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도 결국 감옥에...윤석열, 늪에 빠지고 있다"
[김병기 기자]
▲ 정연주 전 방심위원장은 3일 공개된 오마이TV '오연호가 묻다'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언론장악 문제들을 지적했다. |
ⓒ 오마이TV |
"못된 정치 권력의 폭력성을 보여줄 수 있는 자리에 내가 있었다는 것을 축복으로 생각합니다."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이 지난 3일 유튜브 채널 <오마이TV>에 공개된 '오연호가 묻다'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정 전 위원장은 지난 2023년 8월, 임기 만료 11개월을 앞두고 방심위원장 직에서 해촉됐다. 그는 박정희 정권 때인 1975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됐고, 2008년 이명박 정권 때 KBS 사장직에서 해임된 바 있다. 3번의 해임은 모두 정권의 언론 장악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정 전 위원장은 "(감옥에 갔던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해서) 나를 해임하거나 해촉했던 사람들의 뒤끝은 모두 좋지 않았다"면서 "윤석열 대통령도 그 늪에 빠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1시간 30여분 간 진행된 심층 인터뷰에서 정 전 위원장은 방심위 사태와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정연주 쫓아낸 방심위, 6개월 동안 '심의 테러'
우선 정 전 위원장은 윤석열 정부가 자신을 방심위원장에서 해촉한 것을 예견된 일로 받아들였다. 그는 "최근 6개월 동안 방심위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국민의힘이 보기에 좋겠냐"면서 "자기들이 표적으로 삼았던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심의 대상으로 올리고, 자기들의 수족 같은 사람들이 가서, 자기들 입맛에 맞는 심의 테러를 가해서 과징금이라는 가장 강한 제재 조치를 취하는 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자신들이 우위에 있는 체제를 만들려고 저와 부위원장을 해촉한 뒤 추가로 3명을 전광석화처럼 잘라버렸고,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3명을 보충해서 지금은 6대 1 체제가 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정 전 위원장을 해촉하기 직전, "심각한 비위사실이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실제 해촉 사유는 업무시간 미준수, 업무추진비 부당사용 등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그간 저와 방심위 상임위원에 대해서는 근무시간 규정이 없었지만, 일반 직원들처럼 출퇴근 시간을 지키지 않은 것은 제 불찰"이라면서 업무 추진비 문제를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제가 2년 동안 사용한 업무추진비 341건 중 90% 이상이 부속실에서 결재했습니다. 직원, 비상임위원, 자문위원들과의 식사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1인당 3만원 이상 쓰지마라'는 방심위 회계 지침이 있었습니다. 341건 중 11건이 3만원 이상 사용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가령, 저를 포함 4명이 식사를 했는데, 3만원짜리 4명이 먹으면 12만원입니다. 그런데 식당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두 분이 캡슐 커피를 시켰는데 1잔당 2천원이어서, 4천원을 과잉 지불한 거죠. 그런데 직원들이 관행상 회계처리를 하면서 5명이라고 쓴 겁니다. 전부 모았더니 11건에 12만원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한 일은 아니지만, 이런 관행을 고치지 못한 건 제 불찰입니다. 그렇다고 이 일이 방심위의 책임자와 부위원장을 면직시킬 정도로 중대한 범죄인가요."
정 전 위원장은 "그렇게 크지 않은 사건을 빌미로 군사작전을 펴듯이 5명을 일거에 전광석화처럼 해촉시켜서 방심위를 자신들이 원하는 구도로 바꿨다"면서 "해촉 정부 인사 발령 통지문을 보면 왜 잘렸는지 이유도 없고, 저희에게 최후 진술할 기회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 전 위원장은 "제가 KBS에서 2008년에 해임되고 난 뒤에 행정소송을 제기해서 승소를 했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저에게 최후 진술의 기회를 안 준 것"이라면서 해촉 행정처분 가처분 신청은 각하됐지만, 본안 소송에서는 승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 정연주 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자료사진) |
ⓒ 남소연 |
정 전 위원장은 윤석열 정권이 법적 절차 등을 무시하고 방심위를 장악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생각 없는 집단들 아닌가요? 생각과 윤리와 기본과 상식과 이성이 마비된 집단으로 봅니다. 이성과 합리, 상식이 문명 사회의 바탕인데, 이런 것으로는 도무지 설명을 할 수가 없어요. 제가 워싱턴 특파원을 할 때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아들 대통령이 워낙 이상하고 생각 없는 일을 많이 하니까 그때 타임지 표지 커버스토리로 아들 부시 대통령 사진을 하나 털어놓고 'empty brain'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습니다. 텅 빈 머리. 윤석열 대통령을 보면 타임지 커버스토리가 생각나요. 그 밑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고."
정 전 위원장은 이명박 정권이 자신을 KBS 사장에서 강제 해임시킬 때의 상황과도 비교했다. 그는 "당시 감사원, 국세청, 청와대 권력기관을 총동원했고, 검찰도 저를 배임으로 몰아서 수사 기록이 무려 6천 페이지가 됐다"면서 "집중적으로 수개월 동안 그런대로 모양을 갖췄는데, (윤석열 정부는) 좀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정말 사소한 문제를 걸었고, 절차도 지키지 않고 한 줄 짜리 통보하는 것으로 끝이었다"고 설명했다.
정 전 위원장은 해촉되는 과정에서의 심경을 묻는 질문에 "KBS 사장에서 쫓겨날 때도 똑같은 심정이었는데, MB의 방송 장악을 위한 폭력성을 내 사건을 통해서 드러낸 적이 있다"면서 "이번에도 나를 통해서, 혹은 해촉된 5명을 통해서, 그 이후 지금까지 진행된 6개월 동안의 야만적이고 망나니 같은 심의 테러 행태를 통해서 역사가 뭔가를 보여주려는 게 있구나, 저는 종교적으로는 내가 이런 자리에 있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권의 'KBS 박멸'... 빅픽쳐 같은 건 없다"
그는 윤석열 정권에서 KBS의 신뢰도가 급속도로 추락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정청래 의원이 박민 사장이 아니고 '박멸 사장'이다 했는데, 실제로 KBS를 박멸시키고 있다"면서 "프로그램 박멸시키고, 진행자 박멸시키고, 유튜브 시청률까지 박멸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KBS가 지금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권은 왜 KBS를 장악하려는 것일까? 정 전 위원장은 이 질문에 대해 "일부 사람들은 공영방송 KBS, MBC를 다 민영화시켜서 소위 진보 정권이 잡아도 진보 정권의 나팔수가 되지 않도록 마이크 자체를 꺼버리겠다는 빅픽처가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그런 빅픽처를 그릴 수 있는 머리를 갖고 있지 않다"면서 "과거 한나라당 시절부터 새누리당, 국힘 쪽을 지켜봤는데, 그들의 일관된 생각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방송 때문에 정권을 빼앗겼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망가지는 KBS를 어떻게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정 전 위원장은 "조직의 구성원들이 아무 일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서 "KBS 운명을 결정적으로 타격하는 수신료 분리징수 조치가 취해졌을 때 KBS 내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 결과적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정부가 원하는 대로 가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50년 전에 유신 독재 시절에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던 그 암흑 시절에 내걸었던 자유언론실천선언에 이런 구절이 있다"면서 "본질적으로 자유 언론은 언론인 종사자들의 실천 과제일 뿐 당국에서 허용되거나 국민대중이 찾아다 쥐어주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언론인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저는 그 외침이 지금도,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투표가 혁명이다"
정 전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한 마디 해달라는 요청에 "진짜 할 말이 없다, 다만 방심위원장 해촉될 때 '진시황처럼 그렇게 하고 있는 데 당신의 3년여 남은 임기의 끝이 보인다'고 이야기를 했다"면서 "이미 기소된 건도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피해를 입힌 사례들도 있으며, 거짓말도 많이 했는데 그런 기록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오는 총선에 대한 관심을 묻는 질문에 정 전 사장은 이같이 답변했다.
"박정희 유신 체제 전두환 암흑 체제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분명히 확연하게 차이 나는 게 딱 하나가 있습니다. 그건 뭐냐 하면 사람들이 많이 절망하고 그러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어요. 그때는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 세계였던 게 우리가 직접 내 손으로 투표해서도 대통령을 못 뽑았어요. 6월 항쟁 이후에 우리가 직선이라는 걸 쟁취했잖아요.
그래서 이미 민주화되고 난 이후에는 선거가 총총이 있어요. 대통령 선거가 있고, 총선거가 있고, 지자체 선거 있고, 또 보궐선거 있고... 그래서 정치적으로 메시지를 던지고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선거가 계속 있다니까. 그래서 제일 중요한 거는 투표 잘 하면 되는 겁니다. 지금은 무슨 혁명의 시대가 아니에요. 투표가 혁명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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