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애플·삼성의 예고된 굴욕
애플이, 삼성이 왜 이럴까. 허를 찔리고 쫓기는 상황이 묘하게 닮았다. 기민함·간절함이 사라진 1등들의 숙명인가.
팀 쿡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초 “올해 안에 새로운 AI 기능을 공개하겠다”며 빈손으로, 계획부터 공개했다. 평소 애플답지 않다. 마이크로소프트(MS)에 나스닥 시총 1위를 내준 애플의 CEO는 그렇게라도 투자자 마음을 돌리고 싶었겠지만, 월말 주주총회 분위기는 싸늘했다. 6개월간 애플 주가가 14.6% 떨어지는 동안 MS 주가는 24.4% 올랐다.
애플은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천하의 애플이 ‘느리다’고 타박받는다. 10년간 경쟁사들이 AI 서비스의 백본(backbone)인 클라우드·데이터센터 등에 투자할 때, 애플은 연구개발(R&D) 투자를 매출의 한 자릿수(지난해 매출의 8%)에 묶어두고 아이폰 벌이에 취해 있던 대가다. 애플은 또 음성 비서 ‘시리’를 13년간 아이폰에 가둬 뒀고, 매년 1조 달러 이상의 매출을 내는 앱스토어에서 수수료를 챙기며 스스로를 독점 시장에 가뒀다. 최근 포기한 애플카 프로젝트가 보여주듯, 애플식 완벽주의도 기술 시장의 변곡점이 온 지금은 맞지 않는다. 반면, 클라우드로 체질을 바꾼 MS가 오픈AI에 투자해 자신들의 약점마저 보완하는 전략이 빛나는 시기다. 모바일 초반 실기한 뒤 절치부심해온 MS다.
다음은 삼성전자. 세계 AI 칩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엔비디아가 메모리 반도체 1등인 삼성이 아닌, 2등(SK하이닉스)·3등(마이크론)하고만 AI용 최신 메모리(HBM3E)공급 계약을 했다고 한다. 한국도, 반도체업계도 모두 충격이다. 기술력과 영업력에서 삼성이 3등에게도 밀렸단 얘기라서다.
천하의 삼성이 어쩌다가? 애플이 그랬듯, 하던 대로 했기 때문이다. 대량 생산해서 시장 수요에 따라 공급을 조절하며 ‘팔면 끝’인 D램과 달리, HBM은 AI칩 설계자의 요구에 철저히 맞추는 ‘을 정신’이 필요하다. 잃을 게 없던 2등은 10여년 전부터 엔비디아와 함께 머리를 맞댔다는데 1등은 그 길을 무시했다.
‘을 정신’은 AI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 더 중요하다. 자신만의 AI 반도체를 설계하려는 기업들이 산업별로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1위 파운드리인 TSMC가 삼성에 앞선 건 기술보다도 영업력, 즉 ‘서비스 자세’라고들 한다. 갑보다 갑의 문제를 더 잘 알고 먼저 해법을 제안하는 서비스는 오늘의 TSMC를 만들었다. 기존의 성공 노하우만으론 애플도 삼성도 굴욕을 피하기 어려운 지금, 이들의 행보에 따라 글로벌 첨단산업의 지도가 바뀔지도 모른다.
박수련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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