인공은 끝도 없는 우주를 유영하기도 하고 뭔가에 쫓겨 여기저기 도망 다니기도 한다. 그러다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기도 하고 캔버스 밖으로 나와 그림 속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달콤한 색채로 칠해진 세상 한가운데 천진난만한 표정을 한 그의 이름은 ‘멜로(Mello)’다.

미국 팝아트 작가 스티븐 해링턴(45)의 개인전(7월 14일까지, 유료)이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서 7일 개막한다. 국내에서는 처음 열리는 개인전으로 판화와 회화, 디자인, 조각을 넘나들며 해온 작업을 한자리에서 보여준다.

그의 작품엔 미국 캘리포니아의 풍경과 문화에서 영향을 받은 현란한 색감에 만화적인 캐릭터 ‘멜로’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전시 제목은 ‘스테이 멜로(STAY MELLO)’다. ‘부드럽다’는 뜻의 영어 단어 ‘멜로(mellow)’에서 따온 것으로 ‘말랑말랑하게, 긍정적으로 살자’는 메시지를 담았다.

서울 용산 아모레퍼시픽미술관에 맞춤형으로 제작한 초대형 조각 ‘들어가는 길’.

5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인간의 형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면서 “멜로는 인종이나 나이, 성별 등을 벗어나 누구나 자신을 투영할 수 있게 만든 캐릭터”라고 설명했다. 그의 작품에 고정 손님으로 등장하는 또 다른 캐릭터 ‘룰루’는 캘리포니아의 야자수를 모티브로 했다.

멜로가 캔버스 밖으로 나와 조각으로도 존재하는 것처럼, 이 전시는 작가 역시 전통적인 미술 작업 테두리를 벗어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나이키, 크록스, 몽클레어, 몰스킨, 이니스프리 등 세계적인 브랜드와 활발히 협업·제작한 작품이 전시장에 당당하게 나온 이유다. 디즈니 만화를 보며 자라고, 힙합을 사랑하고, 드로잉을 파고들어 현재 ‘경계 없는’ 작업에 이른 작가의 여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그는 “만화적인 이미지로 관객들에게 다가가면 환경 문제 등 보다 더 진지한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얘기를 더 들어봤다.

스티븐 해링턴.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Q : 멜로는 어떻게 탄생했나.
A : “2015년 쯤에 드로잉을 정말 많이 했는데, 보다 자유로운 캐릭터를 창조하고 싶었다. 멜로는 미국인인 저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고민도 대변할 수 있기를 바라며 만들었다.”

Q : 판화를 전공했는데 지금 회화와 조각 작업을 하고 있다.
A : “미술을 공부하던 초기 타이포그래픽과 레이아웃 등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다. 판화야말로 그런 요소들이 완벽하게 조화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판화 작업을 하며 이미지를 창조하는 기법이 더 늘어났고, 작업이 자연스럽게 회화로 이어졌다.”

회화 ‘꽃향기를 맡기 위해 멈춰보세요’(2023).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전시엔 가로 10m, 세로 4.5m 규모의 초대형 회화를 비롯해 미술관 기둥을 두 손으로 붙들고 있는 거대한 조각 등도 눈길을 끈다. “존경하는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한 공간에서 전시하게 돼 기뻤다”는 그는 “단순히 공간의 크기에만 맞춘 게 아니라 공간과 상호 작용할 수 있기를 바랐다”고 말했다.

디즈니 만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멜로는 언뜻 보면 즐거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꼭 그런 모습 만도 아니다. 오히려 ‘마음의 평온을 얻기 위해 애쓰는’ 과정에 가까워 보인다. 꽃밭에 파묻힌 캐릭터를 그린 대표 연작 ‘꽃향기를 맡기 위해 멈춰보세요’도 그런 맥락으로 읽힌다.

베어브릭 피규어.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나이키와 협업해 만든 운동화.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크록스 협업 작품. [사진 아모레퍼시픽미술관]

Q : 작품에 삶의 균형, 불안에 대한 생각을 담았다고.
A : “개인적으로 삶에 있어서 균형이라는 주제를 계속해서 탐구해왔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과 거기서 벌어지는 모든 상황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제 작업 역시 그것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 코믹한 내용으로 그리며 스스로 내 안의 불안을 놀려 먹는 작품들을 만들어낸 게 삶에 대한 압박감을 덜어내는 데 도움이 됐다. 또 걱정 또한 삶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됐다.”

Q : 당신은 아티스트인가, 디자이너인가.
A : “내겐 그 경계가 없다. 홀로 작업해 완성하는 것도, 협업으로 만들어내는 제품도 내겐 모두 ‘예술 작품’이다. 이를테면 내겐 박물관에서 보는 19세기 옷이나 공예품과 지금 내가 브랜드와 협업해 만드는 상품이 다르지 않다. 그 시대의 문화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그는 “전시를 통해 결국 작품이란 것은 작가의 손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도 꼭 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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