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호의 시시각각] 낙수 의사? 걱정 말아요 그대
의사 선생님들의 시위가 대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엊그제 서울 여의도 의사 집회에 굳이 찾아가 본 이유다. 집회 단상엔 ‘국민 부담 증가하는 의료개악 반대’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철폐’ ‘의대증원 정책 원점 재논의’ 등의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과 의대 증원 찬성 주장을 펴 온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의 얼굴 사진을 들고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라고 적힌 검은 마스크를 쓴 참가자도 있었다. 의사들이 두 사람을 ‘공적(公敵)’으로 삼은 건데, 뒤집어 보면 이들이 그동안 의료 개혁의 최전선에 있었다는 얘기도 되겠다.
TV에 자주 나오던, 복지부가 고발하고 경찰이 출국 금지한 의협 간부와 집회 참석자들이 웃으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간부는 의사 고액 연봉 논란에 대해 “인턴, 레지던트, 펠로 과정을 마치고 40세 정도 돼서 개원한 의사들의 2억8000만원(개원의 국세청 신고 연수입) 수입이 비난을 받아야 할 정도로 많은 연봉이냐”고 옹호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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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대면진료·타투에 간호사법까지
의사 반대로 못 하는 게 너무 많다
공급자가 증원 ‘합의’ 요구하다니
」
자신들을 박해받는 피해자처럼 여기는 의사들의 주장은 불편했다. 전공의를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몸을 태워 공양한 등신불에 비유하기도 했다. 어불성설이다. 이번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누가 뭐래도 제때 수술과 치료를 받지 못해 애태우는 중증 환자들이다.
의사들은 의대 증원이 정부의 총선용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다. 그런 면이 있다. 분명한 건, 국민의 76%가 찬성하는 정책이라는 점이다(한국갤럽). 포퓰리즘에는 반(反)엘리트주의 성격도 있다. 엘리트주의라고 다 나쁜 건 아니지만, 엘리트의 제 몫 챙기기엔 대중의 인심이 사납다.
어제 신문 1면 ‘의료개혁, 마지막 기회입니다’라는 정부 광고는 틀린 게 없다. 한국은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1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하위권이고, 고령화로 의사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으며, 지금 의대 정원을 늘려도 전문의는 10년 뒤에 나온다. 과거 정부처럼 더 이상 미룰 일이 아니다. 물론 의대 증원만이 해법은 아니다. 필수의료 수가 현실화, 지방의료 개선 등 현장의 의사들과 구체적으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하지만 의사를 늘리지 않고는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
의사 주장 가운데 ‘낙수 의사론’이란 게 있다. 의사 정원을 늘리면 인기 없는 필수의료 분야에도 의사들이 진출할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지만, 이는 지금 사명감을 갖고 필수의료에 종사하는 ‘바이털(생명) 의사’의 자부심에 상처를 준다는 거다. 그러면서 떠밀려서 온 ‘낙수 의사’의 치료를 누가 받고 싶겠냐고 반문한다.
글쎄다. 우리나라 의사는 너무 ‘큰 걱정’이 많으시다. 국민 건강은 물론이고 건강보험 재정에서 공대 교육과 산업 공동화까지 염려하신다. 의사단체의 이런 걱정 때문에 못 하는 것이 수두룩하다. 비대면 진료는 시범사업만 하고 있고, 타투 합법화는 제자리걸음이며, 간호법 제정안은 무산됐다. 그나마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는 무려 14년 만에 지난해 간신히 국회를 통과했다. 이쯤 되면 의사 주장의 진정성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동네 가정의학과 주치의나 친구, 선후배 등 내 주변의 의사 개개인은 대부분 호인이다. 하지만 집단으로서 의사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철학자 라인홀드 니부어가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에서 지적한 것처럼, 개인은 도덕적일 수 있어도 집단의 생리는 이기주의로 흐르기 때문일까.
의사들은 ‘의료계와 합의 없는 의대 증원 결사반대’를 외쳤다. 정부 정책의 이해 당사자가 자신들과의 ‘협의’가 아니라 ‘합의’를 주장하는 건 지나치다. 의사 면허 공급을 의사들에게 맡기라니,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 헌법은 “사회적 특수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어떠한 형태로도 이를 창설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의사가 헌법에 반하는 사회적 특수계급일 수는 없다.
서경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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