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았다, 작은 마을 속 큰 저항의 이유 [앤디의 어반스케치 이야기]
[오창환 기자]
▲ 호국공원 6.25전쟁 영산지구 전적비 앞에서 그린 영산면 전경. 오른쪽으로 영축산이 보이고 왼쪽 아래에 연지가 있다. 세피아 색 잉크로 그렸다. |
ⓒ 오창환 |
지난 2월 29일부터 3월 3일까지 경남 창녕군 영산면에서 제63회 3.1 민속 문화제가 열렸다. 국가무형문화재인 영산쇠머리대기와 영산줄다리기도 보고 싶고, 아는 분들 공연도 있어서 29일 경남 창녕으로 향했다. 서울역에서 대구역까지 기차를 타고 가면 대구서부터미널에서 영산면 가는 직행버스가 있다.
오후 늦게 영산터미널에 도착했는데, 비바람이 몰아치고 몹시 추워서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든다. 길을 물어 무형문화재 놀이마당으로 갔다. 영산은 작은 면에 불과한데 국가 무형문화재를 2개나 보유하고 있고 그것들을 공연하기 위한 전용 놀이마당도 있다니 놀랍다.
놀이마당에는 아주 넓은 운동장이 있고 본부석과 관람석이 마련되어 있다. 비가 계속 내려 운동장 바닥이 많이 질척였다. 농악대는 우의를 입고 있었고 북과 장구는 비닐을 씌워서 치고 있었다. 본부석 뒤로는 해발 681미터의 영축산이 우뚝 서 있다. 놀이마당에서 본 영축산이 굉장히 가파르게 보여서 인상적이었다.
▲ 왼쪽은 연지 전경이다. 연못의 물이 거울 같다. 오른쪽은 항미정이다. 작은 다리를 건너서 들어가 볼수 있다. |
ⓒ 오창환 |
예부터 영산 고을의 진산인 영축산은 경사가 가파르고 바위가 많으며, 산의 형태가 불꽃같아서 화기(火氣)가 강한 산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산의 불기운도 누르고, 농업 용수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마을 한쪽에 인공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의 모양이 벼루를 닮았다 하여 벼루연못 즉 연지(硯池)라고 불렀다.
"옛사람이 잘해 놓은 것을 뒷사람이 스스로 깨닫지 못하고 버려둔 것이라 하였다. 내 탄식하며 수천 민호를 동원하여 하루의 역사로 우거지고 쌓인 것을 걷어치우고 몇 자 더 깊이 파내니 물이 용 솟아 나오고 다시 개울의 냇물을 끌어오니 얼마 되지 않아 맑은 물이 고이고 차서 넘치니 바로 거울 같은 호수가 완연하여 마치 얼굴의 눈썹 같더라. 주위 넓이가 팔백 보요 깊이가 몇 길이 넘을 것 같으며 못 가운데는 다섯 섬이 있어 오성(五星)을 모아 놓은 형상이라 느티나무 버드나무와 꽃과 대나무를 가지런히 심은 호복(濠復-복원한 연못)은 한가한 상념(想念)을 드러냈다." (신관조의 항미정 기문)
▲ 카페 2층에서 그린 연지 전경. 연못 곳곳에 마을을 상징하는 조형물을 세워 놓았다. |
ⓒ 오창환 |
연지에서 조금 걸어가니 만년교(萬年橋)가 보인다. 만년교는 정조 4년(1780년)에 처음 축조되었고, 고종 29년(1892년)에 연지를 정비한 신관조 현감 때 중수한 후 몇 번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무지개모양으로 쌓은 돌다리는 구조적으로나 미학적으로나 감탄을 자아내며 주변의 수양 벚나무와 함께 개울에 비친 모습이 아름다워 사진 명소로 유명한다.
만년교 앞쪽에는 홍살문이 있어서 이 일대가 성스러운 장소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곳은 총 165만㎡의 면적으로 1973년 도시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2년 전국 최초로 호국공원으로 재조성 되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한국의 호국공원 중 손꼽히는 곳으로 우리나라 3대 국란의 호국의 성지다.
이곳에는 임진왜란 호국충혼탑, 3·1 운동 봉화대 및 기념비, 6·25 전쟁 영산지구 전적비가 있다. 임진왜란 호국충혼탑 뒤로는 물레방아가 돌고 있다. 영산 군이 경상남도 최초로 3·1 운동이 일어났던 곳임을 기념하여 이곳에서는 매년 3·1절 기념식이 거행된단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 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을 때 매번 저항의 불씨를 살린 이유는 무엇일까?
'이 마을의 이야기는 모두 영축산에서 시작되는구나.'
마을 가까이에 있는 가파르고 화기가 있는 산. 연못을 파서 화재의 가능성을 줄이기는 했지만 마을 사람들 가슴속에 있는 작은 불꽃을 꺼트리지는 못했다. 이 마을 사람들은 나라가 위기에 처하거나 불의를 보면 가장 먼저 열정적으로 일어나 나라를 바로 세우고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영축산의 정기를 받은 게 아니었을지.
그들의 공동체 정신이 영산쇠머리대기나 영산줄다리기를 살리는 원동력이고 3.1 민속 문화제로 면면히 이어지는 것 같다.
▲ 호국공원에서 바라본 영산면 전경. 마을 어느 곳에서든 영축산을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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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군 영산면 여행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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