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인물 둘러싼 진실과 거짓, 아카데미 각본상을 원한다
[조영준 기자]
▲ 영화 <메이 디셈버> 스틸컷 |
ⓒ 판씨네마(주) |
*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토드 헤인즈 감독의 영화에서 여성은 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작품은 <캐롤>(2016)이다. 백화점 직원인 테레즈(루니 마라 분)와 손님 캐롤(케이트 블란쳇 분)이 서로에게 느끼는 거부할 수 없는 감정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극의 배경이 되는 1950년대의 미국에서 동성애는 아직 질병으로 분류가 되고 받아들여졌기에 이들의 이야기는 현재의 모습과 더불어 사회가 바라보고 강요하는 사랑의 모습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 바 있다.
이어 제작된 <원더스트럭>(2018)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동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한계가 있기는 했지만 이야기의 두 축이 되는 소년 벤(오크스 페글리 분)과 소녀 로즈(밀레센트 시몬스 분)의 심리에는 여성의 자리가 짙게 깔려 있다. 감독의 이런 성향은 장편 영화를 연출하기 시작했던 90년대부터 계속 이어져 왔다. 줄리안 무어와 처음으로 함께한 것으로 알려진 작품 <세이프>(1995)에서도 그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심리적 질환을 앓고 있는 주부 역을 맡았다. 모든 것을 가졌지만 유약한 마음과 원인을 찾을 수 없는 병세로 불안을 끌어안고 있는 인물이다.
중요한 것은 여기에서 설명하지 않은 다른 여러 작품들을 통해서도 토드 헤인즈 감독이 수많은 여성 인물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그는 분명 복잡한 내면을 가진 여성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것에 흥미가 있으며 이를 어떻게 활용하면 개인의 정체성을 통해 사회적 이슈를 풀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그 방법을 알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지금 이야기할 이 영화 <메이 디셈버>는 그의 그런 관심과 능력이 최대한으로 발휘된 작품이다.
02.
이번 영화의 중심에는 배우 그레이시(줄리앤 무어 분)와 조(찰스 맬턴 분)가 있다. 두 사람은 20년 전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바 있다. 23살 차이인 두 사람의 만남은 결혼 당시부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나이 차이도 컸지만, 성인인 그레이시가 당시 13살이었던 소년 조와 결혼한다는 소식은 일종의 거대한 스캔들이 되었고 미국 전역을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이후 세 아이를 낳고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온 듯한 두 사람의 가정에 어느 날 후배 배우 엘리자베스(나탈리 포트만 분)가 찾아온다. 그녀의 차기작이 그레이시와 조의 스캔들을 영화화한 작품이어서다.
▲ 영화 <메이 디셈버> 스틸컷 |
ⓒ 판씨네마(주) |
엘리자베스의 이야기를 하자면 그녀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그레이시와 조 두 사람 사이의 관계와 생활을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영화는 이미 많은 것들을 관객들에게 던지고 있다. 오래전부터 그레이시에 의해 완성된 두꺼운 껍질 속에서 자력으로는 조금도 벗어날 수 없는 조의 갑갑하고 무력한 삶과 같은 것들이다. 강조되는 것은 그녀를 향한 그의 감정이 사랑보다는 책임에 가깝다는 부분이다. 부양과 보호의 영역에 놓인 책임은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선택한 결정에 대한 책임에 더 가깝다.
물론 사소한 일에서까지 아내를 달래기만 해야 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조의 현재 상태에는 그레이시의 집요한 태도가 큰 영향이 된다. 자신의 페르소나를 지켜내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을 구축하며 제 껍질을 (자신이 쥐고 있는 것이 이탈하지 못하도록 하는) 단단히 하고자 하는 모습이다. 그녀는 가정 내에서의 통제적이고 우월적인 권위를 놓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동시에 조로 하여금 23살이 어린 남편이 아닌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놓아두고자 하는 가식적인 행위를 지속한다. 특정 장면마다 그에게 의존하고자 한다던가, 몇몇 지인들에 의해 겨우 유지되는 베이킹 행위를 지속해 나가는 것 모두가 이에 속한다.
04.
극 중에서 조가 관리하고 있는 나비가 그레이시 곁에 놓인 그의 모습과 오버랩되는 이유다. 작은 애벌레가 번데기가 되고, 그 번데기가 다시 나비가 될 때까지 이들은 작은 상자 속에서 일생을 보낸다. 조도 마찬가지다. 아무 것도 모르던 때의 잘못된 판단과 선택으로 인해 그 역시 평생을 그레이시라는 껍질 속에 갇혀 살았다. 당시에는 원했던 것 같지만 지금은 결코 아니다. 문제는 이들 나비의 경우에는 자연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목적을 갖고 조의 상자 속에서 보살펴지지만, 정작 그의 삶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앞서 그레이시를 반동(反動)의 자리에 서 있는 인물로 표현한 것은 이처럼 단순히 조의 삶을 강하게 붙들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녀는 때때로 연약해 보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자리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어디에도 구속되고 싶어 하지 않는 인물에 가깝다. 아니 더 나아가 외부에서 가해지는 어떤 요구가 발생하고 증가하면 그녀 자신은 그와 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남편 조를 어떻게든 놓지 않고자 하는 그녀의 행위 역시 마찬가지다. 그 움직임은 자신들의 첫 시작을 비난하고 저격해 왔던 대중과 매체, 주변 환경의 요구에 반(反)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 영화 <메이 디셈버> 스틸컷 |
ⓒ 판씨네마(주) |
이제 엘리자베스의 차례다. 그녀의 등장과 모종의 교감은 조로 하여금 자신이 그동안 갇혀 있던 그레이시의 껍질 자체에 의문을 갖게 만든다. 스스로 인내해 온 사랑, 혹은 책임에 대한 근원적 의심이라고 해도 좋겠다. 하지만 여기에서 엘리자베스가 일으키는 조의 감정적 파동은 온전히 그를 위한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그녀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신이 앞으로 연기해야 할 그레이시라는 인물 원형에 더욱 가까워지고자 하는 것이고, 조는 그 과정에서 필요한 하나의 장치 정도로만 여겨진다. 그레이시가 그랬듯, 엘리자베스 역시 그를 나비로 탈피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방생에 있지 않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그녀는 조의 감정을 최대한 이용한 이후에 모든 것이 어른들의 사정일 뿐이라며 슬쩍 한 걸음 물러나 버린다.
조라는 인물을 활용하지 않더라도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를 향하는 모습에는 어딘가 전지적인 느낌이 있다. 하나의 인물에만 제한적으로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그렇다. 엘리자베스는 처음에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그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모습을 보인다. 일정 부분은 그녀와 닮은 화장을 하고, 그녀가 직접 쓴 편지를 읽은 행위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후 어느 시점부터는 더 이상 자신이 다가가려 하지 않는다. 대신 그레이시를 자신이 생각하는 틀, 공간 안으로 데리고 들어온다. 인물의 원형을 따르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설정한 그레이시의 모습대로 원형을 맞추고자 하는 것이다.
토드 헤인즈 감독이 심어놓은 영화의 깊은 고뇌와 추돌의 현장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자신이 결정지은 모양으로 인물을 이끌어 가고자 하는 추동(推動)적 인물과 누군가 자신을 끌어당기고 요구하면 할수록 원래의 자리를 더욱 꼿꼿이 지키며 자신의 페르소나에 훨씬 더 집착하고 완고한 태도를 보이는 반동(反動)적 인물의 대립.
영화의 후반에 놓이게 되는 두 장면, 엘리자베스가 그레이시의 아들인 조지(코리 마이클 스미스 분)로부터 어린 시절의 그레이시가 오빠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듣게 되는 장면과 다시 한번 그레이시로부터 조지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말을 듣게 되는 장면 사이에서 엘리자베스는 그만 길을 잃고 만다.
▲ 영화 <메이 디셈버> 스틸컷 |
ⓒ 판씨네마(주) |
영화는 이렇게 끝이 나지만 엔딩 크레딧 끝자락에 여전히 매달려 있는 것들이 있다. 그래서 조라는 인물은 이제 어떤 내일을 맞이하게 되는 것일까? 엘리자베스는 정말 자신이 처음에 바라고 원했던 그레이시의 모습을 영화 속에서 오롯이 연기해 낼 수 있었을까? 와 같은 영화가 온점을 찍기를 거부한 인물들의 다음 모습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온점을 거부했을 뿐, 영화의 곳곳에는 이들의 내일을 암시하는 반점, 메타포들이 놓여 있다.
극 중 엘리자베스는 성관계 장면을 촬영하는 동안에도 연기와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채로 진행된다고 대답한 바 있고, 자신이 그레이시를 연기하는 동안에도 무엇이 진짜인지 확신을 갖지 못하는 모습이다. 영화의 일부에 대해서, 혹은 모든 지점의 이야기에 대해서 완벽히 통제하고 있지 않은 것은 어쩌면 이 또한 미약하게나마 관객들이 영화적 체험이 가능하도록 구조화해 놓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가 발견하고 해석한 지점의 연결과 이해가 모두 감독의 의도와 진실에 가까이 가 닿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경험. 많은 영화에서 가능한 경험이기는 하지만, 어쩐지 이 작품에서는 더욱 그런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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