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출산율 0.65명

2024. 3. 6. 04:03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남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물은 아마 펭귄일 것이다.

펭귄은 두꺼운 지방층을 가지고 있어서 남극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펭귄조차도 남극의 무시무시한 겨울을 견딜 수는 없다.

황제펭귄은 모든 동물이 남극을 떠나는 겨울에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남극 대륙 내부로 이동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고경남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남극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동물은 아마 펭귄일 것이다. 펭귄은 두꺼운 지방층을 가지고 있어서 남극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낼 수 있다. 하지만 펭귄조차도 남극의 무시무시한 겨울을 견딜 수는 없다.

대부분 펭귄은 겨울이 오면 남극을 떠났다가 봄에 남극의 해안가로 돌아와서 짝짓기하고 알을 낳는다. 특이하게도 황제펭귄은 정반대의 생식 사이클을 가지고 있다. 황제펭귄은 모든 동물이 남극을 떠나는 겨울에 어떤 생명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은 남극 대륙 내부로 이동한다. 두꺼운 얼음으로 덮여 있고, 기온은 영하 60도 이하로 떨어지고, 먹이도 전혀 없는 곳이다.

알을 낳은 후에는 암컷과 수컷의 분업이 시작된다. 수컷은 알을 품고, 암컷은 알에서 깨어날 새끼에게 줄 먹이를 구하러 먼 여정을 떠난다. 두 가지 일 모두 만만치 않다. 온통 얼음 벌판인 남극 대륙에서는 둥지를 만들 수 없으므로 수컷은 알을 발등에 올려놓고 아랫배로 감싸서 품는다. 암컷이 먹이를 구해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무려 두 달. 그동안 수컷은 혹독한 추위 속에서 꼼짝 않고 알을 품으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기 때문에 몸무게가 절반으로 줄어든다.

암컷이 돌아올 때쯤 새끼가 알에서 나오고 암컷은 자기의 위장에 담아두었던 먹이를 매일 조금씩 토해내면서 새끼를 키운다. 경이로운 삶의 방식이다. 새끼를 낳고 자기 생명을 다음 세대로 전달하기 위한 본능은 죽음 같은 추위와 배고픔도 이겨낼 수 있다는 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출산율 저하가 심각하다. 2018년에 출산율 1이 무너진 후 매년 한 해도 빠짐없이 하락하더니 급기야 작년 4분기 출산율은 0.65명으로 떨어졌다. 사회의 존속을 위협하는 수치다. 대한민국의 출산과 육아 환경은 남극의 혹독한 겨울보다 더 가혹한 셈이다.

저출산의 심각성에 대해서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무뎌진 건지, 자포자기한 건지 더 이상 진정성 있는 논의가 이어지지도 않는다. 과도한 노동과 지나치게 경쟁적인 사회 환경이 저출산의 주된 원인일 것이다.

이런 요소들은 경제 성장의 중요한 원동력이 됐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의 소멸을 이끄는 주범이 되고 있다. 우리가 이룬 경제적 기적에 도취해 있는 동안 그 성장 방식의 부작용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점점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패러다임의 전환이 시급하지만, 과로와 경쟁의 관성에 빠진 우리 사회는 도무지 벗어날 방법을 찾지 못한다.

젊은 세대는 결혼을 포기하거나 결혼을 해도 출산을 두려워한다. 첫째를 낳더라도 둘째는 엄두를 못 낸다. 소아청소년과 진료 현장에서 보는 저출산은 그야말로 심각하다. 둘째 얘기를 꺼내면 다들 고개를 젓는다. “아이는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도저히 키울 상황이 안 돼요”라고 말한다. 낳기 싫어서가 아니라 낳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삶의 원초적인 기쁨을 누리는 것이 사치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2023년 저출산 예산이 무려 50조원이었다는데, 젊은 부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됐을까. 남극의 추위보다 더한 경쟁과 과로, 과도한 주거, 교육 비용 등을 고려할 때 획기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작년 출생한 23만명에게 1억원씩만 줘도 23조원이면 가능하다. 둘째 이상 출생아 수가 9만명이었으니 9조원의 예산으로 추가 지원할 수도 있다. 물론 일시적인 경제 지원만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하지만 실효성 없는 단발적인 대책보다는 파격, 그 이상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고경남 서울아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