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싫어 산에 들어가기도”…‘싱어게인3’ 스핀오프로 돌아온 스타작곡가 하광훈
“음악이 너무 하기 싫었어요. 세상과 단절된 채 50대를 산에서 보내면서 왜 싫어졌는지 생각했죠.”
가수 변진섭, 김민우, 조관우 그리고 김범수까지. 내로라하는 가수들의 시작을 함께한 스타 작곡가가 10년 전 갑자기 산으로 들어갔다. 작곡가 하광훈(60)의 이야기다.
2011년 MBC 경연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서 임재범의 경연곡 ‘빈잔’(남진)을 편곡해 큰 반응을 끌어낸 뒤, 그는 강원도 평창 산골짜기에 집을 얻었다. 모든 작업을 멈추고, 음악이 싫어진 이유를 생각했다.
“문제는 프로 뮤지션이 돼야 한다는 압박감이었어요. 돈을 받은 만큼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었죠. 히트곡이나 수익에 얽매이지 말자고 생각하니 다시 음악을 하고 싶어지더군요.”
‘싱어게인3’ 스핀오프 편곡 참여…“가수들의 재단사 역할”
4일 서울 양재동의 작업실에서 만난 하광훈은 산속에서 보낸 10년을 “다시 음악을 할 수 있는 방법과 동력을 찾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3년 전 산에서 내려오면서 두 가지를 다짐했다”면서 “하나는 돈을 위해서만 일하지 않겠다는 것, 다른 하나는 젊은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가 JTBC ‘유명가수와 길거리 심사단’에서 음악 감독을 맡기로 한 이유다.
6일 첫 방송하는 ‘유명가수와 길거리 심사단’은 지난달 시청률 7.3%(닐슨)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둔 ‘싱어게인3’의 스핀오프(속편) 프로그램이다. ‘싱어게인3’를 통해 가수로서 대중의 인정을 받은 톱7(홍이삭·소수빈·이젤·신해솔·리진·강성희·추승엽)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버스킹(길거리 공연) 무대를 펼친다.
하광훈은 20일 방영되는 3회차부터 밴드 편곡으로 본격 참여한다. 그는 “‘싱어게인3’의 실력자들을 보면서, 선곡이나 무대·음악 스타일 등 각자에 좀 더 어울리거나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면서 “가능성이 있는 가수는 한계를 깨거나 방향을 잡을 수 있는 디렉팅이 중요하다. 내겐 그간 신인들과 함께 작업하며 쌓은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고 말했다.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1988), 김민우의 ‘사랑일뿐야’(1990), 조관우의 ‘늪’(1994), 김범수의 ‘약속’(1999) 등 하광훈이 작곡한 대표곡은 하나같이 유명 가수들의 신인 시절 1집 타이틀곡이다. 1995년 발매돼 500만장 이상 팔리며 커리어 하이(career high·최고 성과)를 안겨준 조관우의 2집은 ‘님은 먼 곳에’, ‘꽃밭에서’ 등 그가 편곡한 리메이크곡으로 채워진 앨범이다. “결국 무엇이 대중의 공감을 끌어내는 지의 문제예요. 저는 경험을 바탕으로 시작하는 가수들에게 딱 맞는 옷을 입혀주는 재단사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경연 프로그램의 시초 격인 ‘나가수’로 재조명받기도 했던 그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자극적인 면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일시적인 관심은 끌 수 있지만, 가수로서 정체성을 세우고 (대중이) 자신의 음악을 듣게 하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경연 프로그램에선 경쟁해야 하니 소리를 세게 질러야 하고, 원곡을 과하게 파괴하면서까지 독특하게 보이려 한다. 시청자는 신선한 모습에 박수를 쳐주지만, 정작 방송이 끝나고 일상에서 다시 듣고 싶은 노래는 따로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싱어게인3'는 기존 오디션 프로그램의 문제점에서 많이 비껴나 있어서 좋은 음악 프로그램이라 생각했다"며 "참가자들의 전반적인 음악적 역량이 뛰어났고, 특히 톱7 진출자들의 음악적 성취는 놀라울 정도였다. 선배로서 이들에게 어떻게 음악적 지평을 열어줘야 할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이돌 음악 위주의 K팝 시장에서 그가 요즘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99.9%’다. “수많은 음악 콘텐트가 쏟아지지만 정작 수명은 너무 짧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아이돌이나 유명 가수는 전체 음악인의 0.1% 수준”이라면서 “99.9%를 밖으로 끄집어내서 음악 시장의 저변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하광훈은 “아이돌 음악 이외의 K팝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날이 머지않았다”고 확신했다. “우리도 해외 유명 가수를 접하고, 그 뒤엔 색깔 있는 가수들을 찾아 듣지 않냐”면서 “예쁘고 잘생기거나 춤 잘 추지 않아도 음악 자체 만으로 호응을 받는 날이 곧 온다”고 했다.
“‘K’를 붙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힙합·재즈·랩 등 다른 문화권의 음악을 흉내 내지 않더라도 우리 음악 만으로 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가수들은 자신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뚝심을 가져야 하고, 제작자들도 좀 더 눈을 넓혀야 합니다.”
어환희 기자 eo.hwa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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