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후폭풍···‘LCC 메기’ 출현에 바빠진 제주·티웨이
영업이익 등 수익성도 ‘한 수 위’
티웨이 등 해외 노선 확장 안간힘
에어프레미아는 미주 노선 공략
LCC 중거리 노선 경쟁력 미지수
공급 과잉에 단거리 출혈 경쟁 우려
우여곡절 끝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M&A)이 ‘유럽연합(EU) 승인’이라는 9부 능선을 넘기면서 LCC(저비용항공사)업계에도 지각변동이 나타날 전망이다. 대한항공이 합병을 위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는 물론이고 독과점 논란이 불거진 유럽, 미주 노선 등을 국내 LCC에 양도할 예정이라서다. 향후 LCC업계에 불어닥칠 변화의 바람을 진단해본다.
제주항공 넘어선 ‘메가 LCC’ 출범
가장 관심이 큰 이슈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계기로 한층 치열해질 국내 LCC 1위 경쟁이다. 합병 이후 대한항공 계열 LCC 진에어와 아시아나항공 계열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 3사가 하나로 합쳐지기 때문이다.
진에어(27대), 에어부산(21대), 에어서울(6대) 등 3곳이 보유한 항공기 수만 모두 54대로 제주항공(42대), 티웨이항공(30대) 보유 대수를 크게 웃돈다. 지난해 이들 LCC 3사가 운송한 여객 수는 1019만3995명으로 제주항공(736만5835명)뿐 아니라 아시아나항공(901만4981명) 여객 수를 앞지른다.
LCC 3곳의 매출 합산 규모도 상당하다. 제주항공은 지난해 매출 1조6993억원을 기록해 2022년 대비 144.3% 급증했다. 역대 최대인 2019년(1조3761억원)보다 3232억원 높다. 영업이익도 1618억원에 달했다.
물론 제주항공 분위기만 좋아진 것은 아니다. 통합을 앞둔 LCC 3곳 실적도 날개를 달았다. 진에어 매출은 1조2772억원에 달해 제주항공을 바짝 추격하는 모습이다. 에어부산 매출은 8904억원, 에어서울은 3109억원으로 통합 LCC 3곳 매출을 합하면 2조5000억원에 달한다. 제주항공 매출보다 1조원가량 높다. 영업이익은 진에어(1816억원) 한 곳만 놓고 봐도 제주항공(1618억원)을 앞지른다.
결국 3사가 통합하면 단숨에 독보적인 ‘메가 LCC’가 출범한다는 의미다. 통합 LCC는 국내 시장점유율이 50%에 육박할 뿐 아니라 에어아시아(209대), 라이온에어(94대), 비엣젯(85대) 등 아시아 대형 LCC와도 견줄 만한 체력을 갖출 것으로 보인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대한항공 계열 진에어가 에어부산, 에어서울과의 통합을 주도할 전망이다. ‘규모의 경제’를 누리면서 근거리 노선에서 시장 지위가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LCC들이 주로 일본, 동남아 노선을 공략해온 만큼 일부 핵심 노선이 겹칠 수 있지만 기체, 노선 구조조정을 순조롭게 진행할 경우 대형 항공사 못지않은 경쟁력을 갖출 가능성이 높다”는 항공업계 관계자들 진단도 비슷한 맥락이다.
물론 다른 항공사도 가만히 두고 보지는 않을 전망이다. 코로나 엔데믹 이후 LCC마다 해외 노선 확장에 나선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티웨이항공은 최근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로 향하는 신규 노선 항공권 스케줄을 내놨다. 5월 16일부터 주 3회 일정으로 A330-300 항공기 347석을 투입해 운항할 예정이다. 티웨이항공은 호주 시드니,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등 중장거리 노선 확장에 힘을 쏟고 있다. 9월에는 LCC 최초로 캐나다 밴쿠버 노선을 주 4회 정기 운항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여기에 대한항공이 내놓을 유럽 노선까지 합하면 단숨에 장거리 노선 대표 주자로 도약할 전망이다. 대한항공은 올 하반기부터 순차적으로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스페인 바르셀로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등 4개 노선을 티웨이항공에 넘긴다. 특히 올여름 파리에서 하계올림픽이 열리는 만큼 파리로 향하는 탑승객이 대거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배세호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티웨이항공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합병으로 가장 큰 수혜를 입는 LCC다. 높은 운임이 상당 기간 지속되며 올해 실적이 날개를 달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티웨이항공이 보유한 항공기는 유럽 노선을 취항하기 어려워 대한항공 지원이 필수다. 대한항공은 항속 거리가 긴 에어버스 A330-200 기종 5대를 티웨이항공에 임대하는 한편 이를 운항할 조종사 100여명과 정비 인력 등을 파견 형태로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에어버스 A330-200은 현재 티웨이항공이 운영 중인 항공기(에어버스 A330-300)보다 길이가 짧아 좌석 수가 적지만 더 먼 거리를 비행할 수 있다. 티웨이항공은 지난해부터 유럽 노선 지점장을 맡을 항공업계 인사들을 물색해왔다는 후문이다.
‘하이브리드 항공사’를 표방하는 에어프레미아는 미주 노선 공략에 나선다.
오는 5월 17일부터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신규 취항한다. 현재 뉴욕과 LA, 하와이를 운항 중인데 샌프란시스코뿐 아니라 대한항공의 미주 노선까지 넘겨받을 가능성이 높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은 미국 경쟁당국 승인만 남겨뒀는데 미국 역시 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 뉴욕, LA, 시애틀 등 주요 노선에 대한 독점 우려를 표명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미주 노선 13개 중 샌프란시스코와 호놀룰루, 뉴욕, LA, 시애틀 등 5개 노선을 국적사 에어프레미아에 이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에어프레미아가 보유한 항공기가 5대뿐이라 노선 확대를 위해 향후 새 항공기를 도입하는 작업이 필수다.
국내 1위 LCC 제주항공도 해외 노선을 늘리며 자존심 회복에 나섰다. 대표적인 노선이 인도네시아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간 항공회담으로 우리나라에서 발리, 자카르타로 운항하는 횟수가 주 28회까지 늘어났다. 국토교통부는 인도네시아와 항공협정에 따라 지방공항에서 출발하는 발리·자카르타 노선, 인천~바탐·마나도 노선에 각각 주 7회 운수권을 신규 배분할 예정이다.
이 중 취항 경쟁이 가장 뜨거운 노선은 인천~발리다. 그동안 인천~발리 노선에서 직항편을 운영하는 국적사는 대한항공이 유일했다. 발리 노선은 인천~자카르타 대비 편도 기준 두 배가량 운임이 높아 운수권 확대 요구가 끊이지 않았다. 이 밖에도 제주항공은 중앙아시아 취항을 검토하면서 LCC들의 중장거리 노선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제주항공·이스타항공 등 4곳 참여
국내 LCC업계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를 누가 가져갈지다. 화물사업부 매각은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 과정에서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제시한 핵심 시정 조치안이다.
화물사업부를 인수하는 항공사는 대한항공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항공화물 사업자로 등극할 전망이다. 지난해 항공사들의 국내·국제선 항공화물 운송량을 보면 대한항공이 153만6040t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아시아나항공(76만7463t), 제주항공(11만9970t), 티웨이항공(8만8737t) 등 순이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 주관사인 스위스 금융 기업 UBS는 최근 인수 후보군을 대상으로 투자설명서(IM)와 비밀유지계약서(NDA)를 배포했다. 국내 LCC 중에서는 제주항공, 이스타항공, 에어프레미아, 에어인천 등이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애경그룹 계열사인 제주항공을 제외하면 나머지 3곳은 VIG파트너스(이스타항공), JC파트너스(에어프레미아), 소시어스(에어인천) 등 사모펀드를 최대주주로 두고 있다. 입찰안내서에 따르면 화물사업부 인수는 국토교통부의 안전운항증명(AOC) 면허를 보유한 회사만 참여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을 제외하면 제주항공, 에어인천, 에어프레미아 등 3곳이 면허를 보유했다. 인수 후보 중 아직 AOC가 없는 이스타항공 등은 추후 면허를 발급받겠다는 계획이다.
에어로케이도 예비입찰에는 불참했지만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에어로케이 대주주는 대명화학그룹으로 로젠택배를 계열사로 둔 만큼 물류업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매각 주체인 대한항공은 입찰 제안을 한 후보 중 최종 인수 후보군(숏리스트)을 선정해 본입찰을 진행할 방침이다. 연말까지 입찰과 매수자 선정 등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분리 매각 준비를 마치겠다는 구상이다.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는 자체 보유 화물기 8대, 리스 화물기 3개 등 총 11대 화물기를 운용 중이다. 지난해 화물사업부 매출은 1조6071억원으로 아시아나항공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4.6% 수준이다. 영업이익은 600억~7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금융권에서는 인수 금액을 5000억~7000억원 수준으로 추정한다.
인수 후보 중에서는 매출, 규모가 가장 큰 제주항공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제주항공은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에 이어 국내 3위 항공화물 사업자다. 다만 자금력이 변수다. 제주항공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3500억원 수준에 불과해 모기업인 애경그룹 참여가 절실한데 애경그룹조차 자금 여력이 넉넉하지 않다는 우려다. 배세호 애널리스트는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인수 후보 중 현실적으로는 제주항공이 가장 유리한 후보다. 물론 다양한 자금 조달 방안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다른 인수 후보들 역시 현금성 자산이 부족한 만큼 모기업이나 재무적 투자자(FI)들과 연합해 인수전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자금력이 부족한 LCC들이 전략적 투자자로 물류 대기업과 손잡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물류 기업이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면 인수 이후 화물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멀리 보면 LCC 대주주인 사모펀드들이 전략적 투자자에 지분을 넘기고 ‘엑시트’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LCC와 손잡을 물류 기업으로는 물류사 LX판토스를 보유한 LX그룹, 동원익스프레스를 계열사로 둔 동원그룹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에어부산 분리 매각’ 주장 커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을 계기로 LCC 경쟁이 격화되지만 항공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당장 LCC들이 대형사가 도맡아온 미주, 유럽 등 장거리 수송 능력을 제대로 갖출지가 미지수다.
일례로 대한항공으로부터 유럽 노선을 넘겨받는 티웨이항공은 스카이팀, 스타얼라이언스 등 노선 공동운항을 위한 글로벌 연맹에 속해 있지 않다. 유럽 노선은 계절에 따라 수요가 급변하는 데다 중동, 유럽 항공사들과의 티켓 가격 경쟁도 치열하다. 티웨이항공이 유럽 노선을 안정적으로 운항하지 못할 경우 운수권을 도로 뱉어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항공운수권 및 영공통과 이용권 배분 등에 관한 규칙 제17조는 항공사가 배분받은 운수권을 1년 중 20주 이상 사용하지 않는 경우 운수권을 회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티웨이항공이 대한항공으로부터 넘겨받은 유럽 노선 운항 과정에서 잡음이 계속 나오면 기존 노선 운항 경쟁력마저 깎아 먹을 수 있다. 운수권을 넘겨받기 전에 장기 노선 운항 경쟁력부터 갖추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인수전을 두고서도 말이 많다. 대한항공이 화물사업부 기체, 인력을 모두 넘긴다 하더라도 화물사업의 핵심인 ‘화주 네트워크’를 인수자가 온전히 이어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항공화물은 주로 반도체, IT 기기 등 기업 고가 제품을 실어 나르는데 신규 진입자의 영업망이 취약한 만큼, 결국에는 대한항공으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크다는 것이 항공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자칫 우리나라 항공화물 운송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비난을 받을 소지도 크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만 해도 화물사업부가 ‘캐시카우’ 역할을 했지만, 최근 여객기 운항이 늘고 물류난도 점차 해소되면서 화물사업부 실적이 점차 하락세인 점도 변수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해상 운송 대비 항공화물 운송 물량 하락폭이 가파르다.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인수 과정에서 LCC 주인인 사모펀드들이 과감한 베팅을 할 수도 있다. 대형 물류 기업과 손잡을 가능성도 높은데 인수금액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 변수다.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1조원 안팎의 부채를 함께 떠안아야 하는 점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재계 관계자 분석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으로 탄생한 ‘메가 LCC’를 둘러싼 잡음도 적잖을 전망이다. 통합 LCC의 거점 지역을 선정해야 하는데 부산 민심 반발이 만만찮다. 김해국제공항을 허브로 둔 에어부산을 분리 매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한항공이 에어부산, 에어서울, 진에어를 통합한 ‘통합LCC본부’를 수도권에 유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에어부산은 2007년 부산시와 지역 기업들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회사다. 아시아나항공이 지분의 41.9%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부산시가 2.9%, 지역 7개 기업이 총 13.1% 지분을 나눠 보유했다. 지난해 에어부산의 김해공항 이용객 점유율은 35.7%로 전체 항공사 중 1위다.
코로나 엔데믹 이후 실적도 날개를 달았다. 에어부산은 지난해 매출 8904억원, 영업이익 1598억원을 기록해 역대 최대 실적을 거뒀다. 영업이익률이 17.9%에 달한다. 이 때문에 부산 지역 시민단체들은 “EU 반독점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를 따로 매각하기로 했는데, 에어부산 분리 매각도 충분히 가능한 게 아니냐”는 입장이다. 이들은 “2029년 가덕도신공항 성공을 위해 독자 운영될 지역 거점 항공사가 필요한 만큼 대한항공의 지배를 받는 에어부산보다, 분리 매각으로 독립해 지역을 위해 일하는 에어부산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편에서는 코로나 엔데믹으로 해외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기는 했지만 LCC 공급 과잉으로 자칫 ‘치킨게임’에 돌입할 것이라는 우려도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강원도 양양 기반 플라이강원, 울산 기반 하이에어는 경영난을 극복하지 못하고 지난해 법정관리 절차를 밟기도 했다.
“코로나 엔데믹 이후 LCC 분위기가 살아나기는 했지만 여전히 선진국 대비 국내 LCC 수가 많다. 단거리 노선에서 공급 과잉, 출혈 경쟁이 격화되면 문 닫는 LCC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 항공업계의 대체적인 시선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9호 (2024.03.06~2024.03.12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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