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의사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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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워주신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던 토요일 오전에 나는 잠들어 있었다.
나는 할머니의 아픔을 더하기만 해온 인생이었으므로 인연 없던 의사가 할머니의 마지막 아픔을 헤아렸다는 것이 부끄럽고 슬펐다.
의사가 아닌 이는 영영 닿을 수 없는 어떤 지엄한 순간을 의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 왔구나 싶었다.
의사의 지엄한 순간이 제자리에서 빛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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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워주신 할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시던 토요일 오전에 나는 잠들어 있었다. 평소 얼마나 험한 일을 한다고, 출근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늦게 드러누워 있던 나를 스스로 때려주고 싶다. 할머니의 마지막 순간 곁에 있던 이는 내가 아니라 구급차에 탄 젊은 의사였다. 심정지를 막으려 애쓰던 그는 이윽고 “더 누르면, 가슴 속이 다 망가집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는 “‘그러면 그만하십시오’라고 내가 말했다”고 가족들에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뒤늦게 고향으로 달려와 어머니 말씀을 듣고 얼굴도 이름도 모를 그 젊은 의사를 생각했다. 나는 할머니의 아픔을 더하기만 해온 인생이었으므로 인연 없던 의사가 할머니의 마지막 아픔을 헤아렸다는 것이 부끄럽고 슬펐다. 의사가 아닌 이는 영영 닿을 수 없는 어떤 지엄한 순간을 의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 왔구나 싶었다. 이래서 의사 선생님이라 존칭하는 것인가, 남들 안 보는 화장실에 가 울면서 시간을 되돌려 내가 단 하루만 의사일 수 있다면 하는 생각마저 했다.
모두 병원에서 와서 병원으로 돌아간다.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결국 생로병사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가장 기쁜 장면에도, 가장 슬픈 장면에도 의사가 곁에 있었다. 할머니께서는 나를 얻으셨을 때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아기가 바뀌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해 눈총을 받으셨다. 그것이 나와 할머니 사이의 첫 장면이다. 그렇게 귀하게 키운 아이가 늦게야 달려와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바라본 곳도 병원이다.
병원 안팎 의사들은 지금 모두가 의사를 악마화한다고 말한다. 남들보다 배운 이들이므로 이 말이 비어 있음을 모를 리 없다. 이 땅의 모든 부모가 간절한 마음으로 가처분소득을 바치는 목적이 그저 자녀를 악마로 만들기 위해서란 말일까. 전공의들의 사직 행렬을 함부로 말할 수야 없겠으나 그보다 긴 의과대학 지원 행렬에도 세상 진실은 담겨 있다. 모두가 단 몇 분간이라도 악마 앞에 앉길 희망해 줄을 서는 것일까.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말, 수가(酬價) 문제를 손대지 않아 온 정치가들의 책임이 있다는 말, 전공의들을 갈아넣는 대형병원이 또 다른 공범이란 말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다. 지방 의사 부족 이전에 지방 소멸이 있었다는 말에 일리가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사명감만을 강요할 순 없다는 진단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
진단 중 함께 발견된 것은 우매한 대중이 전교 1등들을 시기할 뿐이라는 의사들의 인식이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면은 “소아과 선생님 중 한 분이 용접을 배우고 있다”는 의사의 일갈이었다. 의업을 하던 이가 용접을 배운다며 통탄하는 의사 세계의 질서는 무엇인가. 의사에게 한없이 존중받는 지엄한 순간이 있듯 다른 인생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의 다른 직역은 노동의 가치를 호소해도 신문기사 한 줄 나기 어렵다. 이들의 사직서엔 퇴로가 없고, 사직하지 말라는 주변의 호소도 없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교육받는 전공의들의 사직 예고만으로 수술이 취소되는 장면은 그 자체로 의료인력 충원의 논거가 된다”고 말했다. 의업을 함께할 후배가 많아진다며 의업을 관두는 모습이 얼른 이해되지 않는 건 내가 우매한 탓일 것이다. 의사가 용접을 배운다며 분노하는 모습이 의아한 것도 노력하지 않은 인생이기 때문일 수 있겠다. 다만 이 순간에도 구급차는 달리고, 누군가는 병원에서 인생의 장면을 접한다. 의사의 지엄한 순간이 제자리에서 빛나길 기도한다.
이경원 정치부 차장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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