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두대 처형' 마리 앙투아네트가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
[안지훈 기자]
▲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포스터 |
ⓒ EMK뮤지컬컴퍼니 |
베르사유의 주인에서 단두대의 죄인으로, 운명이 바뀌어버린 프랑스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와 빈민가에 살고 있는 가상의 인물 '마그리드 아르노'의 대립을 그린 팩션(faction)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가 10주년 기념 공연을 펼친다. 동시에 10년 간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피날레 공연이기도 하다.
재연부터 '마리 앙투아네트' 역을 맡아온 김소향이 다시 한 번 캐스팅되었고, 최근까지 <레베카>와 <몬테크리스토>에 출연한 이지혜가 함께 캐스팅되었다. 초연 당시 '마리 앙투아네트'를 연기했던 옥주현이 열정 넘치는 빈민가의 여인 '마그리드 아르노' 역으로 변신해 돌아왔고, 윤공주와 이아름솔이 같은 역에 분한다. 이어서 이해준, 윤소호, 백호(뉴이스트)가 마리 앙투아네트를 사랑한 스웨덴의 백작 '악셀 폰 페르젠'을 연기하며, 권좌를 노리는 '오를레앙 공작' 역에 민영기, 김수용, 박민성이 연달아 이름을 올렸다.
2월 27일 개막한 <마리 앙투아네트>는 5월 26일까지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보이지 않는 진실, 보일 수 없는 진실
마리 앙투아네트, 루이 16세, 페르젠 백작 등 역사 속 인물이 등장하고, 다이아몬드 목걸이 사건, 단두대 처형 등 실제 사건이 무대 위에 그려지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해 창작한 팩션이다. 가상의 인물 마그리드 아르노를 등장시키고, 권력을 탐하는 인물들의 교묘한 술수를 보여준다.
마그리드 아르노는 당장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는 자신과 달리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호화로운 파티를 즐기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고 분노한다. 더 큰 권력을 소유하고 싶어 하는 오를레앙 공작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마그리드 아르노에게 손을 내민다. 오를레앙 공작은 '국민의회'라는 그럴 듯한 말로 자신의 야욕을 포장하고, 마그리드 아르노는 그 손을 덥석 잡는다.
왕실을 향한 마그리드 아르노의 분노는 빈민가에 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염된다. 오를레앙 공작과 권력자들은 마그리드 아르노를 이용해 마리 앙투아네트가 국고가 텅 빈 상황에서도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샀다는 음모를 퍼뜨린다. 음모로 꾸며진 마리 앙투아네트의 사치를 철썩같이 믿은 빈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법정에 세워진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는 아들과 문란한 행위를 했다는 등의 혐의가 추가로 씌워진다. 그렇게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처형된다.
빈민들은 이것이 정의라고 믿고 행동했다. 그 행동의 결과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되었으나, 동시에 공포정치가 나타났다. 음모를 통해 왕비에게 비극적 결말을 안겨준 오를레앙 공작은 마그리드 아르노의 자기고백을 통해 죗값을 치른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마그리드 아르노는 허공에 대고 묻는다. "우리가 꿈꾸는 정의는 무엇인가?"
분노는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바람직한 변화를 위해서는 시민의 분노가 그 목적이 명확해야 하고, 표출하는 방법이 올바라야 한다. 마그리드 아르노와 빈민들의 분노는 목적이 불명확했고, 방식 역시 비겁했다. 뮤지컬 속 마리 앙투아네트와 마그리드 아르노가 부르는 넘버 '증오 가득한 눈'에는 다음과 같은 가사가 등장한다.
"네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냐
보이지 않는 진실, 보일 수 없는 진실"
세상은 그렇다. 따라서 변화를 위해 분노를 표출하기 전, 자신이 모르는 것이 분명 존재한다는 겸손, 권력에 의해 가려진 것을 들춰내기 위한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
뮤지컬 속 군중심리
마그리드 아르노와 함께 움직인 빈민들은 '군중'이라 할 만하다. 이들의 분노가 방향을 잃고, 따라서 기대와는 다른 결말로 귀결된 데에는 군중의 특성, 이른바 '군중심리'가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사회학을 제도화했다고 평가받는 에밀 뒤르켐을 비롯해 귀스타브 르 봉에서부터 시작해 현대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학자들이 군중심리를 다뤘다. 이들의 논의를 집약해볼 때, 군중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특성을 보인다.
사람들이 군중이 될 때, 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이나 개성을 잃고 일체화된다(르 봉은 이를 '상실'이라고 개념화했다). 스스로 이성적 판단을 하지 못하게 되고, 군중 속에서 책임이 분산되면서 개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 이들의 감정은 점점 '전염'되고, 군중의 힘을 믿은 이들의 행동이 더 폭력적으로 변한다. 정보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군중은 쉽게 상상하고 억측하며, 이들에게 가해지는 반복적인 자극은 군중을 더 흥분하게 만든다.
이러한 양상은 <마리 앙투아네트> 속 군중들에게서 그대로 나타났다. 거짓으로 꾸며진, 제한된 정보를 믿고 마리 앙투아네트를 사지로 몰아세웠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처형당하기까지 군중의 분노는 나날이 폭발했고, 마리 앙투아네트와 각별한 사이였던 '마담 랑발'을 이유없이 살해하고 시신을 조롱할 만큼 폭력성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이들에게서 일말의 죄책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군중심리>를 쓴 르 봉의 논의에서 눈에 띄는 것은, 권력자들이 군중을 활용할 수 있음을 밝혔다는 점이다. 그는 감정적인 군중은 일련의 자극에도 쉽게 반응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권력자가 이 점을 잘 활용하면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봤다. 마그리드 아르노와 빈민들을 이용해 권좌를 차지하려 하는 오를레앙 공작의 모습에서 르 봉의 설명이 겹쳐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군중은 사라지지 않았다. 군중을 이용하려 하는 권력자들도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군중이 보다 다양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내고, 권력은 스스로를 감추는 시대다. 이런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마리 앙투아네트>가 던지는 메시지는 분명 큰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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