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누군가를 모호하게 미워하지 않는 법

2024. 3. 6.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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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홍택 명지대 겸임교수·작가

혐오의 파도 넘어서는
유일한 길은 누군가를
명확하게 이해하려는 노력

수년 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시기에 등장한 ‘지옥’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지옥’의 줄거리는 작품 제목을 그대로 따라간다. 어느 날 기이한 존재가 세상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죽음을 선고하고 충격과 두려움에 휩싸인 도시는 대혼란에 빠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화살촉이라는 집단은 자의적으로 신의 의도를 해석하고 이에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들은 신의 의도에 반하는 자로 좌표를 찍고, 사적으로 처벌하고 다니면서 사회적 혼란을 더욱 악화시킨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화살촉이라는 존재는 극 중에서만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사회 많은 곳에 살아 숨 쉬고 있다. 개인의 사생활을 알 권리라는 이름으로 포장해 폭로하고 클릭 수에 눈이 멀어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등 거짓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는 이들 말이다. 이들 대부분은 정의 구현이라는 이름을 달고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자신의 사적 이득을 위해 악용하는 존재일 뿐이다.

화살촉과 같은 존재들의 작동 원리는 다양하게 있을 수 있다. 그것이 마우스의 클릭 수를 불러들여 현금으로 환전하려고 하는 경제적인 동인일 수도 있고, 정치적 편향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이 목표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활용하는 주원료는 바로 일반 대중이 가지고 있는 공포 혹은 혐오의 감정이다.

사회의 경쟁 강도가 심화하고 코로나19가 세상을 휩쓸고 간 이후 이 혐오는 계속해서 늘어가고 있다. 새로운 세대와 기성세대, 남자와 여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등으로 편을 나누고 서로에 대한 증오를 키워간다. 그리고 이와 같은 혐오에 기반한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 정치인과 언론인은 오히려 자신의 영향력 확대와 클릭 수 확보를 위해 증오를 원료로 삼는다.

개인 차원에서 이러한 혐오의 파도를 넘어서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아마도 ‘누군가를 모호하게 이해하지 않고 명확하게 이해’하는 노력일 것이다.

그리고 이 명확한 이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할 것은 복잡한 세상을 무조건 단순하게 보려는 우리의 태도를 벗어나는 일이다. 이는 우리 언어를 통해 세상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변화를 의미한다.

우리는 언어를 습득하고 사용하는 데 있어서 본질적으로 복잡한 것을 꺼리고 단순한 방식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특히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우리 사회는 개념을 단순화해 효율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을 일종의 미덕으로 여긴다. 그래서 필자가 신간 ‘2000년생이 온다’를 낸 후에 진행된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여전히 다음과 같다. “그래서 2000년대생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사물과 현상을 단순하게 받아들이려는 태도 자체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복잡한 요소로 이루어진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에 ‘지나친 게으름’이 발현될 때 개인과 개인을 구별할 수 있는 윤곽이 지워지고, 그곳에는 오직 모호한 집합체인 ‘~들’만이 남아 혐오의 표적이 된다. 남자들, 여자들, 꼰대들, 잼민이들, MZ들, 그리고 선거철이 다가오니 또다시 활개 치는 1찍들과 2찍들과 같은 집합체 말이다.

독일 작가 카롤린 엠케는 저서 ‘혐오사회’에서 “미움받는 존재는 모호하다. 정확한 것은 온전히 미워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정확함은 게으름이 아닌 섬세한 노력을 요구한다. 그들은 개별적인 인간 존재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엄밀하게 바라보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 방법은 이미 오래전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제시했다. “우리가 이 세계에서 살며 움직이며 행동하는 한, 유의미한 것은 오직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또한 혼자만의 대화로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것, 즉 말하기를 통해서 의미가 생겨나는 일뿐이다”라고 말이다.

임홍택 명지대 겸임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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