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작가 전삼혜의 초단편 '사막의 새'
지구보다 이곳의 정년이 빠르다고 하지만, 이모는 곧 예순 살이다. 그 흔한 보통 면허도 없어서 직장까지 셔틀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던 이모가 바이크라니.
당연히 전기 바이크일 거라고 생각했다. 이 별에서 전기 바이크는 온몸을 감싸는 1인용 운행 장치로, 아예 중등학교 졸업 직전에 면허 시험 대비반이 차려질 정도였다. 내가 사는 곳인 새날은 유난히 인구밀도가 낮은 편이라 이웃집에 가려고 해도 걸어서 30분, 저속도 전기 바이크로는 10분 남짓 걸렸다. 그러니 이주 2세대나 1.5세대쯤 되면 초급 학교 때는 자연스럽게 자전거로 이웃집을 오갔다. 나 역시 스스로 뛸 줄 알게 되자마자 바퀴 달린 탈것에 입문해 살아왔다.
하지만 이주 1세대인 이모는 짐짓 심각한 얼굴로 젓가락을 식탁에 내려놓고 말했다.
“화석연료 바이크. 바퀴 아주 두꺼운 걸로. 오프로드야.”
나는 어이가 없어서 눈만 굴렸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거 아니었나. 나는 입안에 든 음식을 서둘러 삼켰다. 이모는 내 표정을 보더니 조금 뿌듯한 듯 턱을 올리고 대답했다.
“그래서 특수면허를 딸 거야.”
새날은 사막 접경지대다. 전기 바이크로 시내 반대 방향으로 30분만 달리면 사막 초입이 나왔다. 그만큼 뭐가 없었다. 화석연료… 물론 이 별에서도 화석연료는 생산되지만… 새날에서는 아직까지 나는 연료 취급소를 본 적이 없었다. 셔틀버스로 한 시간 가야 하는 중소 도시쯤은 되어야 연료 취급소를 볼 수 있을 텐데. 게다가 태양광으로 충전되는 전기 바이크와는 다르게 주기적으로 연료도 넣어줘야 하고, 엔진도 점검해줘야 한다는 이야기를 교통기관의 역사를 배울 때 들은 기억이 났다. 그런데 이모는 그걸 하겠다고 우겼다. 이모보다 훨씬 무거운 화석연료 바이크를 타고 싶어서, 다음 주부터 연료 취급소와 연습장이 있는 도시에 가서 면허 연습을 할 거라고 나에게 선언했다. 나는 그날 밤 ‘화석연료의 위험성’, ‘화석연료 바이크 사고’를 검색해보다가 잠을 못 잤다.
이모는 한 주를 도시에 머물다가 돌아왔다. 지붕도 없고 문짝도 없는데 엔진과 두꺼운 바퀴가 달려 있는, 자전거를 몇 배 불려놓은 것 같은 괴상하게 생긴 탈것과 함께.
“이럴 거면 전기 바이크를 타지.”
나는 두꺼운 바퀴가 달린, 사진으로 찾아본 것보다도 더 구식 유물처럼 생긴 이모의 바이크를 발로 툭툭 치며 잔소리를 했다.
“사막에는 전기 바이크 못 들어가잖아.”
이모는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는데, 나는 귀를 의심했다. 이모는 배기량의 몇 배나 되는 연료를 특수면허와 함께 가지고 돌아왔고, 우리 집 주차장에는 이모의 바이크 옆에 연료 주입 장치가 놓였다. 위험물 취급 인물로 경찰에 등록해야 했기 때문에 나와 이모가 나란히 경찰서에 가서 신원 조회를 하고 등록증을 받은 건 덤이다. 나 참.
왜 하필 사막이냐는 내 말에 이모는 대답했다.
“새를 보고 싶어.”
“새?”
“너 새 보고 싶다며 가출한 적 있었잖아.”
중등학교 다닐 때 밤에 가출을 한 적이 있었다. 그냥 사는 게 갑갑했다. 열네 살의 나는 별게 다 힘들었다. 학교에도 가기 싫었고, 집에 돌아와서 이모가 퇴근할 때까지 텅 빈 집을 지키거나 집 앞 공터를 자전거를 타며 도는 것도 싫었다. 게임이나 책에는 진작에 질렸다. 그래서 밤에 집을 나와 무작정 걸었다. 이제 돌아갈까 싶었는데, 길거리에 공유 전기 바이크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외관이 꾀죄죄한 게 위치 추적 장치가 고장 났거나 해서 공유 센터로 돌아가지 못한 지 며칠은 되어 보였다. 처량맞은 게 꼭 나 같았다. 그래서 자전거만 탈 줄 알았던 당시의 나는 충동적으로 전기 바이크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전자 면허증이 있어야 할 줄 알았는데, 시동은 그냥 탑승해서 문을 닫으니 자동으로 걸렸다. 허술하다고 짜증을 내면서 나는 시내와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사막 방향이었다.
세 시간 뒤, 나는 사막 한가운데는 아니지만 도로까지 걸어가기에는 먼 곳에서 조난을 당했다. 도로를 달리게 되어 있는 공유 전기 바이크는 모래가 본격적으로 깊어지기 시작하자 뻗어버렸다. 문을 열고 내리자니 사막에 대해 들은 안전 상식이 나를 잡았다. 집을 나서서 그냥 개운해지고 싶었지 얼어 죽고 싶은 건 아니었다. 게다가 사막에는 맹금류가 살았다. 조심성이 많고 영리해서 사람이 조금이라도 터를 잡은 곳에서는 절대 살지 않고 사막을 떠돈다는, 발톱과 부리가 날카로운 새들. 새날에서 밀려난 새들이 사막을 떠돌며 가출한 청소년을 노릴 거라는 생각에 나는 전기 바이크 캡슐 안에서 혼자 떨다가 결국 손목시계에 내장된 긴급 조난 구호 아이콘을 터치했다.
사막 경찰이 나를 픽업해 집에 데려다주었다. 이모에게는 새를 보고 싶어서 사막에 나갔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모는 그때 나를 혼내지 않았다. 다만 사막은 위험한 곳이라고 주의를 주었을 뿐이었다.
“새 때문에 사막에 가겠다고?”
나는 이모에게 물었다. 이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를 보는 것도 있지만… 그때 너처럼, 스스로 선택한 위험에 처해보고 싶어.”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어떡하고?”
“너 다 컸잖아. 혼자 밥도 먹을 줄 알고 공부도 끝냈고 직장도 있고.”
“이모는 내 보호자잖아.”
내 말에 비난이 묻어 있었는지 이모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 네가 다 자랄 때까지 기다렸지. 어떻게든 여기로 데려온 애, 먹이고 씻기고 직장 잡을 때까지는 키워야 하겠다 싶었어. 그러다 보니 좀 늦어졌을 뿐이야.”
아이를 혼자 키우는 것은 어떤 시인의 말대로 빗방울에 맞아 다칠 것도 두려워해야 하는 일이라서, 이모는 많은 시도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적어도 자신이 책임지기로 한 생명이 온전히 사람 꼴이 될 때까지는 자신이 전폭적으로 모든 위험을 가려주고, 자신도 위험을 피하며 살아야 했다고.
“내 목숨이 내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느끼고 싶어. 그래서 살아 돌아오면 내가 내 삶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너랑 더 잘 살 수 있겠지. 네가 언젠가 내 곁을 떠나도 나 혼자 살면서 나는 스스로를 살릴 수 있다는 인간이라는 걸 기억할 수 있을 테고.”
혼자 몸으로 낯선 별에 던져진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혼자 사는 것처럼 자유로울 수 없었던 이모의 눈가 주름을 보며 나는 말을 잇기 어려웠다. 이모도 살아 숨 쉬는 한 명의 독립된 인간인데 지금껏 내가 있어서 이모는 스스로를 무시했던 걸까. 나를 키우는 동안 이모는 한 사람이 아니었던 거다.
“그럼 왜 하필 화석연료야?”
이모는 조금 부끄러운 듯 웃었다.
“지구에서 호기심에 타본 적이 있어. 스로틀을 돌리면 손안에 전해지는 진동이 있거든. 맞바람에서 느껴지는 쾌감도 있고.”
이모는 전기 바이크는 너무 조용하게 가속되어서 그 느낌이 안 난다고 말했다.
“구시대 유물 애호가라고 해도 어쩔 수 없어. 나는 지구에서 인생의 초반부를 보냈고, 내 절반은 지구로 이루어진 거나 마찬가지야. 지구를 기억할 수 있는 수단으로 은퇴 후 하나 정도 누려봐도 나쁘지 않잖아.”
나는 이모를 말리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익숙해지면 널 사막에 데려가줄게.”
이모의 호언장담에 나는 보험부터 들겠다고 대답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주차장 옆 빈터에서 낯선 소리가 들린다. 이모의 ‘오토바이’가 내는 소리다. 매캐한 매연 냄새는 덤이다. 이모는 빈터를 열심히 돌고 있다. 널찍한 공간에서 방향을 꺾기도 하고, 차체를 돌려 한 바퀴를 돌기도 한다. ‘우우우웅’ 하던 소리가 ‘피시시식’으로 바뀌어 나가보면 시동을 꺼뜨린 이모가 오만상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전거는 밟으면 나가기나 하지, 이 애물단지는 조금만 방심하면 바퀴 돌리는 법도 잊어버린다면서 푸념을 늘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이모는 즐거워 보인다. 거친 핸들 탓에 손가락과 손바닥 사이에는 물집이 잡혔다. 사막 초입까지 나갔다 온 날은 얼굴이 새빨갛게 탔다. 물론 내 입장에서야 이모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옆에서 안전하게 행복한 노년을 누렸으면 좋겠다.
그건 내 생각이고.
이모의 행복이 저 멀리 있다면, 키워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모가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 떠날 수 있기를 돕는 것뿐이다. 타의로 위험을 피하며 살아온 이모가, 스스로의 위험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사막을 달리는 정년퇴직 여성 라이더라니, 조금 멋있는 것 같기도 하다.
Writer_전삼혜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들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 〈소년소녀 진화론〉 〈위치스 딜리버리〉 〈토끼와 해파리〉 〈궤도의 밖에서, 나의 룸메이트에게〉 등이 있다.
Illustrator_나노
어긋난 상황을 구성하거나 이야기를 만드는 일러스트레이터. 독립 출판물 〈RUN〉 및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안 일한 하루〉 〈가난해지지 않는 마음〉 등 책 일러스트 작업을 한다.
Copyright © 코스모폴리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