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기, 예쁜 턱받이 사줄거야… 10초컷 ‘빕케팅’ 경쟁
육아용품이 가계 압박 요인으로
생후 4개월된 아이를 키우는 주부 홍모(32)씨는 최근 아이가 쓸 턱받이를 사기 위해 인기 가수 콘서트 예매 전쟁을 방불케 하는 ‘광클릭’을 해야 했다. 맘카페에서 ‘감성 육아템’으로 이름난 해당 턱받이는 한정 수량만 판매돼 매번 주문 경쟁이 치열하다. 홍씨는 구매 사이트 링크가 열리는 시간에 알람을 맞춰두고 구매를 시도했으나 이미 2차례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3수 끝에야 성공한 홍씨는 “아이에게 좋은 턱받이를 선물해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경쟁 대열에 뛰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젊은 부모들 사이에서 ‘빕케팅’이라는 현상이 유행하고 있다. 빕케팅은 턱받이를 의미하는 영어단어 ‘bib’과 예매 행위인 ‘티켓팅’이 합쳐진 말이다. 일부 아동 의류 전문 브랜드가 턱받이를 한정 수량으로 판매하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면서 구매를 위해서는 티켓팅에 버금가는 경쟁이 벌어진다 하여 이런 신조어가 생겨났다.
빕케팅 대상이 된 턱받이 가격은 장당 1만5000원 수준이다. 비슷한 재질의 천 턱받이를 온라인에서 장당 4000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는 데 비해 3배 이상 비싼 수준이다. 많은 구매자들이 한 번에 한 장이 아닌 색상별로 여러 장을 구매하다 보니 턱받이 구매에 많게는 10만원이 넘는 비용을 들이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턱받이 구입에 거액의 지출을 꺼리지 않는 분위기다. 시즌별로 새롭게 추가되는 디자인과 색상을 수집하거나 ‘전 색상’을 구비하려는 이들도 많다. 인기가 많은 색상은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웃돈을 얹어 ‘리셀(재판매)’이 이뤄지기도 한다. 턱받이를 일종의 ‘패션 아이템’으로 여기는 풍조도 영향을 미친다.
한 맘카페 회원은 “색도 예쁘고 소재도 좋다고 해서 구매했다. 턱받이는 전체적인 룩에 포인트로 제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회원은 “아이가 턱받이를 할 시기가 금방 지나도 패션으로 입히면 예뻐서 구매를 후회 안 한다”고 관련 사이트에 적었다.
온라인상에서는 제품 인증샷과 함께 빕케팅 노하우가 담긴 글이 덩달아 인기다. 배송지 등 판매자 정보를 미리 작성해두거나 무통장입금으로 바로 송금하는 등 일반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댓글에는 “다음번엔 이 방식으로 꼭 성공하고 싶다”는 다짐 섞인 반응이 달렸다. 여러 성공담의 공통적인 지적은 주문 창이 열리자마자 1~2분 이내에 마감이 되기 때문에 결제까지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소비 전문가들은 빕케팅이 저출생 상황과 연관이 있다고 분석했다. 아이 한 명을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늘어나 프리미엄 육아용품에 대한 수요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과거 출생률이 높았던 때는 다양한 가격대의 상품이 고르게 수요가 있었다”며 “최근에는 출생아가 적어 기왕이면 질이 좋은 프리미엄 상품을 사주고자 하는 수요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판매자로서도 당장 상품의 이용자인 아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박리다매보다는 한정판·고급화 마케팅 전략을 택하게 된다”며 “저출생 시대가 되면서 변한 수요와 공급 방식이 맞아떨어져 생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돈이 없으면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육아용품 비용이 가계를 압박해 저출생을 가속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빕케팅에 성공한 부모가 SNS에 인증샷을 올리는 건 결국 ‘부모로서 소임을 다하고 있다’는 인정을 바라는 마음과 과시 욕구를 동시에 보여준다”며 “그러나 부담스러운 수준의 턱받이 금액은 앞으로 더 큰 비용을 요구하게 될 육아 자체를 단념하는 사회적 풍토로 이어지기 쉽다”고 우려했다.
최근 국내 유아용품 시장은 인플레이션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유아동복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10.9% 상승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는 통계를 집계한 1985년 이후 최고치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빕케팅이 또 어떤 열풍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며 “생애주기에 맞춰 필요한 자원이 늘어나는 육아 특성상 소비에 앞서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인지 돌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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