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터무니없이 살기

2024. 3. 6.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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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의 '터'는 본래 집이나 건축물을 세운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터무니없다'는 말은 터를 잡았던 무늬가 없다는 말에서 유래해 현재 상황이나 사건에 어울리지 않거나, 근거 없는 행동을 믿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를 나타낼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내가 다녀간 세상 곳곳도 머물렀다는 흔적 없이 원래 모습처럼 터무니없기를 바랐다.

터무니없이 사는 건 즐겁고도 기꺼운 책임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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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터무니의 ‘터’는 본래 집이나 건축물을 세운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건축물을 허물면 주춧돌을 놓았던 자리나 기둥을 세웠던 자리가 흔적으로 남는데 이것이 터의 무늬이다. ‘터무니없다’는 말은 터를 잡았던 무늬가 없다는 말에서 유래해 현재 상황이나 사건에 어울리지 않거나, 근거 없는 행동을 믿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상태를 나타낼 때 흔히 쓰는 표현이다. 통상적인 의미와 다른 관점에서 나는 이 말을 좋아한다. 느티나무 가지에 앉아 잎사귀에 몸을 감추고 쉬던 꾀꼬리가 다시 날아오를 때의 터무니없는 자취를, 남해의 굴곡진 해안선을 따라 헤엄치는 삼치가 물살을 남기지 않는 터무니없는 자유를, 남방노랑나비가 꽃밥 먹고 떠난 꽃잎 언저리처럼 터무니없는 깨끗함을 좋아한다. 내가 다녀간 세상 곳곳도 머물렀다는 흔적 없이 원래 모습처럼 터무니없기를 바랐다.

터무니없이 사는 건 즐겁고도 기꺼운 책임처럼 느껴진다. 식당에서 식사 후에는 남은 음식을 한 그릇에 모으고 남은 빈 그릇을 정리하는 습관처럼 펜션이나 호텔에 투숙했을 때도 손이 닿았던 물건을 가지런하게 두고 이부자리를 반듯하게 정돈한 뒤 체크아웃을 해야 마음이 편했다. 도서관에 갔을 때도 책장에서 뽑아 든 책 여러 권의 위치를 기억해 두었다가 서가 번호에 맞춰 다시 끼워놓았다. 일상생활에서 자잘하게 ‘터무니없이’ 살기를 실천하다 보니 희한하게도 존재의 가벼움을 느꼈다. 한때는 세상 속에 나라는 존재를 드러내고 인정받고 싶어 했다. 그건 유리알처럼 사방팔방 빛나는 삶에 대한 로망이었다.

이제 나는 주어진 삶에 겸손하고 고요하게 살아가는 것, 많은 관계를 맺기보다 깊은 관계를 맺는 것, 분주하기보다 집중하는 것, 행동에 신중함을 기하고 사회와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을 소망한다. 깃털처럼 가볍게 존재하며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아가며 세상 터무니없게 평온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터만 남겨두고 싶다.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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