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환원 없나요?” 놀란 日 상장사들, 자발적 밸류업 나섰다
지배구조 개혁 등 장기 프로젝트 결과
기업도 투자자와 '소통 중시'로 전환
상장사 1224곳, 경영 개선 계획 공시
요즘 일본 도쿄증권거래소(TSE)에는 매일 상장사들의 문의 전화가 쇄도한다. ‘기업 가치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대다수다. 지난해 3월 ‘자본 비용과 주가를 고려한 경영 개선’을 요청한 일본식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에 호응하는 상장사들이 날로 는다는 얘기다. 기업들은 시장의 눈높이에 맞춰 자발적으로 변화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일본거래소그룹(JPX) 본사에서 만난 와가츠마 아이라 도쿄거래소 선임 매니저는 “거래소는 상장사들에 어떤 인센티브도 페널티도 주지 않는다”며 “기업들이 투자자들과 소통하면서 새로 느낀 점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상장사는 거래소에 ‘투자자들에게 경영 개선 조치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등 문의 배경을 설명했다고 한다.
일본 기업들은 더 이상 가만히 앉아 투자금을 기다리지 않는다. 배당 확대부터 주주 대응 전담 부서 설치, 성장 전략 제시 등 다양한 측면에서 투자자들에게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설명한다. 도쿄거래소는 투자자들이 만족한 우수 기업 사례를 공개해 투자 시 참고 자료로 활용하게 한다. 자연스럽게 투자자들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투자한 기업의 경영 구조와 주주환원책 등을 살펴보며 기업가치 ‘저평가 해소’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 기업들이 눈치를 보는 주요 투자자는 외국인이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올해 초까지 일본 주식을 5조1000억엔(약 45조4425억원) 넘게 순매수했다. 닛케이225 평균주가(닛케이 지수)를 연일 끌어 올린 동력이다. 아이라 선임 매니저는 “엔저(엔화 약세)와 저금리를 계기로 일본 주식을 접한 외국인들이 일본 기업들의 매력도가 높고 지배구조도 굉장히 좋아졌다는 사실을 눈치챈 것 같다”며 “더 많은 외국인이 유입되면서 상장사들도 투자자들과 소통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최근 일본 증시가 전성기를 맞게 된 것은 장기간 단련한 기초체력 덕분이라는 평가다. 수십 년간 강조한 ‘기업 지배구조 개혁’이 상장사들의 체질 개선과 인식 전환을 끌어냈다. 1999년 도쿄거래소 주도로 시작된 기업 지배구조 개혁은 2013년 아베 신조 정부의 지원에 힘을 얻었다. 정부와 금융청(FSA), 도쿄거래소가 하나 되어 10년에 걸쳐 이사회 역할과 책임 강화, 영문 보고서 공개 등을 완성했다. 처음에는 기업들의 반발이 컸다. 하지만 수차례 이해 관계자들과 만나 설득 작업을 벌였다는 게 도쿄거래소 측 설명이다.
지배구조 개혁의 결과는 이미 가시권에 들어왔다. 아이라 선임 매니저는 “2015년 도입한 ‘기업 거버넌스 코드’에는 이사회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사외이사 수를 3분의 1 이상으로 하라는 가이드라인이 있다. 2014년에는 기업의 6.4%만이 이를 지켰는데 지금은 (한국의 유가증권시장에 해당하는) 프라임 시장의 95% 회사가 이에 맞춰 사외이사를 선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 거버넌스 코드는 해외 투자자들의 요구를 반영해 만든 가이드라인이다. 2014년 도입된 ‘스튜어드십 코드’도 핵심적인 증시 정책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일본 공적연금(GPIF)은 적극적인 주주권을 행사하고 있다.
프라임 시장에서 구체적인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공시하거나 고려 중인 상장사 비중은 어느덧 54%가 됐다. 지난 1월 말 기준 899개 기업이 도쿄거래소의 자발적인 밸류업 요청에 화답했다. 한국의 코스닥에 해당하는 스탠다드 시장까지 확장하면 1224곳이 참여했다. 경영개선 독려를 위한 전담팀까지 만든 도쿄거래소는 미참여 기업을 대상으로 추가 설득에 나설 계획이다. 아이라 선임 매니저는 “시장이 반응하게 하려면 거래소도 투명성을 기반으로 신뢰를 얻어야 한다”며 “우리가 지금 어디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떻게 갈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글·사진 김준희 기자 zuni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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