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반도체산업 죽일 건가? 외국 보고서에 담긴 진실 [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이봉렬 2024. 3. 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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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ASML 2023 연차보고서에 나타난 한국 재생에너지 문제

[이봉렬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2월 22일 경남 창원시 경남도청에서 '다시 뛰는 원전산업 활력 넘치는 창원·경남'을 주제로 열린 열네 번째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주제 발표를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2월,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업체인 ASML이 2023 연차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반도체 업계의 '슈퍼 을'이라 불리는 중요한 회사인 데다, 작년에 대통령님이 직접 방문했던 회사라 보고서가 나오자마자 모두 살펴봤습니다. 혹시 대통령님이 ASML 방문 시 발표했던, ASML과 삼성전자가 1조 원을 투자해 한국에 R&D센터를 건설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아쉽게도 그런 내용은 없었지만 보고서 곳곳에 한국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그걸 대통령님께 설명하고자 합니다.

지난 기사(외국 반도체업체의 뼈아픈 지적... 윤 대통령이 망치고 있다 https://omn.kr/27279)에서 ASML의 2022 연차보고서 내용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었으니 복습부터 하겠습니다. ASML의 2022 연차보고서는 한국에 두 가지 사업리스크가 있는데 첫 번째가 북한과의 긴장이고, 두 번째가 재생에너지 공급 부족이라고 명기했습니다. 그래서 ASML이 한국에 보다 많은 투자를 하기 위한 전제조건이 남북한 긴장 완화와 재생에너지 확대라고 제가 대통령님께 직접 설명했습니다. 기억나시나요? 1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그 전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남북한 긴장 상태는 지난주 열린 '2024년 학군장교 임관식'에서 대통령님이 직접 "북한이 총선을 앞두고 사회혼란과 국론분열을 목적으로 다양한 도발과 심리전을 펼칠 가능성이 높다"며 "북한이 도발하는 경우 즉각적, 압도적으로 대응해달라"고 이야기할 만큼 더 나빠졌습니다.

재생에너지는 원자력발전(원전)을 사랑하는 대통령님 눈에서 저만큼 멀어졌습니다. 대통령님은 창원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서 "원전 산업의 정상화를 넘어서 올해를 원전 재도약의 원년으로 만들기 위해 전폭 지원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원전이 재생에너지가 아니라는 건 아시죠?

ASML 연차보고서에 골칫거리로 남은 한국

이번에 발표된 ASML의 2023 연차보고서에도 이러한 지적이 다시 나왔습니다. 하지만 지난해와는 내용이 조금 다릅니다. 둘을 나란히 비교해서 볼까요?

"순배출 제로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대만과 한국에서 신뢰할 수 있는 재생 에너지를 조달하는 것이다." – 2022 연차보고서

"2023년에는 대만에서 장기전력구매계약(PPA)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계약은 2024년에 발효될 예정이며 2025년 기준으로 연간 16kt의 배출량을 줄이려는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전력이 거의 없는 한국에서 계속해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 2023 연차보고서
 
 대만, EU, 미국, 중국은 모두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고 있는데 한국만 남아 어렵다는 ASML의 연차보고서 내용
ⓒ ASML 2023 연차보고서
 
차이를 발견했나요? 2022년만 해도 재생에너지 부족으로 문제가 되는 나라는 한국과 대만 두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대만은 지난해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렸습니다. 덕분에 ASML은 대만에서 재생에너지 확보를 위한 방법을 찾은 것입니다. 유럽연합(EU), 미국, 중국에서는 이미 100%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한국만 남았습니다. "한국에서 계속해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는 문장에서 뭔가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재생에너지 조달 계획 없이 ASML이 1조 원이 드는 R&D센터를 조기에 지을 일은 없어 보입니다. 실제로 ASML의 R&D센터 관련 소식은 아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사실 R&D센터는 조금 더 기다릴 수 있습니다. R&D센터에는 ASML의 최신 장비인 하이NA-EUV 장비가 설치되어야 하는데, 2027년 이전에 그 장비를 들여올 가능성이 전혀 없어 보이니까요. 재생에너지 부족으로 인한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없는 고객사엔 장비 팔지 않을 수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이 재생에너지를 확보하지 못하면 ASML 장비를 사지도 못하고 운영하지도 못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ASML은 204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는 넷제로 선언을 했습니다. 여기에는 ASML 자체의 탄소중립과 부품 납품 기업의 탄소중립뿐만 아니라 고객사가 ASML 장비를 사용하는 중에도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ASML은 연차보고서의 "가치 사슬에서 탄소 배출 제로를 향한 우리의 여정"이라는 페이지에서 "우리는 가치 사슬의 순배출 제로를 향한 여정에서 이정표를 달성하기 위해 고객사, 공급업체 및 파트너와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고객사가 공급업체나 파트너보다 먼저 언급됐습니다. ASML의 탄소 배출 제로를 위해 가장 큰 협력이 필요한 건 ASML 장비를 사용하는 고객사라는 걸 의미합니다.
  
 고객사에서 ASML 장비를 사용할 때에도 재생에너지를 쓰도록 하는 게 ASML의 목표입니다.
ⓒ ASML 2023 연차보고서
 
쉽게 말해 ASML에 부품을 납품하는 기업이 무조건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달성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ASML의 장비를 쓰는 고객사도 탄소중립에 동참하라, 즉 고객사도 RE100을 달성하라는 주문입니다. 아직 고객사에 그런 요구를 전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원래 2050년까지였던 넷제로 달성 목표를 2040년까지로 10년이나 앞당긴 ASML이 언제 그런 조건을 걸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지난 기사(한국은 요주의 국가? 윤 대통령 때문에 망신살 뻗쳤습니다 https://omn.kr/2725z)에서 삼성전자가 RE100 안 하면 애플에 반도체를 못 팔게 된다고 했는데, 이제는 RE100을 안 하면 ASML 같은 반도체 장비 제조사에서 장비를 못 받아 반도체를 아예 못 만드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는 겁니다. 7나노 이하의 첨단공정용 EUV 장비는 ASML만 만들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ASML이 하겠다는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원전에서 생산된 에너지는 쓸 수 없습니다.

'설마 ASML이 그렇게 하겠어?'라는 생각을 하고 있나요? ASML 장비는 늘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나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기회만 되면 ASML에 가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만 ASML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닙니다. 미국의 인텔에는 하이NA-EUV 초기 물량 모두를 몰아줄 정도로 가깝고, 대만의 TSMC는 ASML의 최대 고객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ASML이 장비를 납품하기 위해 고객사를 선택해야 한다면 자사 장비를 운용할 재생에너지가 없다는 핑계로 우리 기업들을 밀어 놓을 개연성은 충분합니다. ASML이 납품하지 않을 명분으로 최고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보면 우리 기업들이 ASML의 장비를 받기 위해 재생에너지 공급 목표를 달성한 미국이나 유럽에 반도체 팹을 짓는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부족이 우리 반도체 기업을 우리나라에서 몰아낼 수도 있다는 겁니다.
  
 RE100을 맞추지 못해서 기업들이 어렵다고 하는데, 정부는 원전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보도설명자료를 내놓았습니다.
ⓒ 산업부 보도설명자료
 
재생에너지 대신 원전 재도약을 외치는 대통령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님은 "올해를 원전 재도약의 원년"으로 선포했습니다. 산업부는 RE100을 맞추지 못해 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를 반박하는 "반도체 공장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서는 원전의 역할이 필수적"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습니다. 집권여당을 이끄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RE100을 알면 어떻고 모르면 또 어떤가?"라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기도 했습니다.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충언을 하는 사람은 없고, 다들 대통령님 말에 맞장구 치기 바쁩니다.

기업들은 재생에너지가 없어서 당장 사업을 못 하겠다고 아우성치는 상황에서, 당정대(여당·정부·대통령실)가 한목소리로 재생에너지와 RE100을 무시하고, 원전 재도약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우리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산업을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 이유가 뭔가요? 아니 이건 반도체 산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자동차, 배터리, 가전 등, 수출을 하는 제품이라면 앞으로 다 재생에너지 사용 여부로 인해 수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겁니다.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떤 이유로 무엇을 목적으로 재생에너지는 억누르고 원전을 그렇게 띄우는지 알아야겠습니다. 대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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