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NSC 선임보좌관 "北과 비핵화 향한 ‘중간단계’ 논의 용의" [중앙일보-CSIS 포럼]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동아시아-오세아니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4일 "북한과 비핵화를 향한 '중간 단계'를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서 중간 단계 논의 가능성을 공식화한 것은 처음이다.
랩-후퍼 선임보좌관은 이날 신라호텔에서 '복합위기의 2024'를 주제로 열린 '중앙일보-CSIS 포럼 2024'에서 "미국의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면서도 "그러나 만약 전 세계 지역을 더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면 비핵화를 향한 중간 단계(interim steps)도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수석부소장 겸 한국석좌와의 영상 특별 대담을 통해 포럼에 참여했다.
랩-후퍼 선임보좌관은 이어 "우리는 특히 현재 한반도 상황을 고려할 때 위협 감소(threat reduction)를 위해 북한과 논의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또 "한반도에서의 긴장 고조가 오판으로 이어질 위험을 줄이기 위해 북한과 더 큰 폭의(greater), 더 정례화된 소통을 추구해야 하며, 안정화를 위한 활동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북한과 언제든 조건 없이 대화할 수 있다는 기존 입장의 연장선상이지만, 한반도 정책 실무를 담당하는 고위 당국자가 직접 중간 단계를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대화 의지를 보다 강조한 것이라 주목된다.
통상 중간단계는 북한의 핵동결 혹은 감축에 상응해 대가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그가 '현재 한반도 상황'을 언급한 것 역시 북한이 최근 한국을 교전 중인 적대국으로 규정하고 남한 영토 점령을 거론하는 등 위협 수위를 전례 없이 높이는 데 대한 경각심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미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한·미를 노린 고강도 도발에 나설 우려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
물론 랩-후퍼 선임보좌관이 미국의 최종적인 목표는 '비핵화'로 박아뒀다는 점에서 사실상 북한의 핵 보유를 인정하는 것으로 협상이 끝날 가능성이 큰 '스몰 딜'이나 '잠정 합의(interim agreement)'와는 차이가 명확하다.
그는 군사적 협력을 축으로 하는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도 우려했다. 랩-후퍼 보좌관은 "북한의 대러 무기 판매 수익은 수백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러시아가 (전장에서)북한산 탄도미사일을 사용하는 과정에서 북한은 관련 기술에 대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며 "북한이 전 세계 다른 군사 정권에 탄약이나 무기, 미사일 등을 공급할 수 있는 무기 공급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우려했다. 김정은 정권이 불법적 무기 팔이를 러시아 이외의 국가로 확대해 국제사회에 또 다른 위기를 조성할 가능성 있다는 얘기다.
랩-후퍼 보좌관은 바이든 행정부가 한반도와 주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동맹 구조를 강화하기 위해 전례 없는 조치를 취해왔다고도 강조했다. 대표적인 성과로는 지난해 4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출범한 한·미 핵협의그룹(NCG)을 꼽았다. 그는 "지난해 8월에 열린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미·일 3국의 관계를 더욱 강화해 북한의 도발을 포함한 공동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끼치는 역내 도전과 위협에 대해 협의하고 있다"며 "이는 러·북 간 밀착과 같은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협력을 강화하는 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축사에 나선 한덕수 국무총리도 동맹의 공고함을 강조했다. 한 총리는 "한·미동맹은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문과 잇따른 정상회담을 통해 군사, 경제, 미래 첨단분야와 경제 안보까지 아우르는 포괄적 전략동맹으로 발전해가고 있다"며 "한·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다져진 3국 가치연대를 통해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국제공조와 협력을 더욱 강화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몸 담았던 매트 포틴저 전 미국 백악관 NSC 부보좌관은 이날 기조연설에서 "국제사회가 공격적인 전쟁에 직면해 있다"고 규정했다. 주요 위기 요인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 중동에서 불안을 조장하는 이란 등을 꼽으면서다. 중국의 영토 분쟁 시도, 북한의 핵 프로그램 개발 등도 지적했다.
그는 "이런 위기는 경제와 안보 측면에서 한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미 동맹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유지되고 있다. 북한 문제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여러 위협 요인과 갈등 요인 대응에서도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했다.
미·중 전략 경쟁과 관련해서는 미국에 대한 중국의 도전이 더 거세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중국이 최근 아시아 연대를 대미 대응 수단으로 강조하는 것과 관련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주장하던 것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며 한·미를 향해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는 "긴장 조성을 통해 4월 한국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 할 것이고, 오는 11월 미국 대선 이후 미국과의 협상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이 대량의 군수물자를 러시아에 보내고 있는데, 만약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면 이런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며 이른바 '한반도 전쟁 위기론'은 가능성이 작은 것으로 봤다.
그는 또 국제사회가 직면한 복합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에 기반한 연대가 중요하다고도 지적했다. 포틴저 부보좌관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힘을 모아서 끔찍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응해야 한다"며 "군사적으로 힘을 갖추고 효과적으로 억지력을 발휘하기 위해 미국과 동맹국들은 지속적으로 군수품과 무기 생산을 위한 역량을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존 햄리 CSIS 소장은 환영사에서 "최근 도전 과제는 다양하고 복잡하기 때문에 어떤 국가도 혼자 처리할 수 없고 함께 조율해 나가야 한다"며 "주요 7개국(G7)에 한국을 포함시켜 G8이나 호주까지 포함하는 G9이 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중국과 러시아 등 상임이사국의 외면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제재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 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위상이 높아진 아시아의 대표성을 가진 한국을 포함해 새로운 G8이나 G9이 세계 평화와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찬사에 나선 신원식 국방부 장관은 강력한 한·미동맹에 기반한 대북 억제가 어느 때보다 잘 작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신 장관은 "대한민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의 최전방에 위치하고 있으며, 미국의 동맹국 중 최대·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규칙에 기반한 세계질서가 도전받을 수록, 한ㆍ미동맹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한·미는 강력한 연합방위태세를 바탕으로 '힘에 의한 평화'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중앙일보-CSIS 포럼
「 2011년부터 중앙일보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공동 주최하는 국제 포럼. 한국과 미국의 전·현직 대외 정책 입안자들을 비롯한 양국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동북아 정세와 미래 아시아 평화의 해법을 제시하는 자리다. 1962년 설립된 CSIS는 미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국제적인 싱크탱크다.
」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얼굴팩하다 "수갑 왜 채워요?"…강남 텐프로 마약 여성 체포 영상 | 중앙일보
- 김신영 '전국노래자랑' 돌연 하차…제작진도 "당황" 무슨 일 | 중앙일보
- 나이 젊은데 치매 걸렸다… "이 비타민 꼭 챙겨 먹어라" [불로장생의 꿈] | 중앙일보
- '손흥민 절친' 김진수 "나도 이강인 사과 받아…그때 얘기 잘 안해" | 중앙일보
- 남편 옆에서 자는데… 인도서 스페인 여성 집단 성폭행 '충격' | 중앙일보
- 백혈병 명의? 그는 교주다…전국 조직원 2000명 있는 사연 | 중앙일보
- 침착맨 이말년, 알고보니 송파구 역세권 '53억' 건물주였다 | 중앙일보
- '우동 대박' 이장우, 이번엔 도시락 출시…백종원·김혜자에 도전장 | 중앙일보
- 분노 터진 클린스만 사태에도…현대가, 27년간 축구협회장 왜 | 중앙일보
- SNL, 윤 정권 '입틀막' 사건 패러디했다…"풍자는 권리"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