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구 국힘·민주, 비례 이준석·조국신당…교차투표 '판' 흔든다
#. 서울의 30대 대기업 직장인 A씨는 “우리 같은 2030 남성은 솔직히 마음을 줄 수 있는 정당이 마땅치 않다”면서도 “비례대표는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안 지키는 국민의힘보다는 이준석 대표가 이끄는 개혁신당에 표를 주고 싶다”고 말했다.
#. 경기 화성 동탄 신도시에 사는 40대 직장인 B씨는 최근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천 파동을 지켜본 뒤 “지역구는 민주당을 찍어도 비례대표는 조국혁신당이나 새로운미래 등 다른 당을 찍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 50대 C씨도 “민주당 지지자인 주변 사람들이 비례대표는 다른 당을 뽑겠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4·10 총선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지역구 투표와 비례대표 투표의 선택 정당을 달리하는 ‘교차투표(cross voting)’가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구 투표 때는 사표(死票)를 방지하고자 국민의힘이나 더불어민주당에 표를 주지만, 비례대표 투표 때는 제3의 선택을 하겠다는 유권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차투표 표심은 실제 여론조사에서 확인되고 있다. 2일 발표된 리서치뷰 조사(2월 27~29일, 무선자동응답)에서 국민의힘 지역구 선거 지지율은 44%,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선거 지지율은 34%였다. 지지율 차이가 10%포인트였는데, 그중 상당수는 개혁신당(5%)으로 옮아갔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각종 여론조사에서 개혁신당은 지역구 지지율보다 비례대표 지지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국민의힘 지지세가 강한 대구·경북 유권자를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리서치민·KBS, 2월 12~26일, 유·무선자동응답)에서 개혁신당의 지역구선거 지지율은 4.2%, 비례대표 선거 지지율은 이보다 높은 6.9%였다. 여권 관계자는 “국민의힘 지지자 중에서 중도 보수나 2030세대 일부가 개혁신당으로 이탈하는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민주당 등 야권 성향 지지자 사이에서 교차투표 표심은 더 강하게 포착되고 있다. 지난달 29일 발표된 한국리서치·KBS 여론조사(2월 25~27일, 무선 전화면접)에서 민주당의 지역구 선거 지지율은 33%였다. 하지만 민주당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 선거 지지율은 23%에 그쳤다. 이런 틈은 애초 비례 정당을 표방한 조국혁신당이 파고들어 지지율 9%를 기록했는데, 이는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의 지지율 간극 10%포인트와 엇비슷했다.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진행된 리서치뷰 여론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연합 지지율이 8%인 반면 조국혁신당은 22%에 이르렀다. (여론조사 관련한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1인 2표제가 도입된 2004년 17대 총선 이래 교차투표가 선거 결과에 일부 영향을 미쳐왔지만, 특히 이번 총선에서 더 부각되는 건 거대 양당에 반감을 가진 유권자가 그 대안으로 제3지대 정당을 주목한 결과라는 해석이다. 특정 연령대나 특정 성향의 유권자들에게 영향력이 큰 팬덤 정당들이 등장했고, 준(準)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존치돼 비례대표 투표의 효율성을 배가시킨 점 등이 영향을 미쳤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번 선거는 소수 정당이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거나, 이를 최소화하면서 유권자의 교차투표를 유도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소수 정당은 전체 유권자가 아닌 특정 정치 성향이나 연령대에 맞춘 캠페인을 하면서 비례대표 선거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민주당 지지층에서 교차투표 흐름이 더 뚜렷한 건 이들이 앞세우는 정권심판론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는 조국혁신당이나, 민주당 탈당파가 포함된 ‘새로운미래’ 등이 민주당을 ‘반윤(反尹) 전선’의 한 울타리로 두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장은 “특히 조국혁신당의 경우 중도층 표심을 고려할 수밖에 없는 민주당보다 더 강경한 목소리를 내면서 정부에 비판적인 강성 진보층의 감성을 파고들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교차투표 흐름이 총선의 향배는 물론 향후 정치권 지형을 바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거대 양당의 과반 의석 획득 가능성은 작아지면서 총선 뒤 제3지대 정당들의 역할 공간이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조진만(정치외교학과) 덕성여대 교수는 “교차투표는 이중적 투표가 아닌 거대 양당에 반감을 가진 이들의 표심을 담아내는 것”이라며 “제3지대 부상이나 양극화 정치를 완화하는 데도 교차투표가 역할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반면 정치권 일각에선 “조국혁신당과 같은 강성 팬덤 정당의 국회 입성이 오히려 정치 양극화와 진영대결을 부채질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 교차투표가 만들어냈던 2016년 ‘국민의당 열풍’
「 지역구 투표와 비례대표 투표의 선택 정당이 다른 ‘교차투표’는 최근 총선에서 핵심 변수로 작용해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6년 총선의 국민의당 열풍이다. 당시 안철수 대표가 이끌던 국민의당은 비례대표 득표율에서 새누리당(33.5%, 17석)에 이어 두 번째(26.7%, 13석)였다. 더불어민주당(25.5%)보다 1.3%포인트 앞섰다. 지역구 득표율이 새누리당 38.33%, 민주당 37%, 국민의당 14.85%인 것과 차이가 컸다.
특히 수도권에서 교차투표 양상이 두드러졌다. 비례대표만 놓고 보면 당시 서울에서 국민의당은 28.8%를 득표해 민주당(25.9%)을 3%포인트 가까이 앞섰고, 새누리당(30.8%)과의 격차는 2%포인트에 불과했다.
이는 애초 교차투표를 노린 국민의당 지도부의 전략적 접근이 주효한 결과였다. 당시 안철수 대표는 “민주당과 새누리당 지지자도 비례대표는 3번을 찍겠다는 분들이 많아 아주 깜짝 놀랄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선거운동 내내 교차 표심에 호소했다. 당시 문재인 민주당 대표도 이러한 분위기를 의식해 “정당 투표에선 지지 정당을 선택해도 지역구 후보자는 민주당을 선택해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2020년 총선에서도 교차투표는 위력을 발휘했다. 비례대표 선출 방식이 병립형이 아니라 준연동형을 택한 게 결정적이었다. 당시 253개 지역구 중 무소속(5석)을 제외하고 민주당과 미래통합당이 아닌 간판으로 승리한 곳은 정의당 1곳에 불과했다. 반면에 비례의석은 여야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19석)과 더불어시민당(17석)이 상당수 의석을 차지했지만, 정의당(5석), 국민의당(3석), 열린민주당(3석)도 합해서 11석을 가져갔다.
특히 정치 1번지 서울 종로에서 교차투표가 결과가 나왔다. 당시 이낙연 민주당 후보는 58.38%를 얻어 황교안(39.97%) 미래통합당 후보를 압도하며 당선했다. 하지만 종로 비례대표 득표율은 미래한국당이 33.3%를 얻어 32.81%를 얻은 더불어시민당을 앞섰다. 당시 야당이던 미래통합당이 완패하던 상황에서도 서울 강동갑·을, 송파병, 중-성동을 등이 교차투표 양상을 보였다.
」
김효성·강보현 기자 kim.hyos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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