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미분양 굴욕' 日건축가 반전…'건축계 노벨상' 받았다, 왜

권근영 2024. 3. 6.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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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 일본서 9번째
2024 프리츠커상에 선정된 야마모토 리켄이 2010년 설계한 경기 성남시 판교 주택단지. 사진 남궁선ㆍ프리츠커상


그가 설계한 판교 주택단지(월든힐스 2단지)는 초기 미분양을 맞았다. 강남 세곡동 아파트(보금자리 3단지)는 현관문을 투명 유리로 만들어 사생활을 침해한다고 비난받았다. 일본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79) 얘기다.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의 2024년 수상자로 선정된 일본의 야마모토 리켄. 사진 프리츠커상


야마모토 리켄이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상을 주관하는 미국 하얏트 재단은 5일(현지시각)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의 경계를 허물어 건축을 통해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공헌했다”며 그의 수상을 발표했다. 1979년 이 상이 제정된 이래 일본 건축가로는 9번째다.

투명하게 개방된 공간이 특징인 일본 요코즈카 미술관(2006). 사진 도미오 오하시, 프리츠커상


야마모토는 “공동체란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는 감각'인데, 오늘날 건축은 사생활을 강조한 나머지 이웃과 관계없이 주택을 상품으로 전락시킨다”고 비판한다. 조화롭게 함께 사는 것을 중시하는 그의 건축 언어는 투명성, “내부에서는 저 너머의 환경을 경험하고, 지나가는 이들은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비범한 재료로 독선적 외양을 뽐내기보다 일상에 묻어 들어가 이용자들의 삶의 방식을 서서히 변화시키는 게 그의 건축의 미덕이다.

투명성을 높인 히로시마 니시 소방서(2000)는 방문객들이 소방관들의 생활과 훈련을 자연스럽게 보며 친밀감과 감사한 마음을 키울 수 있도록 설계됐다. 사진 도미오 오하시, 프리츠커상


그는 ‘1가족 1주택’의 통념을 넘어 ‘지역사회권’이라는 개념을 주창한다. 사방 벽을 유리로 처리한 투명 현관 홀을 통해 주민들 사이에 소통의 폭을 넓힌 판교 타운하우스(2010), 소방관들의 일상과 훈련을 볼 수 있어 주민들의 친밀감을 높이고 감사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 설계한 히로시마 니시 소방서(2000), 교실들 사이를 이어가며 서로 들여다볼 수 있어 학제간 연구를 장려한 사이타마 현립대학(1999) 등에서 이 개념을 실현했다. 방법은 건물의 투명성을 높여 이용자들의 자연스러운 소통을 유도하는 것.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1인 가구가 늘어나는 미래 사회, 건축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심한 결과다. 프리츠커상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아라베나(2016년 수상자)는 “미래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모여 상호 작용할 기회를 늘려야 한다”며 “야마모토는 일상의 품격을 높여주는 건축가로, 그의 손을 거치면 평범함이 특별해진다”고 평가했다.

보건 과학에 특화된 사이타마 현립대학(1999)은 교실끼리, 건물끼리 서로 볼 수 있는 투명 공간으로 연결된다. 학제간 연구를 장려하기 위해서다. 사진 야마모토 리켄& 필드 숍, 프리츠커상


1945년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난 야마모토는 일본 요코하마로 건너가 1968년 니혼대 건축과를 졸업하고, 도쿄예술대에서 건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3년 설계 사무소 ‘리켄 야마모토&필드 숍’을 설립했다. 요코하마대 객원교수, 나고야 조형대학 학장을 지냈다. 외벽이 없어 겨울에는 야생 동물들까지 찾아온 일본 나가노 숲속의 여름 별장 야마카와 빌라(1977), 중국 톈진 도서관(2012), 대만 타오위엔 미술관(2022) 등 각지에 그의 건물이 있다.

야마모토 리켄의 초기작 야마카와 빌라(1977). 일본 나가노의 여름 별장으로 설계히한 이곳은 지붕 아래 벽이 없이 방들만 따로따로 있는 독특한 구조다. 사진 도미오 오하시, 프리츠커상


프랭크 게리, 렘 콜하스, 자하 하디드 등이 거쳐 간 이 상의 상금은 10만 달러(약 1억 3000만원), 시상식은 오는 5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다. 일본은 단게 겐조, 마키 후미히코, 안도 다다오, SANNA(세지마 가즈요ㆍ니시자와 류에), 이토도요, 반 시게루, 이소자키 아라타에 이어 야마모토 리켄까지 9명으로 가장 많은 수상자를 냈다. 두 번째는 미국(8명)이며, 한국 수상자는 아직 없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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