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공짜’였던 약값 부담 급증 우려… 취약층 처방률 떨어질 듯

민태원 2024. 3. 5.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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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치료제 건보 적용 추진
보건당국, 이르면 내달 적용 추진
양성자 5000명대… 고령층 39%나
치료제 급여화되면 30% 본인 부담
취약층 중증화·사망 위험 커질 우려
치료제 간 형평성 논란 제기 가능성

정부가 그동안 무상으로 지원하던 코로나19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을 추진하면서 급여화에 따른 약값 부담으로 취약층의 치료 접근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진은 2022년 국내 최초로 도입된 경구용 치료제 팍스로비드가 약국에 비치돼 있는 모습이다. 뉴시스

보건당국이 이르면 4월에 코로나19 치료제의 건강보험 적용을 추진하고 있다. 그간 고령층, 면역 저하자 등 고위험군에 무상 지원되던 경구용 혹은 주사 치료제의 비용을 환자가 일부 부담하는 방식으로 바뀔 전망이다. 문제는 '공짜'였던 약값 부담이 갑자기 증가하면 사회·경제적 취약층의 처방률이 떨어지고 중증화, 사망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그간 경증·중등증 코로나 확진자의 중증 진행을 막기 위해 먹는 치료제의 초기 투약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비용 부담으로 먹는 치료제 처방을 피하거나 거부해 치료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들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급여화하더라도 본인 부담률의 단계적 적용이나 산정 특례 포함, 별도 재원 마련을 통해 약값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4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코로나19 주간 신규 양성자는 2월 셋째 주(18~24일)에 5000명대를 보였다. 2월 첫 주 6000명, 둘째 주 7000명대에 비해 다소 줄었지만,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양성자 중 60세 이상 고령층 비율은 39%로, 첫 주(35.4%)와 둘째 주(36.4%)보다 상승 추세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감염내과 추은주 교수는 “4주 전만 해도 호흡기질환 중 독감 환자가 가장 많았으나 2월 이후부터는 코로나19가 1위, 호흡기세포융합바이러스(RSV)가 2위, 독감이 3위 순으로 역전됐다”면서 “코로나 백신 항체와 자연 감염으로 생긴 면역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요양병원 입원자들은 대부분 암과 기저 질환을 갖고 있어 항바이러스제 등 치료제 처방이 필요한 환자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코로나19에 대한 국민 피로도가 높고 경각심이 낮아지면서 고령자들조차 코로나 검사를 제때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확진을 받더라도 가벼운 증상일 땐 별다른 치료 없이 지나치는 경우도 적지 않아 중증 진행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얼마 전 코로나 확진을 받은 A씨(80)는 특별한 증상이 없어 먹는 치료제를 처방받지 않고 집에서 지내다 1주일 후 식욕 부진과 호흡곤란이 나타나 급히 응급실을 찾았다. 검사 결과 심한 폐렴이 확인됐고 중환자실로 옮겨져 치료받았으나 결국 숨졌다.

이런 상황에서 상반기 중에 치료제의 건강보험 등재를 통한 유상 지원으로 정부 정책이 전환되면 환자들의 치료 접근성이 더 떨어질 것이란 염려가 제기된다. 현재 정식 품목 허가를 받은 코로나 치료제는 먹는 형태의 ‘팍스로비드’와 주사제인 ‘베클루리(렘데시비르)’로 급여화 심사가 진행 중이다. 또 다른 경구용 약인 ‘라게브리오’는 정식 승인이 나지 않아 급여 심사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팍스로비드는 60세 이상과 12세 이상의 면역 저하자 또는 기저 질환자에게, 라게브리오는 60세 이상과 18세 이상 면역 저하자 및 기저 질환자에게 외래와 입원에서 처방되고 있다. 베클루리는 입원 환자에게 주로 처방된다. 질병청 관계자는 “심평원에서 비용 효과성 평가를 진행 중이나 일반 의약품과 달리 코로나 치료제는 빠른 기간에 개발되다 보니 제출 데이터가 충분치 않아 심사가 지연되는 걸로 알고 있다. 4월 급여화 목표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치료제가 급여화되면 현 규정대로라면 전체 약제비의 30%(입원 시 20%)를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팍스로비드(하루 2회, 5일간 복용)의 경우 해외에서 비급여 약값이 70만~100만원으로 알려져 건보 적용을 받아도 20만~30만원을 내야 한다. 렘데시비르 역시 고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이슈는 지난해 국정 감사에서도 논란이 됐다. 한 대학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본인 부담률이 높아지면 환자들은 치료제를 쓸지 말지 고민하게 되고 이런 상황은 중증 환자, 사회 취약층에게 더 문제가 된다”고 했다. 또 “주사제의 경우 입원비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약제비 부담이 크게 다가오지 않을 수 있지만, 경구용 약은 당장 외래에서 약값을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게 와 닿을 수 있다”고 부연했다.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천은미 교수도 “무상으로 제공되다가 비용 부담이 생기는 거니까, 처방이 꼭 필요한 환자들도 사용에 제약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약값 부담을 낮춰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일각에선 초기에 본인 부담률 5~10% 정도로 시작해 점차 확대하거나 희귀·중증질환처럼 산정 특례 적용, 국민건강증진기금 혹은 정부·지자체 주도 별도 재원 마련을 통해 본인 부담금을 지원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추은주 교수는 “결핵은 정부 지원 100%로 본인 부담이 없다. 건보 재정상 계속 그렇게 할 수는 없는 만큼, 1~2년간 한시적으로 본인 부담을 낮춰주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치료제 간 형평성 논란도 제기될 수 있다. 팍스로비드와 베클루리 등 일부 치료제만 급여화되면 효과와 안전성 데이터 기반으로 정식 허가를 받은 치료제는 환자들에게 과도한 비용 부담이 발생하고 정식 승인을 받지 않은 치료제(라게브리오)는 지금까지처럼 무상 공급될 가능성이 있다.

또 팍스로비드는 정식 허가를 18세 이상으로 받았는데, 이렇게 되면 지금까지 무상 제공받았던 12~17세 면역 저하자·기저 질환자는 비급여로 훨씬 더 많은 약값을 부담해야 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의료계 한 관계자는 “환자들의 개별 상황에 맞춰 가장 적절한 치료제를 권장해야 하고 치료에 집중하려면 비용에 대한 차등 부담 없이 처방할 수 있는 올바른 치료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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