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둠’ 루비니 “트럼프, 세계 경제에 큰 위협…성장 둔화하고 인플레 뛸 것”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제안한 경제정책 의제가 전 세계 경제와 시장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 월가에서 ‘닥터 둠(Dr. Doom)’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가 오는 11월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출마가 확실시되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해 우려를 쏟아냈다.
루비니 교수는 5일(현지시간)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기고를 통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면 세계는 더욱 불안정해질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해 닥터 둠이라는 별명이 붙은 그는 "지정학적 경쟁과 갈등이 격화되는 시기에 접어들었다"면서 "가장 큰 지정학 리스크는 미국 대선"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대선에서 리턴매치가 유력한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동시다발적 경선이 치러지는 ‘슈퍼 화요일’을 통해 본선행 진출에 한 발 더 다가간 상태다.
먼저 루비니 교수는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외교정책에서 ‘대중국 매파’라는 우선순위를 공유하고 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관련해서는 입장 차이를 보인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일각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버리고 러시아가 승리하도록 내버려 둘 것이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경우 대만에 보낼 수 있는 신호를 우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중국 강경정책을 펼치는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서는 중국의 대만 점령 신호가 강해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설명이다.
루비니 교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유럽의 나토 회원국들이 방위비를 더 많이 쓰는 것"이라며 "이 경우 중국을 저지하기 위해 아시아로 중심축을 이동하면서 그가 동맹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트럼프 2기 체제에서 무엇보다 큰 여파가 예상되는 것은 경제정책이다. 루비니 교수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이 더 강경해질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모든 수입품에 10%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관세율은 약 2%"라면서 "아마도 중국 수입품에 더 높은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이는 중국과 같은 전략적 경쟁자뿐 아니라 일본, 한국 등과 같은 아시아, 유럽 동맹국과도 새로운 무역전쟁을 촉발할 수 있다"고 경계했다. 이러한 무역전쟁은 앞서 트럼프 행정부 1기에서도 확인됐다.
루비니 교수는 "세계 무역전쟁이 발발하면 성장은 감소하고 인플레이션은 치솟는다"며 "시장이 살펴야 하는 가장 큰 지정학적 리스크가 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아울러 "이러한 탈세계화, 탈동조화, 분열화, 보호무역주의, 글로벌 공급망의 발칸화(여러 나라나 지역으로 쪼개지는 현상), 탈달러화 시나리오는 경제 성장과 금융시장에 더욱 큰 위험이 된다"고 우려했다.
이와 함께 루비니 교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정정책이 이미 과도한 재정적자를 더 늘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몰을 앞둔 각종 감세 정책은 연장되고, 방위비 등 지출은 확대될 것이란 설명이다. 그는 "이 경우 채권자경단이 국채 금리 상승과 함께 채권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면서 "높은 민간·공공부채가 증가세까지 보이는 상황에서 이는 금융위기의 유령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채권자경단은 인플레이션 또는 정부 재정적자 등에 대한 우려로 국채금리가 상승할 가능성이 있을 때 공격적인 국채 매도에 나서 금리를 끌어올리는 투자자들을 가리킨다.
이번 기고에서 루비니 교수는 장기화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미·중 갈등 등이 현재까지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봤다. 중동 전쟁이 확전될 경우 에너지 생산 및 수출에 차질을 빚으며 1970년대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 충격과 유사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지만, 다행히 이 가능성도 작다는 진단이다. 미·중 갈등과 관련해서도 ‘화약고’인 대만 문제가 올해나 내년 중 터질 가능성은 없다고 봤다. 그는 "중국의 경제적 취약성으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의 대립이 줄어들 것"이라며 "전략적 경쟁 관리가 이어지는 한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루비니 교수는 전날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는 지나치게 강한 미국의 경제가 증시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견조한 경제지표로 인해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 예상 시점이 점점 뒤로 밀리면서 하락장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그는 지난해 8~9월 Fed가 매파 기조를 확인한 이후 증시가 10% 조정됐던 사실을 언급하며 "(점도표에서 Fed가 시사한 연내) 3번이 아니라, 2번, 1번 인하한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반문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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