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기 재활용하는 어르신, '동동구르무'의 추억

최은영 2024. 3. 6.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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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부터 주 1회 어르신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팝업 스토어 행로는 인스타그램으로 공지하겠지만, 구르무 장수는 마을 어귀부터 큰북을 둥둥 치면서 공지했다고.

미리 시간을 알릴 수 없으니(시계 없는 집이 더 많았으니) 그날 집에 없으면 구르무도 없다.

일회용 통을 씻어 쓰는 마음이 이름까지 귀여운 동동구르무에서 왔다는 걸 알면, 그걸 궁상이라고 타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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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상 200살 차이나는 사람과 친해지는 방법 알려드립니다

2024년 2월부터 주 1회 어르신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싣습니다. <기자말>

[최은영 기자]

"다 터진 내 손등에 어머니는 구르무를 발라주셨다."

'내풀책(내 인생 풀면 책 한 권)' 수업에서 나온 문장이다. 

크림이 일본어로 쿠리무라서 나온 말이냐고 내가 물어봤는데 어르신은 다른 대답을 하신다.

"우리 선상님은 젊어서 동동구르무(동동구루무) 장수를 모르는갑네."

해방 후 공산품이 귀하던 시절, 구르무(구루무) 장수는 커다란 통에 크림을 넣어 지게에 지고 다니며 팔았다. 동네에 구르무 장수가 오면 집에 있는 빈 그릇을 갖고 나와 돈을 내고 조금씩 덜어갔다고 한다.

구르무 장수는 각 동네를 돌아다녔단다. 요새 말로 '이동식 팝업 스토어'다. 팝업 스토어 행로는 인스타그램으로 공지하겠지만, 구르무 장수는 마을 어귀부터 큰북을 둥둥 치면서 공지했다고. '둥둥 구르무'보다 '동동 구르무'가 입에 더 붙어서 동동이 됐나보다.

북소리가 나면 집집마다 그릇 들고 나오는 풍경을 그려본다. 미리 시간을 알릴 수 없으니(시계 없는 집이 더 많았으니) 그날 집에 없으면 구르무도 없다. 북소리에 서둘러 나와 옹기종기 줄서서 구르무를 퍼가는 모습이 어쩐지 귀여워 보였다. '내풀책'하면서 내가 모르던 시간 속 이야기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갈등과 사랑 사이 
 
▲ 내풀책으로 만나는 어르신 오늘도 어르신들에게 새로운 단어를 배운다
ⓒ 최은영(미드저니)
 
나는 동동 구르무 시절엔 버려지는 빈 통이 없었겠다고 말했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 어르신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일회용 그릇도 버리기 아까워서 씻어쓰는데, 애들은 궁상이랴."

"어머, 우리나라 일회용이 얼마나 짱짱한데요. 궁상 아니죠!"

내 대답에 모두 까르르 웃음이 터진다. 교실 공기가 동글동글하게 다정해진다.

다른 선진국이 200년에 걸쳐 이뤄낸 일을 우리는 50년만에 따라잡았다. 그러다보니 50살 차이가 가끔은 체감상 200살 차이로 느껴지기도 한다. 다른 나라였으면 만날 수도 없는 사람들이 동시대를 살고 있는 독특한 풍경이다. 이 풍경의 한쪽은 세대 갈등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작은 일로 웃다보면 200년이 별건가 싶어진다. 일회용 통을 씻어 쓰는 마음이 이름까지 귀여운 동동구르무에서 왔다는 걸 알면, 그걸 궁상이라고 타박할 수 있을까. 타박하기 전에 서로의 이야기에 잠깐만 귀 기울인다면 예상밖의 지점에서 이렇게 웃음이 터진다. 그 웃음이 만드는 말랑한 다정함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없다. 

내풀책으로 어르신을 만나면서 나는 종종 원래의 나보다 더 오래된 내가 되곤 한다. 오래된 나는 좀 느리지만, 그만큼 여유있다. 말 '하기'보다 말 '듣기'를 더 잘한다. 오래됨이 주는 충만함이 나를 가벼워지게 한다는 것도 배운다. 어르신들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결코 모를 배움이다. 

어르신의 원고를 정리하고 복지관을 나섰다. 겨울을 쫓아내는 듯한 따뜻한 햇빛이 내 정수리에 톡톡 떨어진다. 다음 시간에도 이렇게 따뜻할 수 있기를, 나보다 200살 많은 사람들과 또 깔깔대며 이야기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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