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떠나는 과학자의 탄식 "늦었어요, 망했습니다"

심규상 2024. 3. 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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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물리천문학 전공 박찬 연구원 "R&D 예산 삭감으로 일자리 잃어, 기초과학 괴멸"

[심규상 대전충청 기자, 임재근 기자]

 박찬 연구원
ⓒ 임재근
 
"늦었어요. 망했습니다. 복구하는 데 20~30년은 걸릴 겁니다."

카이스트에서 물리천문학을 전공한 후 기초과학자로 일하고 있는 박찬(40) 연구원이 연신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정부와 국회가 올해 R&D(연구개발) 예산을 전년 대비 4조 원 넘게 깎은 여파가 결코 가볍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었다. 

'정부가 내년엔 삭감된 예산을 원상복구 시켜주겠다고 한다'는 기자의 말에도 "기초과학의 한 세대가 이미 포기하거나 해외로 나가거나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중간 세대가 붕괴해 그다음 세대를 키울 사람이 없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박 연구원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국가수리과학연구소, 기초과학연구원에서 중력파를 관측해 중성자 배열이나 블랙홀의 내부 구조 등을 추론·검증하는 연구를 해왔다. 10여 년을 과학자로 일하는 동안 국내 밖으로 눈을 돌린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올 7월께부터 중국 국책기관에서 일하기로 했다. 지난해 윤석열 대통령의 'R&D 카르텔' 발언과 R&D 예산 삭감의 여파가 그에게도 들이닥쳤기 때문이다. 박 연구원은 다니던 곳에서 돌연 '계약이 어려울 것 같다'는 통보를 받고 지난해 12월 계약이 종료됐다. 국내엔 일자리가 없어 해외 100여 곳에 이력서를 낸 끝에 중국행을 결정했다.

박 연구원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안 되니까 가기로 한 것"이라며 "(정부가 해당 분야에) 관심이 없고, 어느 분야가 트렌드이고 대세인지 모르며, 키울 생각도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기초과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사람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며 "임금을 많이 달라는 게 아니다. 의지와 열정만 꺾지 말라"고 강조했다.

아래는 지난 2월 29일 그와 나눈 주요 일문일답이다.

"지난해 12월 계약 만료 통보... 7월부터 중국 국책기관서 일해"
 
ⓒ 최주혜

- 물리천문학에서 주로 어떤 분야를 연구하나?

"물리천문학은 중력 법칙이나 뉴턴의 법칙 등을 적용해 천체 현상을 예측해 내는 학문이다. 물리에 방점을 둔 천문학 연구라고 할 수 있다.

우주를 연구하는 분야를 크게 근거리 우주와 심우주로 구분하는데, 제가 하는 물리학은 심우주보다 더 먼 우주다. 블랙홀이라든가 중성자별 같은 것들을 연구하는데 이런 별들은 지구 근처에 있지 않다. 보통 달이나 지구 주변은 근거리, 심우주는 태양계 안에 있는 우주를 얘기한다. 저는 거리와 무관하게 매우 밀도가 높은 고중력 천체나 아주 무거운 별들을 다룬다."

- 그동안 어떤 공부를 해왔나?

"어렸을 때부터 과학 소년이었다. 과학잡지를 보고 과학 경시대회 나갔다. 카이스트에서 물리학을 공부하다가 대학원 때 세부 전공으로 우주론을 선택해 연구했다. 더 세분화하자면 우주론 중 수치 상대론 분야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적용해 천체를 연구하다 보니 컴퓨터를 이용해 시뮬레이션한다. 수치 상대론 분야로 박사학위 받았고 주로 중력파와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다."

- 그동안 어디서 일해왔나?

"많은 기관을 돌아다녔다.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서울대학교 관련 기관, 국가수리과학연구소, 기초과학연구원에서 일했다. 지금은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연구원에서 잠깐 일하고 있다. (대학원 재학 기간을 제외하고) 모두 합하면 8년 가까이 된다."
     
- 왜 이렇게 옮겨 다니나?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정규직 자리가 없어서 '포닥'(postdoc, 박사 후 연구원, 대학이나 학술 전문 연구기관에서 박사 취득 후 특정한 연구를 수행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으로 일하고 있다. 포닥은 다양한 연구 경험을 통해 전문성을 더욱 향상하기 위한 제도다. 하지만 연구 현장에서는 잡일 처리를 맡기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해 있다. 주로 1년 또는 2년 계약, 2년+1년 계약이고 계약이 끝나면 다른 곳으로 옮겨 다닌다."

- 천체물리 분야를 기준으로 비정규직인 '포닥'으로 일하는 연구원은 얼마나 되나?

"천체물리학을 하는 사람은 우리나라에서 모두 30명 정도다. 이 중 절반 이상인 20명 정도가 비정규직(포닥)으로 일한다. 크게 기초과학과 응용과학기술 분야로 나눠 설명하면, 응용과학 기술 분야는 기업체 등 갈 곳이 상대적으로 많은데 기초과학 분야는 갈 곳이 거의 없다."
 
 대전 대덕연구단지 내 한 연구원 앞에 연구개발 예산 삭감을 비판하는 펼칠막이 걸려 있다.
ⓒ 심규상
 
- 최근 정부가 연구개발 예산을 전년 대비 14.7% 삭감해 논란이 일었다. 중장기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기초과학 분야에 한정해 말씀드리면 중장기를 생각할 필요도 없다. 당장 기초과학이 괴멸된다. 멸종된다."

- 왜 그런가?

"기초과학의 한 세대가 그냥 다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현 상황으로 설명드리자면, 예산삭감으로 일자리가 사라졌다. 지금 제 나이 때 기초과학을 하는 사람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이 분야를 포기하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해외로 나가는 거다. 두 경우 모두 국내에는 기초과학을 하는 젊은 사람들은 남아 있지 않게 된다. 이 일이 현재 벌어지고 있다.

몇 년 후 예산을 늘리면 되지 않냐고 하겠지만 지금 기초과학 분야를 떠나면 당장 다음 후배를 키울 사람들이 없게 된다. 몇 년 공백이 20~30년의 격차를 만들어낸다. 중장기가 아닌 당장 기초과학 분야 한 세대가 사라지게 되는 거다."

"돈 되는 분야만 지원하겠다는 식... 기초과학 안중에 없다"

- 박 연구원의 경우 예산 삭감에도 연구 활동을 계속하고 있지 않나.

"지난해 12월, 8개월 만에 계약이 종료됐다. 예년 같으면 연장계약을 했을 텐데 안 됐다. 실제 통보는 지난해 가을쯤 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6월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R&D 카르텔을 언급했다. 그러자 지난해 가을께 '연장 계약이 어려울 것 같다'는 사전 통보를 받았다. 이후 '안 된다'고 했고, 결국 계약이 종료됐다. 지금은 잠깐 단기 8개월짜리 일을 하고 있다."

- 다른 연구기관을 찾아봤는데 잘 안 된 건가?

"지난해 가을부터 다른 연구기관에 이력서를 냈다. 어차피 기초과학 연구 분야는 정부예산에 의존하다 보니 예산을 삭감하면 국내 대학이든 연구소든 할 것 없이 갈 곳이 없다. 결국 선택지는 다른 분야를 연구하거나, 이 일을 계속하려면 해외밖에 없다. 저는 국내 연구기관에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 해외에 이력서를 냈다."

- 이력서는 몇 군데나 냈나?

"나라를 가리지 않고 미국, 유럽 등 전 세계에 이력서를 냈는데 100곳이 넘는다. 이 중 두 곳(호주, 중국)과 면접을 봤는데 다행히 지난 1월에 한 곳과 계약이 성사됐다. 중국이다. 어떤 장기적 계획을 세워 다른 나라로 가는 게 아니라 상황에 내몰려 할 수 없이 가게 되다 보니 다행이지만 좋아할 일도 아닌 상황이다."

- 일자리가 생기지 않아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

- 다른 비정규직 동료 연구원들의 사정은 어떤가?

"다들 비슷하다. 돌아가는 상황이 모두 같으니, 답이 없지 않나."
     
- 중국 연구기관에서는 언제부터 일하게 되나?

"정확하지는 않은데 7월쯤으로 보고 있다. 계약기간이 3년+3년으로 한국과 비교하면 파격적이다."

- 중국에서는 어떤 연구를 제안받았나?

"중력파 연구를 제안받았다. 마침 중국에서 새로운 중력파 연구소가 설립될 예정이라 자리가 나온 거다. 물론 국립이다. 제가 알기론 중국은 중력파 연구에 대한 양적 팽창이 어마어마하게 커지고 있다. 사실 중국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이야기는 약 5년 전부터 들었는데 그동안에는 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안 되니까 가기로 했다."

- 중국은 공격적으로 연구 인력을 키우는데 우리 정부는 왜 거꾸로 가고 있다고 보나?

"중력파는 상대적으로 천문학의 새로운 연구 분야다. 그동안 빛을 이용한 천문학을 연구해왔고, 중력파를 이용한 천문학 연구를 한 지는 얼마 안 된다. 그렇지만 트렌드가 중력파로 바뀌고 있다. 국내만 늦다. 국내 중력파 연구자가 다 합쳐봤자 10명 남짓이다.

일단 관심이 없고 어느 분야가 트렌드이고 대세인지 모르며, 키울 생각도 없다. 그러니 거꾸로 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연구개발 분야 예산을 줄이면서 각 학회에 12대 국가전략기술에 맞추어 키워드를 제출하라고 했는데, 그러니까 돈 되는 분야만 지원하겠다는 식이 됐다. 기초과학 분야는 아예 안중에 없는 거다."

"국가가 기초과학자들 포기 안 한다는 믿음 줘야"
     
 박찬 연구원
ⓒ 임재근
 
- 기초과학 분야를 튼튼히 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나?

"기초과학의 다양한 분야에 많은 사람을 키우는 게 필요하다. 돈 되는 곳에만 투자하지 말고 골고루 사람을 키우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이론 물리학을 놓고 얘기하자면 돈이 정말 안 들어간다. 실험을 안 하니 그냥 임금만 주면 된다. 가성비 좋은 학문 아닌가. 기초과학자가 연구를 하는 주된 동기는 돈이 아니고 재미고 열정이다. 이렇게만 해도 기초과학은 최소한의 현상 유지가 가능하다. 임금을 많이 달라는 게 아니다. 의지와 열정만 꺾지 말라는 얘기다."

- 지금이라도 관련 예산을 살리면 되지 않겠나. 정부도 내년엔 삭감된 예산을 원상복구 시켜주겠다고 한다.

"제가 봤을 때는 늦었다. 망했다. 이미 기초과학의 한 세대가 벌써 다른 길을 가고 있다. 포기하거나 해외로 나가거나. 중간 세대 붕괴하고 그다음 세대 키울 사람 없고, 예산 빠르게 살려 봤자 정상화하는 데 한 20~30년은 걸릴 거다.

저를 예로 들면, 일단 가족들과 해외에 나가면 3년 + 3년으로 6년은 있어야 한다. 한번 해외로 나가게 되면 자녀 교육 문제 등으로 또 돌아오는 게 문제가 될 거다. 들어온다고 국내에 갑자기 급격하게 자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런 보장도 없지 않겠나."

- 기초과학 분야에서 일해오면서 '계속 해야 하나' 회의하고 흔들릴 때는 없었나?

"계약 끝날 때마다 고민했다. 비정규직으로 어디나 평균 2년 계약이기 때문에 일 년 적응하고 일 년은 이직 준비하고 하다 보니 연속해 제대로 된 연구가 잘 안 된다. 연구소가 바뀔 때마다 연구 주제도 좀 바뀌고, 연구 외에 연구소의 다른 일도 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어떤 계획을 하고 움직여본 적이 없다. 출근해서 낮에는 연구소 일하고 밤에 퇴근해 제 연구를 했던 적도 많다. 2년짜리 비정규직이지만 계약이 끝나더라도 국가가 기초과학자들을 포기하지 않고 책임져 준다는 믿음을 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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