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 "커제? 자신 있었다…부담감? 1인자라면 이겨내야" [손민호의 직격인터뷰]

손민호 2024. 3. 6.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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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배 역전 우승 신진서


손민호 레저팀장
지난달 23일 한국 바둑 최강자 신진서(24)가 끝내기 6연승으로 제25회 농심배 세계바둑최강전에서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이로써 한국은 농심배 4연패이자 16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이렇게만 정리하면 신진서가 이뤄낸 쾌거의 의미, 동시에 바둑 팬이 느낀 희열의 강도가 바래고 만다. 신진서의 승리는 이보다 더 위대했다.

비유하자면, 신진서의 승리는 히어로 영화를 닮았다. 홀로 남은 주인공이 적을 다 무찌르고 나라를 구하는 영웅담 말이다. 여기에서 나라는 중요하다. 농심배는 한·중·일 세 나라가 펼치는 국가 대항전이어서다. 나라마다 5명씩 출전해 연승 방식으로 최후 승자를 가린다. 이번 대회 한국은 신진서 혼자만 남았었고 일본도 1명, 중국은 5명 전원이 살아 있었다. 1대 6의 궁지에 몰렸던 한국 바둑을 신진서 혼자 구해냈다. 신진서의 농심배 승리는 이렇게 극적이었다. 도무지 깨질 것 같지 않았던 이창호의 19년 전 기록도 새로 썼다. 알파고 이후 잠잠했던 한국 바둑계가 다시 술렁였고, 신진서 한 명에게 소위 ‘올킬’ 당한 중국은 시방 후유증을 앓고 있다.

「 끝내기 6연승으로 이창호 기록 넘고 한국 우승 이끌어
“커제 지자 중국팀 초조해지고 공기 달라지는 것 느껴져
끝없이 성장하고 끝없이 성숙해지는 기사 되고 싶다”

4일 오후 서울 한국기원에서 신진서를 만났다. 농심배가 열린 중국 상하이에서 돌아온 지 열흘 만이었다. 그동안 신진서는 바빴고, 아팠다. 열이 39도까지 올라 병원에서 수액 주사를 맞고 대국에 나가기도 했다. 신진서와 세기의 역전 드라마를 재구성했다. 농심배 복기 일문일답이다.

제25회 농심배에서 끝내기 6연승으로 한국의 역전 우승을 이뤄낸 신진서 9단. 최종전에서 중국 구쯔하오 9단과의 대국 장면을 다중 촬영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Q : 지난해 12월 4일 농심배 2라운드 최종전. 7연승 중이던 중국 셰얼하오를 부산에서 만났다. 신진서 당신도 지면 한국 선수 전원이 2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당신에게도 복수의 기회였다. 불과 13일 전 당신은 삼성화재배 8강전에서 셰얼하오에게 대마를 잡히며 패했다. 복수를 생각했나.
A : “개인적인 복수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이 꼴찌 하는 걸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삼성화재배에서는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나는 컨디션이 돌아왔고, 셰얼하오가 기세를 탔다고 하지만 최상위권 선수는 아니다.”

Q : 지난달 18일 상하이로 날아갔다. 어떤 생각이었나.
A : “상하이로 갈 때는 우승만 생각했다. 꼴찌만 피하자는 생각은 오래전에 버렸다. 승산이 있다고 봤다. 한 판 한 판 집중하면 연승할 수 있다고 믿었다.”

Q : 지난달 19일 농심배 최종 3라운드 첫판. 일본의 이야마 유타를 가볍게 제쳤다. 일본 선수에게 한 번도 안 졌다는 걸 알고 있었나.
A : “물론이다. ‘전생에 이순신 장군이었느냐’고 말하는 바둑 팬도 있다. 프로기사 초창기에는 싸움을 즐겼다. 얌전한 편인 일본 바둑을 상대하기가 수월했다. 내가 계속 이기니까 요즘은 일본이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신진서의 일본 기사 상대전적은 41승 무패다).”

Q : 지난달 20일 중국팀의 첫 주자로 자오천위가 나왔다. 자오천위가 장고파라 해도 다 끝난 바둑인데 시간을 끈다는 인상을 받았다.
A : “당연한 작전이었다. 농심배는 단체전이니까. 막판까지 형세가 미세했거나 난해한 전투가 벌어졌으면 피로를 느꼈을지 모르지만, 다른 대국도 대부분 종반에는 편한 형세였다. 별 타격은 없었다.”

한국 바둑의 전설 이창호, 조남철, 김인, 조훈현의 손 동판 앞에서 손을 들어보이는 신진서 9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Q : 다음날 상대는 커제였다. 요즘 하락세라지만, 커제는 103개월이나 중국 1위를 지켰던 강자다. 지금도 중국 2위다. 그런 커제에게 완승을 거뒀다. 바둑 내용도 가장 좋았다. 이제 커제는 당신의 상대가 못 되는가.
A : “내가 어렸을 때 커제는 나보다 분명 뛰어난 기사였다. 그러나 2019년 바이링배 결승과 2020년 삼성화재배 결승을 치르며 생각이 바뀌었다. 두 번 모두 커제에게 졌지만, 실력은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경험이 부족했을 뿐이었다. 이번에도 자신 있었다(이날 승리로 신진서는 커제와의 상대전적에서 앞서기 시작했다. 현재 12승 11패로, 최근 7연승 중이다).”

Q : 커제를 이기고 우승을 예감했나.
A : “자오천위를 이겼을 때 5대 5라고 봤다. 커제를 이겼을 땐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중국팀이 초조해하는 게 느껴졌다. 커제가 지자 중국팀 공기가 달라졌다.”

Q : 그 다음날엔 딩하오도 쉽게 이겼다. 초반 연구한 포석이 나왔다던데.
A : “한국에서 국가대표팀과 공부했던 포석이 그대로 나왔다. 초반에서 기울어지니까 딩하오도 당황했던 것 같다(바둑에도 국가대표팀이 있다. 그러나 올해 바둑 국가대표팀은 축소됐다. 코치가 3명에서 1명으로 줄었다. 문체부가 한국기원 예산을 10% 깎았기 때문이다.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문체부 유인촌 장관은 지난달 26일 금의환향한 신진서를 불러 기념사진을 찍었다. 신진서는 장관에게 바둑에 대한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

Q : 딩하오는 지난해 2관왕(LG배와 삼성화재배)을 차지한 초일류 기사다. 그 딩하오에게도 초반 확보한 우세를 끝까지 끌고 갔다. 치열한 전투바둑이었던 기풍이 바뀐 것인가.
A : “후반전에서 자신감을 느끼면서 예전과 달리 급한 마음이 없어졌다. 중반에 판을 장악하는 능력이 나아졌다. 이창호의 형세 판단과 다른 게 있다면, 나는 싸움을 하면서 판을 정리한다.”

Q : 딩하오와 대국 이후 중국 팬 수백 명이 당신 사인을 받으려고 줄을 섰다.
A : “중국에서 바둑은 인기 스포츠다. 좋아하는 선수가 있으면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에선 꿈도 못 꿀 일이다.”

Q : 지난달 23일 최종국이 열렸다. 상대는 중국 1위 구쯔하오였다. 승리를 확신했나.
A : “오히려 이날은 긴장했다. 피곤하기도 했다. 중후반 우변에서의 실수도 그래서 나왔던 것 같다.”

Q : 실수가 나왔을 때 상황을 좀 더 설명해달라. 그때 한국에선 정말 지는 줄 알았다. 중국 검토실에선 환호성이 터졌다고 한다.
A : “나중에 보니 AI는 형세가 크게 나빠졌다고 분석했더라.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유리했던 바둑이 복잡해졌다는 느낌 정도였다. 구쯔하오가 바둑을 어지럽게 잘 짰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당황했으면 작년 란커배처럼 망쳤겠지만, 다시 승부에 집중했다. 운이 작용했는지, 구쯔하오도 실수가 나왔다(지난해 란커배 결승에서 신진서는 구쯔하오에게 1대2로 역전패했다).”
구쯔하오에 재역전승을 거두면서 신진서는 끝내기 6연승을 완성했다. 끝내기 5연승으로 2005년 우승을 이끌었던 이창호의 상하이 대첩을 뛰어넘었다. 신진서는 농심배 16연승을 기록해 이창호의 대회 최다 연승 기록(14연승)도 갈아치웠다.

그러나 신진서는 기념비적 승리를 만끽하지 못했다. 신진서가 상하이로 날아간 날 할머니가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가족은 대회가 끝나고서야 할머니의 부고를 알렸다. 신진서는 그날 밤 호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새 역사를 쓴 신진서에게 다음 목표를 물었다. 1인자다운 답변이 돌아왔다.

“바둑 외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모습이 여전히 바둑에서 나오는 것 같다. 끝없이 성장하는 기사, 끝없이 성숙해지는 기사가 되고 싶다. 1인자로서 져야 하는 부담감이 약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1인자라면 당연히 이겨내야 한다.”

■ 신진서 누구인가

제25회 농심배에서 이창호 9단의 기록을 뛰어넘은 신진서 9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00년 부산에서 신상용(61)씨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가 운영하는 바둑학원에서 다섯 살 때 처음 바둑을 배웠다. 바둑 입문 1년 만에 아마추어 5단 기력의 아버지를 상대로 백을 잡았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인터넷 바둑을 뒀는데, 그때 아이디가 ‘수미성모’였다. 당시 수미성모는 천야오예·미위팅 등 중국 프로기사들을 꺾는 얼굴 없는 강자였다.

신진서는 그러나 초등학교 5학년 때 프로기사 입단대회에서 떨어졌다.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대회에 참가하는 게 힘들었다고 신진서는 회고했다. 신진서의 부모는 남다른 아들을 위해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서울로 이사 왔고, 신진서 뒷바라지에 정성을 쏟았다. 이윽고 신진서는 2012년 12세 4개월에 영재 입단대회를 통해 프로기사가 됐다. 역대 5위의 어린 나이 입단이다. 충암도장에서 지도사범을 맡았던 한종진 9단은 “승부욕이 대단했던 아이”라며 “바둑을 지면 화장실에서 한참 안 나왔다”고 말했다. 충암중학교에 진학한 신진서는 바로 학교를 그만뒀다. 바둑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신진서는 2020년 LG배에서 메이저 세계대회 첫 우승을 기록했다. 기대보다 첫 우승이 늦었다. 신진서는 정상 문턱에서 번번이 실패했던 2016~2019년을 “굴곡의 시기”로 기억한다. 현재 신진서의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 기록은 6회다. 중국의 커제가 8회 우승했고, 이창호가 17회 우승이라는 독보적인 기록을 갖고 있다. 이달 4일 기준 신진서의 통산 전적은 785승 209패(승률 79%)다. 지난달 현재 신진서는 51개월 연속 국내 1위를 독주 중이다. 프로기사 신진서의 누적 수입은 72억1778만2733원이다.

손민호 레저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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