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to 2005, 할리우드 파파라치 패션이 돌아왔다!
2024. 3. 7. 00:01
1990년대 미니멀리즘의 부활과 함께 Y2K의 종말을 선언한 패션계. 하지만 언제나 그 아류가 잔존하는 법. 2000년대로의 회귀가 일각에서 여전히 포착되고 있다. 그 목적지는? 할리우드 파파라치 패션의 전성기, 2005년이다!
「 우리가 사랑했던 몰 컬처 」
2005년은 지금만큼 전 세계가 SNS로 촘촘히 연결되기 전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패션에 관심 좀 있다는 이들은 일제히 ‘할리우드 파파라치 패션’이라는 키워드를 추종했다. 당시 ‘잇 걸’들의 룩은 매거진과 싸이월드 클럽이라는 커뮤니티를 통해 국내에 스며들어 모두를 매혹시켰다. 린지 로한, 미샤 바튼, 제시카 알바, 시에나 밀러, 커스틴 던스트, 올슨 자매… 사랑스럽고 핫한 잇 걸들의 아이템은? 쥬시꾸뛰르의 벨벳 트레이닝복, 에드 하디와 본더치의 트러커 캡, 볼링 백, 골반까지 내보이는 슈퍼 로라이즈 팬츠, 부츠컷 데님, 어그 부츠. 패리스 힐튼의 손에는 반려견 ‘팅커벨’, 올슨 자매의 손에는 스타벅스 컵이 들린 파파라치 사진은 재빠르게 퍼져 그들의 스타일은 곧 유행이 됐다. 일 년 내내 그을린 피부와 몸매를 자랑하던 셀렙들의 모습은 미국 서부의 여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담아냈고, LA 특유의 풍요로운 섹시함을 선망하게 만들었다. 이때의 룩이 바로 2024년을 사로잡을 ‘몰 컬처’ 패션! 당시 미국 서부 젊은이들에게는 쇼핑몰이 ‘핫플’이었고, 여기서 쇼핑을 포함한 모든 여가가 이뤄지곤 했다. 이들이 운동부터 데이트까지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실용적이고 쿨한 차림으로 쇼핑몰을 찾아가는 모습에 몰 컬처라는 이름이 붙은 것. 2000년대 초반의 문화인 점에선 Y2K와 같지만, LA의 따뜻한 날씨 그리고 LA 로컬들의 긍정 바이브가 담겼다는 데서 차갑고 세기말적인 Y2K 룩과는 정반대의 성질을 가진다.
「 ‘할리우드 글램’의 환상, 그 너머 」
몰 컬처의 부활은 이미 진행 중이었으나, 이를 대대적으로 선포한 장본인은 발렌시아가다. 할리우드 사인이 선명히 보이는 LA 거리에 2024 폴 시즌 런웨이를 펼치며, 몰 컬처의 상징과도 같은 쥬시꾸뛰르 벨벳 트레이닝 셋업과 어그 부츠를 재해석해 선보였다. 그뿐인가, 로컬 유기농 마켓인 에러원과의 협업은 이날만을 기다린 뎀나의 필살기였다. 에러원은 셀렙들이 즐겨 찾는, 핫하고 또 그만큼 비싸기로 잘 알려진 곳. 이곳에서 인기리에 판매 중인 ‘헤일리 비버 스무디’는 한 잔에 18달러, 2만원대다. 이 둘의 협업 제품은 후디, 티셔츠, 앞치마, 볼캡 등. 특히 토트백은 에러원의 재생지 쇼핑백을 가죽으로 재현한 것이었다. 이를 들고 걸친 모델들이 전화를 받거나 대화하는 연기를 펼친 장면은, 2005년의 LA 라이프스타일이 2024년에도 이토록 쿨하다는 사실에 대한 발렌시아가식 찬사였다. 그렇다면 이번 몰 컬처는 LA 부자들을 위한 트렌드냐고? 아니, 오히려 그 반대다. 몰 컬처의 귀환은 세상이 패션에 바라는 가치를 반영한 것으로, 그 핵심은 바로 ‘IRL’. 이는 ‘In Real Life’의 약어로, SNS나 미디어에서 주장하는 트렌드를 떠나 평범한 생활, 매일의 일상에 기반한다는 의미다. 무수한 셀렙과 인플루언서가 주인공이 되는 세상은 항상 ‘쿨하게 보이고 싶은’ 욕망과 끝없는 소비를 유도하지만, 작고 소중한 월급에 비해 물가는 몇 배속으로 오르는 세상. 게다가 우리는 할 일도, 그에 맞게 갖출 것도 많다. 회사 갈 때 입을 단정한 재킷, 놀러 갈 때 입고 싶은 스커트, 헬스장 갈 때 입는 운동복까지….. 필요한 것만 담아내기에도 벅찬 게 현실인걸!
「 현실과 일상에 다가온 런웨이 」
이런 갈증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응답이 바로 2024년의 몰 컬처 룩. 언제 입어도 편안하고, 여러 장소에 어울리며, 유행 타지 않는 것들로 런웨이를 채웠다. 피케 셔츠, 레깅스 팬츠, 버뮤다팬츠, 플랫 샌들, 흰 탱크톱, 심플한 집업이나 후디, 얇은 톱의 레이어링… 난해한 하이패션 대신, 출근부터 저녁 데이트까지 소화할 수 있는 감도를 겨냥했다. 마치 2005년 쇼핑몰에서 모든 볼일을 처리하던 그들처럼! 장식적이고 관능적인 하우스의 대명사 구찌마저 사바토 데 사르노의 합류를 통해 현시대 사람들의 일상 룩으로 성큼 다가섰으며, 셀린느는 컬렉션 대부분이 리얼웨이 그 자체였다. 미우미우 쇼는 “야, 너도 트렌디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스타일링 교재 같았다. 사실 몰 컬처엔 어려운 공식조차 불필요하다. 몸을 슬림하게 감싸는 톱이나 슬림 부츠컷 팬츠로 2000년대 무드를 표현하면 충분하다. 한마디로 2024년의 몰 패션은 ‘적게 사서, 잘 연출하는’ 이가 승자. 게다가 중고나 빈티지 아이템으로도 완성도를 훌쩍 높일 수 있다. 2005년 당시에도 홀리스터, 아베크롬비, 아메리칸 이글 같은 중저가 브랜드가 가장 핫하지 않았던가! 단, 그때 그 아이템을 재현하다 ‘05학번 is Back’의 경지로 가면 곤란하다. 그러니 컬러나 프린트, 액세서리는 신경 써야 한다. 여러 기본템을 휘뚜루마뚜루 활용하는 게 이 스타일의 매력인 만큼, Y2K 스러운 워싱이나 프린트보다는 깔끔한 것이 유용하다. 2005년의 몰 컬처를 2024년 버전으로 업데이트해줄 핵심 전략은 액세서리에 있다. 아크네 스튜디오는 고글 선글라스, 미우미우는 뿔테 안경으로 룩의 주제를 정돈하는 스킬을 선보였으니 참고할 것. 단정한 피케 셔츠는 큼직한 싱글 이어링이나 목걸이로 쿨하게 업그레이드할 수 있으며, 같은 룩도 모자나 후드를 쓰는 걸로 분위기가 새로워진다. 어쩌면 이번에 귀환한 몰 컬처는 꽤 오래도록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이 과잉에 시달리며, 동시에 불확실성의 불안감이 지배적인 요즘. 적은 소비로 다양하게 즐기는 것이야말로 개인에겐 소비를, 환경에는 폐기를 줄이는 가장 현명한 방식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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