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 중의 '숲 공사중 불편', 기꺼이 그러겠습니다만

김규영 2024. 3. 6. 16: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기후대응 도시숲', 인간만이 아니라 자연 위한 숲다운 숲 조성 기대하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규영 기자]

동네를 산책하고 있었다. 늘 가던 길이 공사 가림막과 현수막에 막혀버렸다. 현수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기후대응 도시숲(새들허브숲) 조성공사로 인하여 공사중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빠른 시일내에 완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기후대응도시숲 공사 안내 현수막 가림막 뒷편으로 굴삭기가 갈아엎은 맨흙이 보인다.
ⓒ 김규영
 
도시 생활에서 익숙한 일이다. 가림막이 없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급한 용무가 있었다면 짜증이 날 수도 있지만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어렵지도, 불편하지도 않다. 운동 삼아 걷고 있는 덕에 새롭고 먼 길은 반갑기 마련이니. 그런데 산책길이 점점 불편해졌던 이유는 달리 있다. 공사가림막으로 미처 가리지 못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언제나 시야에 들어오던 익숙한 나무들이 포토샵을 한 것처럼 깨끗이 사라지고 맨살처럼 드러난 흙밭에 굴삭기만 우뚝 서 있었다. 물론 전주천 버드나무처럼 모든 나무를 베어낸 것은 아니다. '기후대응 도시숲' 예정지에는 사적으로 텃밭을 일군 자리가 꽤 있었고, 전부터 걸려 있던 현수막이 경고했듯이 불법 경작지와 주변 나무를 정리하는 과정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동강난 나무들이 쓰러져 한편에 쌓인 모습은 몹시 불편하고 불안하다.
   
▲ 잘린 나무들이 방치되어 있다. 군산시 백토로에서 바라본 도시숲 공사 중인 모습. 평소 산책길로 나무들이 없어지고 하늘이 보이니 몹시 생경하다.
ⓒ 김규영
 
▲ 기후대응 도시숲 조성 공사중인 모습 군산시 수송로와 군산 예술의전당 사이가 '새들허브숲' 예정지다. 나무를 베고 사유 경작지와 주변 나무를 정리한 것이 누런 황토로 훤히 드러나있다.
ⓒ 김규영
 
최근 내가 사는 군산 외에도 '기후대응 도시숲'을 조성하겠다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도시가 배출하는 과도한 탄소를 흡수하고 도시열섬과 미세먼지 절감 등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다. 대통령이 그린벨트 해제를 말하는 마당에, 어떤 형태로든 도시숲 확대는 좋은 일이라고 본다.
다만 바라는 것은 근린공원과 차별되는 진짜 도시숲의 조성이다. 근린공원은 집 가까이에 보행자전용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어서 휠체어와 유모차도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 쓰레기뿐만 아니라 낙엽까지 싹싹 치워주니 깨끗하다. 그런데 기후대응을 위한 도시숲은, 인간에게만 편하고 깨끗한 공원이 아니라 진짜 숲다운 숲이어야 하지 않을까. 
 
▲ 공사중인 도시숲 예정지 바로 옆의 새들공원 모습이다. 시민들이 편하고 깨끗하게 즐길 수 있는 근린공원도 많이 필요하겠지만, 현재 군산시 기후대응 도시숲 예정지 바로 옆에는 이미 근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 김규영
 
또한 숲을 만들기 위해 숲을 없애는 과정이 아니길 바란다. 나무는 인간 기준에 따라 '쓸모'를 따지고, 쓸모가 없는 '잡목'으로 분류되면 쉽게 잘리고 뽑히고 있다. 인간은 그렇게 교만하다. 인간은 자동차 중심의 도시생활로 과도하게 탄소를 배출했고, 그로 인해 변화된 지구의 기후가 인간의 삶을 위협하니 숲이 필요하다고 한다.

나무는 인간을 위해 기온을 조절하고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홍수를 막는 도구가 아니다. '기후에 대응하기 위해 도시숲을 조성'하겠다는 인간은 여전히 나무를 인간의 잣대로 심고 옮기고 베고 쓸 수 있는 무상의 도구로 삼고 있다. 인간은 인간 자신마저도 존재 자체로가 아닌 도구로 삼는 역사를 일궈왔다는 사실은 보려 하지도 않는다.

잎으로 산소를 내뿜고 무성한 가지로 그늘을 드리우고 뿌리로 땅을 붙들고 있는 녹색 생명은 제 자신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어떤 인간도 할 수 없는 것을 '쓸모없는 잡목'이 해내고 있다. 깨끗한 공기와 시원한 그늘, 단단한 땅과 같은 것을 아낌없는 주는 나무의 존재만으로도 존중과 감사의 마음이 들지 않는가.
 
▲ 공사안내문 ''장기 미집행 공원 사유토지 매입 등 개발여건 조성지에 시민 친화숲을 조성하여 미세먼지 차단 등 쾌적한 시민 휴식공간 제공 및 시민 정주여건을 개선하는데 본 사업의 목적이 있음' 이라는 공사목적이 기술된 공사 안내문이다.
ⓒ 김규영
 
이제라도 숲을 만들겠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도시숲 공사 목적으로는 '쾌적한 시민 휴식공간 제공 및 시민 정주여건 개선'도 언급되어 있다. 시공사인 건설회사는 이것을 마지막 순서로 삼아 최소화했으면 한다. 반듯한 보도블록을 깔고 어정쩡한 화단녹지에 나무 몇 그루 심는 공사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

도시숲은 숲이라는 이름답게 저들끼리 나무가 우거지고 벌레가 다니고 흙길에 낙엽이 쌓이게, 자연스럽게 두어야 한다. 그때까지 나는 기꺼이 불편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개인 SNS에도 게시 예정입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