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 덮인 지리산 아래 마을은 노란 꽃대궐

남호철 2024. 3. 6.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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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소식 전하는 전남 구례 산수유마을
전남 구례군 산동면 지리산 만복대에 하얀 눈이 덮여 있지만 그 아래 마을에는 봄소식을 알리는 노란 산수유꽃이 활짝 피어 있다.


봄꽃의 북상이 유난히 빠르다. 이른 화신(花信)을 전해주는 ‘봄의 강’ 섬진강 주변은 더 그렇다. 하지만 마지막 기세를 떨치는 겨울도 쉽게 그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봄꽃이 앞다퉈 피지만 지리산은 흰 눈을 머리에 이고 내려다보고 있다. 겨울 속에서 봄을 맞이하는 전남 구례다.

구례군 산동면에 들어서면 산수유 고장임을 실감하게 된다. 노고단(1507m)과 만복대(1433m) 사이에 깊고 넓은 고을 전체가 산수유 꽃 천지다. 노란 꽃대궐이다. ‘구례산수유마을’로 통칭하지만 만복대에서 흘러내리는 서시천을 중심으로 상관마을, 반곡마을, 하위마을, 상위마을 등 자연부락이 자리잡고 있다.

상관마을 언덕은 ‘산수유 사랑공원’으로 꾸며졌다. 대형 꽃 조형물을 중심으로 정자와 분재공원, 포토존이 조성돼 있어 사진을 남기기에 그만이다. 조금 위 반곡마을은 산수유 군락지의 중심이다. 서시천을 따라 ‘꽃담길’이라 이름 붙인 데크 산책로가 연결돼 있다.

이 마을에서 5㎞쯤 떨어진 계척마을은 구례에서 산수유를 처음 심은 시목(始木)지로 유명하다. 마을 중앙에 높이 7m, 둘레 4.8m로 당당한 풍채를 자랑하는 산수유가 시조목이다. 안내판에 ‘1000여 년 전 중국에서 가져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심은 산수유 나무의 시조’라고 적혀 있다.

산수유 마을과 가까운 산동면 외산리에 운흥정(雲興亭)이 있다. 1926년 지역의 선비들이 문학단체인 ‘시사계(詩社契)’를 조직해 운흥용소(雲興龍沼) 위에 만든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각이다.

운흥정이 붉은색 용운교와 잘 어우러져 있다.


운흥정 맞은편에는 하연(河演)과 용에 얽힌 전설이 있는 하연비가 세워져 있다. 서시천을 지나는 용운교가 이어준다. 철제 빔으로 제작된 붉은색의 용운교와 주변 풍경이 잘 어우러져 아름답다.

조선 순조 11년(1811년) ‘경제 하상공 석애시 이각비’ 라는 이름으로 세워진 비석에는 하연이 세종 4년(1422년) 전라도 감사로 있을 때 꿈에 용을 보았다는 일화를 새겨 두고 있다. 당시 잉어를 방생했는데 그 잉어가 용의 아들이었다는 내용의 시문을 용소 근처 바위에 새겼고 세월이 흘러 글씨가 마멸되자 시문을 비석에 새겨 보전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인근 광의면 온당리 지초봉 자락에 지리산 정원과 구례 수목원이 자리한다. 총 281㏊에 펼쳐진 ‘지리산 정원’은 산림휴양과 문화·체험·교육 중심의 남도 최대의 산림복합 휴양공간이다. 2021년 5월 개관한 구례 수목원은 전남도 공립수목원 제1호로 지정된 ‘힐링 숲속 정원’이다. 54㏊ 면적에 13개의 주제정원이 조성돼 있다.

지리산 정원 뒤 산에 집 라인 출발점이 보인다.


‘지리산 정원’의 명물은 ‘지리산 스카이 런’이다. 매표소에서 친환경 전기 셔틀버스를 이용해 모노레일 탑승장까지 이동한 뒤 모노레일에 올라 지초봉 상부에 있는 정류장(해발 568m)에서 하차한다. ‘집 와이어’(4레인)는 길이 1086m, 국내 최고 경사율(29.90%)을 자랑한다. 100초가량 하강하며 하늘을 나는 쾌감을 만끽할 수 있다.

광의면에는 죽음으로 민족의 자존을 일깨운 우리시대 마지막 선비 매천 황현(1855~1910)의 유적지 매천사와 호양학교(壺陽學校)가 있다. 1855년(철종 6년) 광양 서석촌에서 황시묵과 풍천 노씨의 맏아들로 태어난 황현은 11세가 되는 해에 구례로 유학해 천사 왕석보의 문하에서 배웠다.

만수동 황현 유적지에 구안실·일립정이 복원됐다.


28세 때 보거과(保擧科)에 응시한 적이 있지만 벼슬은 하지 않았다. 한양과 절연하고 구례 만수동으로 이사해 1890년 ‘넉넉하지는 않지만 편안하다’는 의미의 구안실(苟安室)이라는 초가집과 삿갓모양의 일립정을 지었다. 선비의 절개를 상징하는 매화나무를 심고, 조그만 샘을 만든 것에 연유해 매천(梅泉)이라 스스로 호를 지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3000여 권의 책더미에 묻혀 독서와 저술에 전념하며 ‘매천야록’ 등 저술을 남겼다.

광의면 지천리에 민족주의 교육을 목표로 1908년 8월 호양학교가 세워졌다. 1910년 망국의 소식이 전해지자 매천은 9월 10일 절명시 4수를 남기고 구례 대월헌에서 자결했다. 이후 1962년 그를 기리는 매천사가 건립됐다. 호양학교는 일제의 탄압으로 1920년 폐교된 뒤 2006년에 복원돼 현재는 학생들의 예절 교육 및 정신 교육장 등으로 활용되고 있다.

여행메모
‘영원한 사랑’ 9~17일 산수유꽃축제
지리산 정원·산수유자연휴양림 숙박

수도권에서 구례 산수유마을로 가려면 경부-논산천안-호남-익산포항-순천완주고속도로를 잇따라 갈아탄 뒤 오수나들목에서 빠지면 편하다.

오는 9~17일 산동면 지리산 온천 관광지 일원에서 제25회 구례산수유꽃축제가 '영원한 사랑을 찾아서'란 주제로 펼쳐진다.

수석 공원에서는 어린이 활쏘기 및 전통 놀이 체험행사가 열린다. 산수유차와 전통차를 무료로 시음할 수 있으며, 산수유 떡메치기 체험도 할 수 있다. 교통 체증 완화를 위한 산동면 관광안내소 옆 대형 버스 주차장과 임시주차장이 운영되고, 캠핑족을 위한 캠핑카 존이 관산운동장에 마련됐다.

지리산 정원 내 '숲속수목가옥'(총 14채)과 '산수유자연휴양림'에서 숙박할 수 있다. 예약은 '지리산 정원' 홈페이지에서 하면 된다. 구례 산수유자연휴양림 또한 6인실(26㎡)부터 14인실(83㎡)까지 다채로운 시설을 갖추고 있다.

구례=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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