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차가 보낸 신호, 이럴 때 고속도로는 온수매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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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나연 기자]
▲ 도로 위의 약속들(자료사진). |
ⓒ pixabay |
며칠 전 서울에서 열린 결혼식에 갔다가 내려오는 길이었다. 용인까지 고속도로를 타고 운전해야 했다. 자그마치 40km, 먼 길이었다. 나는 지친 상태로, 지붕이 네모인 지하차도를 지나고 있었다. 1차선에서 적정 거리를 유지하며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앞차의 속도가 줄어들면서 비상등이 켜졌다.
깜박, 깜박, 깜박. 아마 그 앞차가 급브레이크를 밟았기에 자신도 속도를 줄이며 비상등을 켠 것 같았다. 뒷차인 나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나는 이제 만 1년이 되어가는 초보운전자다. 고속도로 운전을 해본 건 손에 꼽을 정도이며, 서울까지 다녀오는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아이를 태우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안전에 민감했다.
그런 내게, 앞차의 비상등은 다정한 한 마디처럼 고마웠다. 마치, "급정거를 하니 조심하세요."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순간 긴장했던 몸이, 비상등 하나에 조금 녹아버렸다. 사실 엄청 급박한 상황까지는 아니었다. 앞차와의 거리가 있었기에, 비상등을 켜지 않았어도 사고 위험까지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로 위에서는 보통 너도, 나도 조심한다.
나는 그것을 따뜻하게 느낀다. 앞차는 무언가를 잘못한 게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비상등이라는 배려를 받으면, 꼭 조금 더 다정한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앞차를 따라 비상등을 켰다. 자동차는 말을 할 수 없지만, 내 빨간 차에게 입이 있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저도 갑자기 좀 멈출게요. 조심하세요." 뒤따라오던 하얀색 산타페도 내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비상등을 켜며 따라붙었다.
비상등 뒤에 비상등, 비상등 뒤에 비상등. '우리'는 연달아 비상등을 켜고 있었다. 싼타페 뒤에 있던 차는 보이지 않았지만, 앞차, 내 차, 뒤차까지 연달아서 말이다. 단순히 자동차들이 비상등을 켠 광경이지만, 이럴 때는 우리 자동차들이 생명력을 입는 것 같다. 마치 반딧불이 무리가 빛을 내며 서로를 도는 것 같달까.
도로 위 자주 하는 생각 "우리는 서로를 참 믿는구나"
운전을 처음 시작할 때, 초보이면서도 겁도 없이 도로로 나를 이끌어준 힘이 있다. 마치 '새로운 세계의 일원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도로에 나오기 전에는 몰랐던 규칙, 하늘 같은 도로교통법 아래에서 말이다.
잘 짜인 각본처럼 중앙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을 보며, 나는 문득 "우리는 서로를 참 믿는구나" 생각한다. 물론 뉴스에서는 졸음운전 사고, 음주운전 사고, 뺑소니 사고들이 보도된다. 접촉사고를 목격하기도 어렵지 않다.
그러나 나도, 남편도, 우리 엄마도, 언니도 운전대를 잡는다. 내 가장 친한 친구도, 글쓰기 선생님도, 옆집 아저씨도 운전대를 잡는다. 물론 운전은 편의성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회적 약속이 없었더라면 이 다양한 사람들이 '도로'라는 하나의 장소에서 모이는 것이 가능할까?
같이 밥상을 공유하는 것은 쉽지 않을지라도, 도로는 그야말로 모두와 공유되는 곳이다. 도로 위에도 '빌런'들은 있다지만, 보통 때 우리의 도로는 평온하다. 고작해야 깜빡이를 안 켜고 끼어드는 정도이고, '빵' 한 번 당하는 정도이고, 길 위에서 담배 연기를 맡는 정도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도로는 늘, 다정함을 바라는 만큼 아쉽기도 하다. 안전함을 바라는 만큼 무섭기도 하다. 그러나 내가 자주 느끼는 게 있다면, 어떨 때의 도로는 냉랭하더라도, 많은 순간의 도로는 온수매트처럼 따뜻하다는 것이다.
빨간불이 되면 멈추고, 초록불이 되면 간다. 초보 운전자인 나는 그 당연함 속에서 평온하다. 차선을 바꿀 때 깜빡이를 켜고, 고맙다고 비상등을 켜는 것. 단순하지만 다정한 운전자의 수칙 같다. 무리해서 들어가는데도, 상대 차가 양보해 줄 때가 있다. 그 양보를 한번 받은 나는 다음번에 꼭 양보로 되돌려준다.
사실 도로 위에서는 나뿐만 아니라 꼭 상대도 생각하는 마음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내가 안전하길 바라는 만큼, 상대도 안전하길 바라야 하는 곳이니까. 상대가 안전해야 나도 안전할 수 있다는 진리가 적용되는 곳이 도로여서 좋다. 나 하나 빨리 가자고 무리하는 운전자가 아니라,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내일, 나는 또 고속도로로 나간다. 이 '도로 공동체'에서, 우리가 모두 다정함을 갖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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