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칼럼] 비움이 없는 이재명 대표의 ‘정치적 그릇’
인생만사 새옹지마란 정치에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아직 1라운드지만 두세 달 전에 비해 총선 판세가 확 뒤집혔다. 지난 연말만 해도 “정권 견제, 야당 다수 당선 기대”가 51%를 넘어서며 죽을 쑤던 쪽은 국민의힘이었다. 반대로 더불어민주당은 “수도권을 석권하면 200석도 가능, 윤석열 정부 탄핵도 할 수 있다”며 기세등등했었다. 그러던 흐름이 요즘은 “여당 다수 당선 희망” 38%, “제1 야당 다수” 35%, “제3지대 다수” 16%(한국갤럽 2월 27~29일)로 뒤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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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명횡사 친명횡재’에 흐름 반전
‘여당 다수’ 기대, ‘민주 다수’ 앞서
비우질 않아 채움도 없는 이 대표
여야 어디든 ‘오만·독주’면 필패
」
이런 반전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탐욕’ 이미지 때문이다. 180석 공룡 정당을 물려받은 이 대표의 대권욕이 당내 분란과 민심 이반을 불렀다. 이미 지사·국회의원·제1당 대표의 자리에 올라선 이 대표로선 마지막 정점인 대통령에의 꿈에 집착할 수밖에 없다. 2년 반 뒤 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이겨야 한다. 당내의 절대적 지지 기반? 필수다. 백현동·대장동·대북 송금 관련 체포동의안에의 반란표? 한 번 당해 봤으니 철벽을 쳐야 한다. 조금이라도 걸림돌 될 세력과 인물들? 아예 싹을 잘라놓아야 할 터다.
소년공 시절 야구 글러브 공장 프레스에 눌려 왼쪽 팔이 굽어버린 이 대표는 “내 생에 봄날은 없다”고 그 시절을 회고했었다. 그러곤 자서전 말미에 “좌절의 밑바닥에서야 비로소 싹텄던 희망의 씨앗” “숨이 턱에 차도록 페달 밟아 올라가야만 겨우 문이 열렸던 운명의 고갯길” “결국 정상의 희열을 맛볼 수 있었던 인생의 섭리”라고 자기 삶을 정리했었다.
정치적으론 승승장구였던 그에게 요즘 네 가지 판단 착오가 드러났다. “아니 이 정도까지 할진 몰랐다”는 당심, 민심의 이반이 나타난다. 지난해 강서구청장 선거 압승에 이어 ‘김건희 여사 명품백’ 사건은 자만을 키운 양분이 됐다. “불체포특권 포기”를 호언했다가 자신의 체포동의안 표결 전날 ‘반대표’를 요구하자 믿지 못할 사람이 돼버렸다. ‘위성정당 금지’의 대선 공약과 달리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다시 위성정당을 수용, 불신은 더해졌다. ‘비명횡사 친명횡재’ 공천은 그 모든 욕심의 정점이다.
야당은 내려놓고 비웠을 때 승리했다. 정책·인사·예산 권력을 모두 쥔 여권과의 싸움에선 민심 얻을 명분이 유일한 무기다. 2016년 총선 직전 야권의 분열로 “여당 180석” 전망이 나올 때 민주당은 당의 주류인 이해찬·정청래를 공천에서 내치는 초강수 쇄신을 했다. 단 1석 차이 원내 1당에 올라섰다. 노무현을 대통령까지 만든 건 스스로 사지(死地)인 영남에서 두 차례나 낙선하면서도 ‘지역구도 타파’의 명분을 지킨 삶의 궤적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총재 시절 ‘당내 독재’란 얘기 듣는 걸 극도로 꺼렸다. 모든 당내 경선 때마다 김상현·정대철·이기택 등 비주류 경쟁 주자들이 오히려 적절한 약진을 해주길 골몰했다. ‘대통령의 그릇’인 이가 대통령이 된다.
지금 이 대표에겐 ‘대통령의 그릇’임을 보여 줄 명분도, 원칙과 소신도, 배짱과 결기도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 소양이 없다면 그냥 머리 안 좋은 정치인이다. 그런데 내친 공천 자리에 친명 호위무사들만 채우려 한다면 그건 나쁜 정치인이다. 탐욕이다. 대통령 꿈꾸는 이가 양지 바른 텃밭인 인천 계양을에서 금배지 한 번 더 다는 게 무슨 명분이 있는가. 아무 것도 내려놓지 않고, 버리지도 않으니 새로 쌓아 갈 공간은 없다. 혹 자수성가형의 심리 특성인 ‘이룬 것에의 집착’은 아닐까. “정치는 노무현이처럼 버리며 해야 한다”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아 있다면 지금 이 대표를 보고 뭐라 했을까.
그의 예상 밖 두 번째 착오는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의 상대적 선전일 터다. 큰 잡음 없이 안정적이다. 유세의 동선과 메시지 등도 중도층에 거부감이 적다. 물론 혁신이나 감동도 없다는 평가가 공존하지만…. “한 위원장 잘한다” 52%(‘잘못’ 42%), “이 대표 잘한다” 36%(‘잘못’ 61%)가 최근 민심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쟁점에서 사라진 건 그에겐 세번 째 혼돈이다. 지난달만 해도 29%대 지지도의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의 대결 구도로 승리를 장담했지만 돌연 타깃이 증발해 버렸다. 이젠 이재명 대 한동훈의 대결 구도다. 더구나 사흘 전 윤 대통령의 지지도가 8개월 만의 최고치인 39%(한국갤럽)로 치솟았다. “의대 증원에의 뚝심” 평가가 그중 21%다. 여당 총선 승리의 필요조건 중 하나가 대통령 지지도 40%였다. 이대로라면 총선은 ‘윤석열 심판’이 아니라 ‘이재명 심판’이 될 수도 있다.
마지막 이 대표의 혼란은 신당이다. 거대 정당에의 혐오로 제3지대 정당이 자리잡을 공간이 커졌다. 더구나 이준석·이낙연 신당은 물론 심지어 조국 신당까지 민주당 측의 표를 더 삭감할 구도다. 아직도 무당층·중도층은 19~29%다. 총선 결과 예측은 그러니 신의 영역이다. 하지만 분명한 변수가 하나 있다. 누가 더 기득권을 내려놓고, 비우며, 새로운 정치개혁 영혼을 채워가느냐다. 오만과 독주를 심판하러 기다리는 게 대한민국 선거다. 37일이 남았다.
최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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