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문제, 미·중·러의 공동 협력 과제로 만들어야”[중앙일보-CSIS 포럼]

이근평 2024. 3. 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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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중국·러시아 밀착,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중앙일보-CSIS 포럼 2세션에서는 전례 없는 북·러 밀착 구도에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표출됐다. 이는 “러시아가 북한에 정찰위성은 물론 핵추진 잠수함 등 첨단 군사기술을 제공할 가능성을 놓고 한국 정부가 더욱 분명히 러시아에 경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신각수 전 외교통상부 차관)는 지적으로 이어졌다.

중국의 역할론을 놓고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북·러가 긴밀해져 북한 문제에 중국이 끼어들 여지가 줄었다”(앨리슨 후커 전 미 백악관 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는 주장이 나온 반면 “북한의 중국 의존도가 여전히 커 중국 역할론을 기대할 수 있다”(신정승 전 주중 대사)는 입장이 맞섰다. 북핵 문제를 미국 대 중·러 대립 구도에서 분리해 미·중·러 협력 과제로 만들어내야 한다는 제언(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도 있었다.

좌장을 맡은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미국은 두 개의 전쟁을 신경 쓰면서도, 우크라이나 전쟁 지원을 중단하라는 국내 목소리가 하원을 중심으로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북한 도발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있다”고 진단했다. 다음은 참석자들의 주요 발언.

'중앙일보-CSIS 포럼 2024'가 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렸다. 이날 북한-중국-러시아 밀착,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주제로한 세션2에서 참석자들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영관 서울대 명예교수, 앨리슨 후커 전 미 백악관 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 신정승 전 주중국 대사, 빅터 차 CSIS 수석부소장 겸 한국 석좌,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 김종호 기자 20240304


◆앨리슨 후커 전 미 백악관 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북·러 관계가 급격히 가까워져 북한은 지원 받은 식량, 연료로 생존의 활로를 찾는 게 가능해졌다. 군사적으로도 위협 능력을 더 끌어올릴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 중동, 대만 등에서 불거진 이슈로 한동안 후순위로 밀렸던 북한 위협이 새로 주목 받게 됐다. 이는 민주주의 국가 간 관계가 강화되는 효과로 이어진다. 한·미·일 관계에 더해 유사한 입장을 갖는 국가가 함께 하기를 기대한다. 대북 제재와 억제력과 관련, 이 같은 국가들의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

이에 비해 북·중·러 관계는 미국과 다른 우호국의 협력에 맞서 편의상 만들어진 경향이 크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이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러시아에 더 기대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중국의 영향력이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중앙일보-CSIS 포럼 2024'가 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렸다. 이날 북한-중국-러시아 밀착,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주제로한 세션2에서 앨리슨 후커 전 미 백악관 NSC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이 발언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20240304


◆신정승 전 주중국 대사=북·러 간 군사적 협력은 양측의 상호 이해관계가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기 때문에 더욱 심화하는 양상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무기를, 북한이 식량·에너지원을 각각 확보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러시아 입장에선 긴밀해진 북·러 관계를 통해 미국의 관심을 우크라이나에서 분산시킬 수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압력에 맞서는 데 러시아를 이용하려는 게 아닌가 한다.

중국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소통을 강화할 만하다. 중국은 나름의 생각과 국익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북한이 엉뚱한 도발을 못하도록 중국을 개입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

◆빅터 차 CSIS 수석부소장 겸 한국 석좌=러시아가 계속 전쟁을 이끌어갈 수 있는 건 북한의 탄약 공급이 있기 때문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모든 걸 걸었다. 소련 시절에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요청하는 쪽이었다면 지금은 러시아가 북한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됐다. 북한은 이를 잘 이용해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핵추진 잠수함 기술 등 첨단기술 이전이 가장 우려된다는 의미다. 이런 측면에서 한·미·일 관계 때문에 북·중·러 간 협력의 축이 촉발됐다는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북한이 북·미 관계에 관심이 떨어진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최근 북한이 월북 미군 트래비스 킹을 송환했을 때 이미 미국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뜻을 나타내기도 했다.

북·러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중국이 불편함을 느낄 수는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지 않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을 만나자 북·중 정상회담을 가졌다. 어쩌면 질투심으로도 읽힌다. 푸틴과 김정은이 가까워지면 북·중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앙일보-CSIS 포럼 2024'가 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렸다. 이날 북한-중국-러시아 밀착,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주제로한 세션2에서 빅터 차 CSIS 수석부소장 겸 한국 석좌가 발언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20240304

◆신각수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외교통상부 차관=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북·러 관계 강화에 따른 러시아의 비호 가능성은 북한의 도발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 대남·대미 대화가 두절된 데다 미 대선 이후 교섭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북한의 도발 수요는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군사기술이 북한으로 이전되는 상황 역시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과거 러시아는 북한에 첨단기술을 전수하는 데 인색했지만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정치적 생명을 걸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한국 정부는 “군사기술이 북한으로 넘어간다면 좌시하지 않고 상응조치를 취하겠다”고 러시아에 분명히 경고해야 한다. 미국 등 동맹을 활용하는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다만 북·일 정상회담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일종의 국가 과제인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기시다 정부는 김정은을 만날 수 있다고 하지만, 이 문제는 타협이 어려운 제로섬 게임과 비슷해 진전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인질이 살아있느냐 여부, 유해가 있느냐 여부로 결정될 문제라는 점에서 적당히 얼버무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앙일보-CSIS 포럼 2024'가 4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렸다. 이날 북한-중국-러시아 밀착,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주제로한 세션2에서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이 발언하고 있다. 김종호 기자 20240304

◆위성락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에 대한 어떠한 조치도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등 북핵 문제에 더욱 비협조적인 자세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입장에선 북한 비핵화 등 중요 안보 의제에서 중·러와 일정한 협력 관계가 필요하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협력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북핵 문제는 국제 비확산과 동북아의 평화, 안정을 저해하므로 미·중·러의 공통 이해가 될 수도 있다. 북핵 문제를 가급적 미·중 및 미·러 간 대립 구도로부터 분리해 내고, 미·중·러가 협력할 사안이 되도록 만드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강대강 일변도인 현재 외교 정책의 결과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복귀한다면 2018년 때처럼 김정은과 ‘러브 레터’를 주고받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럴 경우 강대강 대치를 이어가는 남북 관계에선 한국이 완전히 배제될 수 있으므로 외교적 측면에서 북한과 관계 개선에 여지를 남겨놔야 한다.

■ ◆중앙일보-CSIS 포럼

「 2011년부터 중앙일보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공동 주최하는 국제 포럼. 한국과 미국의 전·현직 대외 정책 입안자들을 비롯한 양국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동북아 정세와 미래 아시아 평화의 해법을 제시하는 자리다. 1962년 설립된 CSIS는 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국제적인 싱크탱크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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