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오랜 텃밭, 동시에 강남 닮아간다" 이곳서 전현희∙윤희숙 승부 [총선 핫플레이스]
“민주당 오랜 텃밭 지역이라는 것도 맞고, 요즘엔 마치 강남처럼 변했다는 것도 맞다.”
서울 중-성동갑에서 3선을 한 더불어민주당 홍익표 원내대표의 비서관 출신 오천수 성동구의원이 5일 한 말이다. 이 지역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최근 표심은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노후 주택가가 밀집했던 이곳은 서울 최대의 핫플레이스가 된 성수동을 중심으로 확 바뀌는 중이다. 아크로서울포레스트(2020년) 등 초고가 주택이 들어섰고, 대단지 아파트 공사도 한창이다. 동시에 왕십리ㆍ행당ㆍ마장 등 대규모 구도심도 여전하다. 다만, 지역구 내 불균형이 큰 만큼 개발 욕구는 강했다. 이 틈을 윤희숙 국민의힘 후보는 경제전문가를 내세워,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당선될 경우 3선이라는 강점을 내세워 각각 공략했다.
이날 오전 7시 30분 응봉역에 출근길 인사 유세에 나선 윤희숙 후보에게 다가온 한 40대 남성은 “환영한다.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어 기쁘다”고 했고, 출근길 다른 주민들도 빨간 목도리를 한 윤 후보에게 “이번엔 2번(국민의힘)을 찍겠다”, “꼭 이기시라”고 응원하며 지나갔다. 마장동에서 12년째 거주하고 있다는 김기순(55)씨는 “윤 후보가 경제 전문가인 점도 마음에 들고, 부동산 문제에도 전문성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우호적인 반응에 윤 후보는 “확실히 (판세가) 절반은 되는 것 같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같은 날 오전 10시 성동구청 앞에서 유세에 나선 전현희 후보도 환대받긴 마찬가지였다. 그가 선거용 명함을 나눠주자 주민들은 “드디어 오셨네요”(60대 여성), “드디어 선거운동을 하시는 건가요?”(50대 남성)라며 그를 환영했다. 유독 ‘드디어’라 언급한 건 전 후보가 지난달 27일 일찌감치 전략공천되고도 일주일 간 제대로 선거운동을 못 해서다. 먼저 이 지역 출마 뜻을 밝혔던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컷오프된 데 반발하는 상황에서 선뜻 나기가 부담이었다. 전 후보는 전날 오전 임 전 실장이 “당의 결정을 수용한다”고 한 이후부터 선거 운동을 시작했다. 이날 “꼭 당선하셔야 한다”(80대 남성), “잘 밀어드리겠다”(70대 여성) 등 반응이 쏟아지자 전 후보는 “공천 문제로 주민 반발이 심하면 어쩌나 했는데, 막상 와보니 2016년 재선에 성공한 강남을에서 처음 선거운동했을 때보다 훨씬 우호적”이라 말했다.
중-성동갑은 2000년 이후 치러진 총선(16~21대)에서 18대를 제외하곤 전부 민주당 후보가 이겼다. 민주당 소속인 정원오 구청장은 3선째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꼭 그렇지도 않다.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오세훈 58.5% 박영선 37.6%), 2022년 대통령선거(윤석열 51.8% 이재명 43.5%), 2022년 서울시장 선거(오세훈 59.7%, 송영길 37.7%) 에선 여당이 이겼다.
정치권은 이곳을 요충지로 분류한다. 서울 한복판이자 동대문구ㆍ강남구에 맞닿아있고, 한강변에 위치해 총선 판세를 좌우한다는 ‘한강벨트’이기도 하다. 공천 과정에서도 양당의 전략적 판단이 작용했다. 애초 민주당에선 이 지역에서 재선(16ㆍ17대) 의원을 지낸 임종석 전 실장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경제 전문가인 윤희숙 후보를 공천하며 운동권 심판론의 불을 지폈다. 그러자 민주당은 치과의사 출신 변호사인 전현희 후보를 전략공천하면서 지금의 대진표가 완성됐다.
유권자 지형이 요동치고, 개발 욕구가 강하다 보니 후보들도 이를 집중 공략하는 중이다. 처음에 운동권 심판론을 내세워 출격했던 윤 후보는 이날 “선거 공학 같은 말이 하나도 귀에 안 들어올 정도로 할 일이 너무 많아 설렐 정도”라며 “성수동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들은 발전의 에너지가 굉장히 억눌려있어, 21세기에 맞는 발전 모델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 후보도 “이번에 당선되면 3선으로, 국회 상임위원장을 할 수 있다”며 “예산이나 정책을 주도하는 힘으로 성동구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는 주민들의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3선인 정원오 구청장을 언급하며 “구청장의 행정과 합을 맞추면 큰 시너지가 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임종석 전 실장이 지역 표심의 주요 변수 중 하나임은 분명했다. 23년째 성동구에 산다는 김학수(64)씨는 “민주당 지지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임 전 실장을 지지하는 표심인데, 이재명 대표가 임 전 실장에 경선 기회도 주지 않았다는 것이 실망 표심을 낳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행당동의 카센터에서 근무하는, 임 전 실장과 30년 지기라는 김동열(65)씨는 “전 후보가 꼭 당선돼야 한다”하면서도 “종석이가 많이 도와줘야 할 텐데 그 마음이 아주 힘들면 어쩌나 걱정”이라고 말했다.
■ 전현희 부동산 전수조사로 의원직 사퇴한 윤희숙…악연의 끝에서 만나 혈투 예고
「 서울 중-성동갑의 대진표가 윤희숙 국민의힘 후보와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후보 간 ‘여전사 맞대결’로 짜이자 정치권에선 두 사람의 악연이 화제가 됐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 출신 영입 인재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에 합류해 21대 총선에서 첫 의원 배지를 단 윤 후보는 당선 이듬해 대선 출마를 선언할 만큼 거침없는 인물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등으로 민심이 요동치고 당시 정부ㆍ여당이 ‘임대차3법’을 국회에서 강행 처리하려 하자 “저는 임차인입니다”라는 본회의 5분 자유발언으로 명성을 얻었다.
당찬 초선 의원이자 깜짝 대선 후보로 주목받던 윤 후보를 가로막은 것은 다름 아닌 전현희 후보였다. 전 후보는 국민권익위원장으로 재직하던 2021년 8월, 윤 후보의 부친이 2016년 세종시 소재 논을 사들이고도 직접 농사를 짓지 않은 사실을 확인했다며 농지법 및 주민등록법 위반 사실을 공개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윤 후보는 “당에서도 사실관계와 소명을 받아들여 본인과 관계없는 일이라고 혐의를 벗겨줬다”며 “권익위 조사가 무슨 의도인지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선 승리의 걸림돌이 되기 싫다며 대선후보 및 의원직 동시 사퇴라는 초강수를 뒀다.
전 후보는 본인이 중-성동갑에 전략공천된 배경에 대해 “여당이 내세우는 ‘운동권 청산’ 프레임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점과 국민권익위원장 시절 부동산 전수 조사 등을 통해 윤 후보 사퇴를 이끌어낸 점 등을 당이 고민했을 것”이라며 “윤 후보가 당시 제대로 된 해명을 내놓지 못했던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윤 후보는 이에 대해 “우리 정치사에서 저만큼 깔끔하게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있나. 제 아버지가 차액(3억원)을 전부 기부하신 만큼 저한테는 자랑을 만들어준 사건”이라며 “우리나라에서 책임정치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제가 소환될 것이기 때문에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랬던 전 후보는 정권이 바뀐 뒤 시작된 감사원 감사로 국민권익위원장 재직 말년을 힘겹게 보냈다. 감사원은 지난해 6월 현직 권익위원장이었던 전 후보에 대한 ‘공직자 복무관리실태 등 점검’ 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제보내용 중 3건과 관련해 ‘기관주의’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감사위원회에 회부된 8가지 쟁점 모두 무혐의였는데 감사원 사무처가 이 내용을 은폐했다”고 반발했던 전 후보는 당시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했다. 전 후보는 이날 중앙일보에 “지역구에 와보니 민주당 지지층이 당시 제 고초를 기억해주고 저를 진심으로 응원해줘서 전화위복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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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환·박건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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